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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혁명기념일부터 28일 토요일까지 4일 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비롯한 이집트 전역은 이집트 혁명 1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시위로 들썩였다.

 

혁명기념일을 기점으로 현재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Supreme Council of Armed Forces)와 청년단체 등의 충돌이 예상되었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일상이었지만 일반 시민들은 긴장을 놓지 않으며 이번 주말을 보냈다. 낮에도 시위대를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물었고, 해가 지고 나서는 아예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혁명기념일 당일인 25일에는 약 1만여 명의 시민이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군부 퇴진, 인권 보호 등을 외쳤다. 예상과는 달리 적은 숫자가 모였고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도 큰 문제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평일이었던 26일 정오 무렵,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까스르 일 닐(일명 사자다리, 타흐리르 광장으로 들어가는 주 도로)을 통해 도보로 타흐리르 광장에 가보았다. 평소보다 까스르 일 닐을 걷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차량도 적어 긴장하며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했지만 타흐리르 광장은 생각보다 평온했고 교통 체증도 심하지 않았다.

 

정부청사 앞 광장에는 중앙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듯한 천막들이 눈에 띄었다. 군데군데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밤을 새워 시위를 한 사람들은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만 지난 혁명 때와 같은 긴장감이나 공포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땅콩, 빵, 음료수 등 각종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들과 혁명 기념 티셔츠, 깃발 등을 파는 사람들 때문에 휴일에 공원 나들이를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였다. 외국 관광객들도 종종 지나다녔고, 여행사 직원들이 길거리에 나와 외국인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하기도 했다.

 

다가올 '충돌' 예상하고 문닫은 상점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선 상가 건물들은 평일이었는데도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아 다음 날인 금요일로 예정된 대규모 시위가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게 했다. 특히 지난 혁명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KFC, 하디스, 맥도널드 등 외국계 패스트푸드점들은 셔터를 반 정도 열고 영업을 했던 지난 시위 때와는 달리 아예 문을 닫아 걸었다.

 

시민들도 혁명기념일인 25일 군과 청년단체 간에 큰 충돌 없이 지나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에 있을 시위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에게 "정부청사와 중앙무대를 함께 찍으라"고 말하던 한 청년은 "내일(27일) 있을 시위가 더욱 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7일 금요일의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조용했다. 하지만 모스크의 대예배가 끝나는 오후 1시 즈음부터 여기저기 시위대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바세이야, 마애디, 기자 등 카이로의 각 지역에서 14개의 시위대들이 도보로 행진하여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일 강변 도로에 있는 이집트 대법원 앞에서 한 시위대를 볼 수 있었는데 강변 도로를 따라 타흐리르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여러 가지 피켓과 이집트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그들은 "자유", "군부 정권 퇴진"을 외쳤다. 시위대가 길을 건너면서 3개 차선 중 2개 차선을 차지해 차들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시위대가 타흐리르로 들어가던 시각, 까스르 일 닐에서는 작년 1월 28일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기도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작년 1월 28일은 약 보름 간의 시위 기간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날로, 이 날을 분수령으로 혁명이 확산되었고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희생자들과 관련해 경찰이나 군인 등 가해자들에 대한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며 조속하고 공정한 처벌을 요구했다. 경찰은 기도하고 있는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았지만 그 이상의 진압은 하지 않았다. 

 

각지에서 모인 시위대는 약 4만여 명 정도로 군 최고위원회 위원장인 딴따위의 인형을 만들어 "그는 거짓말쟁이"라며 조롱하고 부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빵, 자유, 인권", "우리가 왜 군인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가. 무바라크가 돌아온 것인가?"등이었다.

 

4.6 청년운동, 무슬림형제단, 1.25혁명 청년연합 등 네 개의 단체가 타흐리르 광장 안에 나름의 본부를 가지고 시위를 주도하는 등 여러 단체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슬림형제단은 큰 스피커로 꾸란을 계속 방송함으로써 반무슬림형제단 세력을 쫓으려 했지만, 실패하자 방향을 바꾸어 군 최고위원회를 비난하는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시위에서 이슬람의 정치 개입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오마르 마크람 모스크의 설교자 셰이크 마즈하르가 "지난 혁명은 신이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자 시위대는 "알라는 위대하다"며 화답했고, 그는 "아직 지난 혁명 때 순교한 자들의 피가 지워지지 않았다"며 관련자들의 빠른 처벌과 조속한 권력 이양을 촉구했다.

 

타흐리르엔 음향폭탄 터지고... 전국적인 시위

 

한편 토요일인 28일에는 타흐리르에서 국방부로 행진하는 시위대에 음향폭탄이 발사됐다. 군 최고위원회는 10여대의 탱크와 군용 트럭, 수백 명의 경찰들을 동원해 국방부 쪽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막아 시위대의 접근을 막았다.

 

이번 주말의 시위는 지난 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카이로뿐만 아니라 이집트 전역에서 일어났다. 알렉산드리아, 마할라, 수에즈 등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시위대는 한 목소리로 희생자들을 기리고 군 최고위원회를 비난했다.

 

긴장 속에 지켜보았던 지난 4일이 우려와는 달리 큰 충돌없이 지나갔다. 대부분의 이집트 국민들도 혁명 때 품었던 막연한 희망과는 별개로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무조건 시위나 파업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장 이번 주중으로 실시되는 상원의원 선거와 4월의 헌법 국민투표,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더 나은 이집트를 위한 국민들의 선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태그:#타흐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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