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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순 한나라당 의원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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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는 저에게 빚을 졌다. 경제발전의 뒤안길에 해결 안 된 빈민 문제를 내가 뒤치다꺼리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개발독재 시절 청와대에서 잘 먹고 잘 지내지 않았나?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지난 35년을 보상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아동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헌법 34조 4항은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있는데 아동 얘기는 쏙 빠졌다. 그런데 이른바 친박 의원들은 어제 의총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 전 대표도 의총에 나와 개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박 전 대표가 주장하는 맞춤형 복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하고, 그래야 그 빚이 자동적으로 갚아진다."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9일 의총 발언에서 개헌 문제에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박 전 대표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자극했다. 그는 빈민운동가로서의 자기 이력을 무기로 박 전 대표의 '근본'을 건드린 것이다. 그는 느닷없이 박근혜의 과거, 즉 박정희의 영애 또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누린 '호사'를 거론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발언은 '절묘(delicate)'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절묘하거나 아니면 복잡한 발언, 박근혜 겨냥   

"절대로 농담으로 한 얘기 아니다. 진지하게 한 얘기다. 이해가 안 가나? 잘못된 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남편은 35년간 마음을 졸이며 살았다. 잃어버린 35년을 어디 가서 보상 받나? 내가 그 얘길 안 할 테니 박 전 대표도 아동복지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거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친박들은 가만히 있으니까."

강명순 의원은 이날 의총이 파한 후 <오마이뉴스> 기자를 통해 자기 남편 정명기 목사가 유신시절 민주화운동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과거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당시 강 의원의 남편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10년 징역형을 받았다가 작년에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유신헌법의 부도덕성을 새삼 실감케 하는 효과를 낸다.

아무튼 박근혜 전 대표를 개헌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강명순 의원은 빈민운동가로서의 자기 '치적'뿐 아니라 유신 치하 탄압을 받은 남편의 훈장까지 동원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강 의원의 발언은 절묘(delicate)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복잡(complicated)'한 성격을 띠는 것으로 비친다.

요컨대 강명순 의원의 발언은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정치적이라고 해서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빈민운동가가 아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 국회의원이다. 물론 그의 남편도 지금은 민주화운동가가 아니다. 다만 빈민운동이나 민주화운동과 같은 한껏 순수할 수도 있는 이력이 훗날 이렇게 정치적인 데에까지 이용될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소회가 다소 씁쓸하게 남을 따름이다.

박근혜에게 강명순은 어떤 존재일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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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헌에 대한 찬반 의사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이명박이나 박근혜 중 어느 한편을 비판·두둔하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강 의원의 발언이 박근혜 전 대표가 기왕 선택해 온 '침묵과 방관' 전략을 매우 설득력 있게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강 의원이 정치인이듯이 박 전 대표도 정치인이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차기 집권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중요 인물'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의 정치적 본질에는 아버지 박정희가 있다는 점을 놓칠 수 없으며, 박 전 대표 자신도 그것을 조금도 부인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통치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독재'가 되겠으나 그 당시 시대 상황 전체를 보면서 유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시대의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자식 된 입장에서 그 피해자들께 깊이 사과하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 나라 전반의 의식 풍조에 관한 것입니다. 실컷 잘 먹고 나서 그릇 한두 개 깬 것만 가지고 욕을 하는 풍토라면 그 나라는 많은 애국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매도당하는 세상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더라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해온 것은 저의 가족사를 떠난 문제입니다." - 박근혜, <신동아> 1998년 10월호

박근혜의 말에 의하면, 강 의원 부부는 유신정권 '인권탄압의 피해자'이며 '깊이 사과하고 싶은' 대상이다. 동시에 (모순되게도) 그들은 '실컷 잘 먹고 나서 그릇 한두 개 깬 것만 가지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매도당하는 세상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했으며, 그것은 '가족사를 떠난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라면, 박근혜는 응당 답변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노골적인 '침묵과 방관'에 노골적인 문제 제기

앞서 말했듯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침묵과 방관'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3년여 동안 정치인으로서 아직까지 한 차례도 공식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는 당사 현관이나 국회 복도 같은 데서 기자들과 잠시 만나 짧은 문답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3년 이상을 이렇게 해 왔다면 박 전 대표의 '침묵과 방관'은 일관적이라기보다는 노골적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일부 언론은 이런 전략을 '신비주의'라는 개념 미상의 언어로 칭찬하기도 한다. 반면에 차기 대선 선두주자로서 모험을 택하기보다는 안전을 꾀하는 보신주의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박 전 대표는 4대강 사업과 부자감세 철회 여부 등에 대해서 거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여야 양비론을 펼쳤다. 물론 그의 이런 태도는 때로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예외적으로 박 전 대표는 세종시법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입장을 피력하여 법 개정을 무산시켰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가 만약 세종시법 개정에 찬성했더라면 그는 확실히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또한 그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도 표를 계산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박근혜의 '촌철살인'에 담긴 공격성

사실 박근혜는 누구보다도 단호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단호성은 극히 짤막한 언명으로 정적의 의표를 찌르는 화법으로 나타나왔다.

박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대해, '한 마디로 나라의 수치'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그는 이상득 의원을 향해, '정치의 수치'라고 했으며, 이재오 의원에게는 '오만의 극치' 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둘 다 자기 뜻에 반하는 공천 행위를 공격하며 구사한 말이었다. 그는 자기 사람들이 공천에 탈락하자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격정적인 말로 자기와 국민을 동일시하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화법을 '촌철살인'이라고 칭찬하는 언론도 있다. 반면에 '외마디 정치'라고 폄하하는 의견도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칭찬이든 비판이든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이 말에는 다분히 공격적 개념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자기 이익을 지키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단호하며 공격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2004년 MBC <시선집중> 전화 대담에서, 손석희 앵커에게 "지금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지난 1월 2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랑의 바자회'에서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나 개헌 등 정치권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행사에는 관심도 없고, 다른 질문만 한다"라고 유감을 표한 후 침묵으로 넘겼다. 또한 행사 후 기자들이, "복지를 돈으로만 보지 말고,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냐?"고 묻자,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되레 질문자를 힐난하기도 했다.

누가 '나쁜 대통령'인가, 노무현인가 박정희인가 이명박인가

이명박 대통령와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들의 만찬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명박 대통령와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들의 만찬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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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로 열린 한나라당 친박(親朴)계 모임인 여의포럼 세미나에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개헌 이슈에 대해 박 전 대표를 포함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박 전 대표는 현재의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한 참석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입장은 개헌 반대라기보다 저쪽(친이계)에서 (개헌론을) 주도하는 데 의도성이 있다고 보고 따라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대로 개헌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은 '반대도 아니고 따라가지도 않겠다'는 것인 모양이다. 결국 이번에도 박 전 대표는 예의 '침묵과 방관' 전략을 구사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이것은 2007년 1월 박근혜 전 대표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서 뱉은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왜 노무현 대통령에게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을까. 노무현이 4년 중임제 개헌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말에,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다"라고 응수한 바 있다. 이것은 물론 오로지 자기의 임기 연장만을 위해 삼선개헌과 유신개헌을 강행한 박 전 대표의 아버지를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박 전 대표는 복지를 표방하는 대선준비기구도 출범시켰다. 나아가 그는 "아버지의 목표도 복지국가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당의 국회의원이 '복지'와 '아버지'를 함께 거론하며 개헌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 피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한 노무현이 그랬듯이 지금 이명박도 4년 중임제 개헌을 하자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박근혜는 말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이치다. 이명박은 나쁜 대통령인가 좋은 대통령인가?


태그:#박근혜, #나쁜대통령, #노무현, #강명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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