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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간척지의 모습
 남해 간척지의 모습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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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날이 기다려진다. 내 또래 애들은 설날에 세뱃돈을 받기 때문에 기다려질지 몰라도 내가 설날이 기다려지는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매년 설날이면 아빠의 고향인 경남 남해 할머니 댁에 간다. 남해 할머니네 집 앞에는 넓은 바다가 있는데 그 바다는 강진만이라고 불린다. 이 바다에는 매년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 손님은 사람들이 흔히 백조라고 알고 있는 천연기념물 201-2호 큰고니이다. 바로 이 큰고니가 나에게 설날을 기다려지게 한다.  

강진만 간척지의 모습. 썰물때면 간척지에 있는 물도 같이 빠진다.
 강진만 간척지의 모습. 썰물때면 간척지에 있는 물도 같이 빠진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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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7년 때부터 아빠와 함께 이 곳 강진만을 탐조했다. 다른 곳을 탐조할 때는 보통 혼자 탐조하지만 이곳 강진만 만큼은 아빠의 고향이기도 하고 내가 지리를 잘 몰라서 아빠와 함께 탐조를 한다. 강진만을 처음 탐조하던 날, 나는 아빠와 함께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큰고니 5마리를 발견했다. 나는 그 당시 큰고니를 처음 보는 거라 매우 기쁘고 좋았다. 그날 큰고니를 발견한 곳에서 3km 떨어진 도마간척지에서 물수리라고 하는 귀한 새도 보았다. 물수리는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급강하 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낚아채가는 맹금류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채가는 물수리의 모습과 우아하게 물 위를 헤엄치는 큰고니를 본 그 강진만의 첫 탐조는 잊지 못 할 것이다. 그 후 나는 매년 설날 때마다 강진만을 찾는다.

물수리가 먹이를 찾아 날고있다.
 물수리가 먹이를 찾아 날고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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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설날 아침 먹고 어른들께 세배하고 산소에 다녀온 후 아빠와 함께 강진만을 탐조했다. 강진만은 해안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간척지와 바다가 있다. 간척지에는 넓은 갈대밭과 수심이 낮아 잠수를 못 하는 청둥오리, 고방오리, 혹부리오리 같은 수면성 오리들이 많았고 바다에는 잠수해서 먹이를 잡는 뿔논병아리, 검은머리흰죽지, 흰뺨오리 등 잠수성 오리들이 바다에 새까맣게 모여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썰물 때라 약간 물이 빠진 갯벌 위에는 작은 걸음으로 빠르게 종종종 걸어 다니는 흰물때새와 민물도요 같은 작은 새들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멈춰있는 아빠차 주변으론 백할미새나 딱새 같이 작은 새들이 서성거렸다.

잠수성 오리들인 흰죽지들이 모여있다.
 잠수성 오리들인 흰죽지들이 모여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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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있는 자동차 주변을 서성이는 딱새암컷
 멈춰있는 자동차 주변을 서성이는 딱새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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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흰물때새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흰물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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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물때새는 옛날에 한 금실 좋은 부부가 새로 환생했다고 하는 새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볼 때마다 짝짓기를 한다. 검은머리물때새는 썰물 때 빠져나가는 물들을 따라가면서 주황색 긴 부리로 갯벌을 쑤시고 다니며 부리에 걸리는 갯지렁이 같은 먹이를 잡아먹는다. 검은머리갈매기는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구상에 약 1만 마리정도가 남아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강진만 첫 탐조 때 만났던 물수리는 올해 두 마리를 동시에 만났다. 아빠와 나는 이번에도 그 신나는 사냥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고 흥분한 상태로 자동차로 물수리를 쫓았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물수리가 사라졌다. 참 허탈했다.

검은머리물때새의 짝짓기
 검은머리물때새의 짝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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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1급 검은머리갈매기가 먹이감을 찾고있다.
 멸종위기종 1급 검은머리갈매기가 먹이감을 찾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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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물고 날아가는 검은머리갈매기
 먹이를 물고 날아가는 검은머리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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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강진만에서 진짜 보고 싶은 새는 바로 큰고니이다. 큰고니는 2008년 설날에 한 마리를 발견했고, 2009년에는 한 마리도 발견 못 했지만 2010년에는 무려 큰고니 11마리 그리고 올해는 몇 마리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동차로 이동할 때 저 멀리 해안도로와 가까운 바다 위에 커다란 하얀 색 점들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안 봐도 뻔했다. 큰고니들이었다. 쌍안경으로 좀 더 자세히 보니 큰고니들이 바닷물 사이로 나와 있는 모래톱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빠는 가드레일에 가까이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시동을 꺼 소음을 없앤 뒤 문을 살짝 열고 한 발을 밖으로 내밀어 땅을 밀어 소리 없이 천천히 접근했다. 큰고니 같은 새들은 다른 새에 비해 예민해서 그랬기도 했고, 이렇게 새들에게 최대한 덜 방해하고 관찰 하는 것이 새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큰고니들이 헤엄을 쳐서 도망가고있다.
 큰고니들이 헤엄을 쳐서 도망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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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니들은 낯선 차량의 등장이 반갑지 않은지 목을 치켜세워 우리를 경계했다. 하지만 자동차가 꿈쩍 않고 가만히 있자 큰고니들은 다시 안심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나는 쌍안경으로 큰고니의 개체수를 세어봤다. 작년에는 11마리였는데 올해는 무려 14마리로 늘었다. 유조가 아홉 마리가 보였고 성조는 다섯 마리가 보였다. 큰고니 14마리는 설날이라 도시에서 내려온 귀성객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그런지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 하는 듯 했다.

해안도로와 큰고니들이 쉬는 모래톱의 거리가 가까워 해안도로 위로 산책을 하고 있는 귀성객들에게 놀라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큰고니처럼 덩치가 커다란 새들은 한번 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두루미 같은 경우 한번 날 때마다 30분 동안 먹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데 두루미와 덩치가 비슷한 큰고니도 이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다.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큰고니들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큰고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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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없을 때 갯벌 위로 올라와 먹이활동을 하는 큰고니들.
 사람들이 없을 때 갯벌 위로 올라와 먹이활동을 하는 큰고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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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해안도로를 걷고 있으면, 큰고니들은 목을 치켜세워 경계를 하거나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려고 헤엄을 쳐서 바다 멀리로 도망간다. 하지만 도시에 살아 새들을 자주 보지 못 했던 사람들과 아이들이 커다란 새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큰고니들이 위험을 느끼고 비행기가 이륙하듯 날개를 퍼덕이며 물을 박차고 날아간다. 그러고 나면 자동차에 숨어 큰고니를 관찰하고 있던 나는 말 못할 짜증이 밀려온다. 큰고니들은 이미 날아갔고 사람들이 이곳에서 노는 거 가지고 내가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자동차 타고 지나가면서 보호자로 보이는 분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저 큰고니들 천연기념물들이니까 애들 노는 모습은 보기 좋은데, 어차피 지금은 새들도 날아가고 했으니, 다음번에 또 큰고니들 만나게 되면 그때는 조용히 해주세요" 라고 부탁을 하고 갔다.

큰고니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큰고니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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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해안가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없을 때 비로소 큰고니들은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바닷물이 썰물 때가 되자 내 쪽에 있는 갯벌 위로 날아왔다. 큰고니들은 이동할 때마다 항상 정찰병을 보내는 듯이 두 마리를 먼저 보내고 그 두 마리가 그 장소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나머지 무리들도 뒤 따라온다. 갯벌 위로 날아온 큰고니들은 14마리 모두가 한 곳에 모여 목을 특이하게 구부려 물을 마셨다.

보통 강이나 호수 같은 민물에서 보이는 큰고니들은 수면성 오리들처럼 긴 목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엉덩이를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우아한 겉모습과는 달리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먹이를 잡는데 이 곳 강진만의 큰고니들은 민물에서 발견되는 큰고니들과는 달리 썰물 때 갯벌 위에서 수초 같은 것을 주워 먹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큰고니들이 갑자기 목을 치켜세워 경계를 했다.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나? 하고 둘러봤고 정찰병으로 고정되어 있는 듯한 큰고니 2마리가 먼저 날아갔다. 나머지 무리들도 날아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떤 할아버지가 자동차를 몰며 가드레일 옆에 안전하게 주차한 아빠 차 옆을 지나면서 빵! 빵! 하고 시끄럽게 경적을 울렸다.

그 덕분에 큰고니들은 무지하게 놀래서 소리를 내며 떼로 날아갔다. 용감한 4마리의 큰고니가 갯벌 위에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잠시 후에 개를 끌고 산책 중인 부부에 놀라 다른 무리 따라서 바다 멀리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해안도로와 큰고니의 모래톱이 너무 가까워서 큰고니들이 견뎌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설날만 지나면 귀성객들도 사라지니 평화롭게 이 곳 강진만에서 겨울을 보내리라 믿는다.

한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며 경적을 울리자 큰고니들이 놀라 달아나고 있다.
 한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며 경적을 울리자 큰고니들이 놀라 달아나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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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렇게 강진만이 잘 보존되어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는 수백 마리의 큰고니들이 강진만을 찾아오는 모습을 나는 상상해본다. 근데 이런 상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2010년 큰고니 열한 마리가 찾아왔을 적에 <남해신문>의 허동정 기자가 쓴 기사를 읽게 되었다. 아빠는 그 기사를 읽자 나에게 2007년에 찍은 큰고니 사진을 이 기자에게 보내라 라는 권유를 했다. 그날 메일로 허동정 기자에게 내가 찍은 큰고니 사진들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에 남해신문에 부제로 "향우 김두수씨, 2007년 백조사진 보내와" 라는 아빠 이름으로 나온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내 이름은 김아진으로 오타가 나서 씁쓸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또 며칠 후 같은 허동정 기자가 쓴 "박해받는 강진만, 람사르에 가입하자"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람사르든 뭐든 강진만을 잘 보존해서 앞으로도 계속 큰고니들과 다른 희귀한 새들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차 안에서 큰고니를 관찰하는 모습.
 필자가 차 안에서 큰고니를 관찰하는 모습.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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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올해 고등학생 되는 기자입니다. 제 블로그 입니다. http://blog.daum.net/sgigig/?t__nil_login=myblog 많이 놀러와주세요.



태그:#남해, #강진만, #큰고니, #탐조, #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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