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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며칠 앞둔 대목인데 손님이 좀 늘었나요?"
"하이고, 대목은 무슨 대목. 방학 때라 학생들이 안 나옹게 똑같어유."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닷새 남겨놓고 군산 재래시장 경기는 어떤지 알아보려고 28일(금요일) 오후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면서 기사와 나눈 대화다. 설 경기를 묻는데 '방학 타령', '학생 타령'을 해대니까 더는 묻기가 싫었다. 기사의 '타령'에는 설 경기가 영하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했다.

과일은 예년에 비교해 30% 정도 올라

고사리를 팔고 돈을 받는 할머니. 어떻게 삶고 무쳐야 하는지 설명하다 1천 원을 더 거슬러주어 잠시 웃음이 일기도.
 고사리를 팔고 돈을 받는 할머니. 어떻게 삶고 무쳐야 하는지 설명하다 1천 원을 더 거슬러주어 잠시 웃음이 일기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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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군산 기온은 영하 10℃의 날씨였다. 바람이 약간 불어 피부로 느끼는 추위는 더했다.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 풍경 몇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나니까 손등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길바닥에 야채를 펴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위대해 보였다.

고사리 5000원어치 팔고 손님에게 받은 1만 원짜리 한 장을 쥐고 흐뭇해하는 할머니를 보니까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에게 다가가 "작년 추석 때보다 고사리가 무척 올랐네요"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여그칭게"라고 했다. 수입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길가에 늘어놓은 과일들. 과일도 한파에 시달려서인지 선도가 별로였습니다.
 길가에 늘어놓은 과일들. 과일도 한파에 시달려서인지 선도가 별로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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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용 과일상자를 거리에 쌓아놓은 과일장수 아저씨를 만났다. 사과, 배, 곶감, 밤 등 과일은 겉으로 보기엔 작년과 비슷했는데 배와 사과는 30% 정도 오른 것 같았다. 배 한 무더기(5개)에 1만 원으로 개수는 작년 추석과 같았지만, 크기가 작고 선도도 그만 못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추석 때도 다섯 개에 1만 원 갔나요?"
"그럼요, 그때도 다섯 개에 1만 원씩 혔죠. 근디 물(선도)이 더 좋았고, '다마'(크기)도 이거보다 더 컸죠. 날씨가 추운 게 별 수 있간디요."

배는 하나에 2000~3000원, 사과는 1000원, 밤은 한 되에 5000원, 귤 한 상자에 1만 원으로 작년과 비슷했다. 그러나 선도와 크기는 작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과일장수 아저씨도  30% 정도 오른 것을 인정했다.  

텅 빈 운동장처럼 썰렁한 '신영시장'

신영시장 입구 신발가게. 총각 때 단골 정육점이 있을 정도로 자주 이용하던 시장이었는데, ‘아 옛날이여!“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신영시장 입구 신발가게. 총각 때 단골 정육점이 있을 정도로 자주 이용하던 시장이었는데, ‘아 옛날이여!“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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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시장', '공설시장(구시장)', '역전시장' 순으로 들러보기로 했다. 먼저 채소전에 가려고 신영시장 입구로 들어서는데 신발가게가 보였다.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가게는 물론 길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아예 문을 닫아버린 점포도 몇 군데 보였다.

신발가게 앞길은 '청과물시장'을 끼고 있던 신영시장 입구다. 해서 평일에도 오후가 되면 사람 물결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관객이 모두 빠져나간 운동장처럼 썰렁했다. "대목장이 이렇게 황량해서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파 도매가게, 아주머니 두 분이 몇 차례 상의 끝에 대파 두 단을 사가지고 가더군요.
 대파 도매가게, 아주머니 두 분이 몇 차례 상의 끝에 대파 두 단을 사가지고 가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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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오른 시금치와 쪽파(조선파), 풋마늘, 도라지(시계방향으로)
 엄청 오른 시금치와 쪽파(조선파), 풋마늘, 도라지(시계방향으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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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비를 가릴 수 있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온기가 돌면서 손님과 상인이 흥정하는 광경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경하기 재미나는 흥정이 아니라, 말끝마다 놀라움과 탄식이 '찐빵에 앙꼬'처럼 빠지지 않아서 말도 못 붙이고 듣기만 했다.  

"다 모이면 사람이 몇인데 대파 1만 원어치 부침개 혀서 누구 코에 부치겠어···."
"긍게 장사 허는 나도 폭폭혀 죽겄네유. 하늘땅 높은지 몰로고 미친디끼 올라가는 대파 값을 내가 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 어치게 헌데유. 손님한티 비싸니께 사 먹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는 일이고···."

대파 장수 아주머니나 손님들이나 처지가 난처하기는 매 일반인 것 같았다. 재래시장에 나오면 조금 쌀까 하고 오랜만에 찾았는데 한 단에 4000~5000원 하던 대파가 불과 몇 달 사이에 1만 7000원으로 올랐으니 놀랄 만도 했다.

묻기만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파 장수 아주머니는 손님이 발길을 돌릴 때마다 "이리 좀 와 봐유!"라며 애원하듯 불렀다가 그냥 가면 "장사 못 혀먹겄당게"라며 탄식을 늘어놓았다.

대파만 오른 게 아니었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한 보시기에 3000원이던 고사리가 5000원으로 2000원 올랐고. 한 근(500g)에 3000원이던 도라지는 5000원, 한 바구니에 2000원이던 양파는 3000원, 한 개 1000원이던 애호박은 2000원, 한 봉지 5000원이던 깐 마늘은 1만 원이었다. 배추도 적잖게 올랐는데 무, 당근, 생강 등은 예년 수준과 비슷했다.

특히 시금치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시금치는 별로 변동이 없는데 밭에서 자란 시금치는 1관에 8000원(도매) 하던 게 1만 6000원이라고 했다. 시금치 장수 아주머니는 "사람들은 이르케 올른지도 몰로고 더 싸게만 먹을라고 혀서 죽겄네유!"라고 원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 상자 20만 원 했던 조기가 40만 원

생선가게 풍경. 생선전에도 셔터를 내린 가게가 있어 불경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생선가게 풍경. 생선전에도 셔터를 내린 가게가 있어 불경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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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가게에서 놀라고 생선전으로 방향을 잡았다. 생선전은 조금 시끌벅적했는데 거래는 냉랭했다. 비린내가 진동해야 함에도 이상하리만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날이 워낙 추우니까 생선이 꽁꽁 얼어붙어 비린내도 어디로 숨어버린 모양이었다.

생선장수 아주머니는 요즘에는 조기, 박대, 홍어, 병어(병치) 등이 제수용으로 잘 나간다고 했다. 서해안을 대표하는 국내산 조기는 작년보다 배 이상 올라 있었다. 큰 조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주머니는 작년 이맘때 해망동 공판장에서 한 상자에 20만 원이던 조기가 올해는 40만 원(마리당 7000원) 가까이 나간다며 혀를 내둘렀다.

중국산 생선도 만만치 않았다. 제수용 조기 세 마리에 1만 원, 박대는 여섯 마리에 2만 원이었다. 수입 홍어도 크기에 따라 한 마리에 1만 원에서 5만 원까지 대중없었고,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은 '물메기'는 한 마리에 5000원, 아귀는 중간크기 한 마리에 1만 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차라리 설을 쇠지 말라고 허지!"

 한가한 정육점. 손님도 없지만, 정육도 걸려 있지 않아 가게가 허전했습니다.
 한가한 정육점. 손님도 없지만, 정육도 걸려 있지 않아 가게가 허전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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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파동으로 이리저리 시달리다 못해 지쳐 있을 정육점을 찾았다. 생각대로 지난 달까지 한 근에 5500원 하던 돼지고기는 1만 원으로 올랐고, 쇠고기는 한 근에 2만 원으로 5000원 올라 있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구제역 때문에 고통이 많으시죠?"
"(격앙된 목소리로) 우리는 구제역 허고 상관 없어유. 왜 그냐, 어디서 태어났는지 족보(등급판정서)까지 갖추고 완벽혀야 팔어먹을 수 있거든유. 그런디 미국산 고기가 좋다고 선전허는 멍청헌 것들이 있더라고유. 그게 말유 막걸리유. 우리나라 국민으로 헐 소리냐고유···."

"돼지고기 값이 너무 올라서 문제지요."
"맞어유. 비싸서 못 사 먹겠다고 하는 게 정답이쥬. 삼겹살 한 근에 1만 2000원이니 올라도 너무 올랐쥬. 180~190근 나가는 돼지가 35만~36만 원씩 혔는디 지금은 80만 원이 넘응게유. 그려서 우리는 팔라고 생각도 안 혀요. 대신 식당들이 죽어나쥬···."

"구제역 때문에 정부는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담화를 발표했더군요."
"하이고, 별꼴 다 보겄네. 차라리 설을 쇠지 말라고 허지,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내려와서 아버지 선물로 갈비도 사가고 쇠고기도 몇 근씩 사가야 설 경기가 쪼꼼이라도 살어나는 것 아니겄어유." 

정육점 아주머니는 안 팔면 본전이니까, 대목 장사는 진즉 포기했다며 허탈해 했다. 그래도 구제역 사태를 버티지 못하고 문 닫는 식당들을 걱정하는 여유를 보였다. 돼지고기는 '비싸서 못 사 먹겠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소든 돼지든 구제역이 조금만 의심되어도 '살처분'하지 않느냐는 것.

정부가 담화를 발표했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노하던 정육점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역전시장'으로 향하는데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신명나는 설 명절, 풍요로운 재래시장"
"설명절 선물은 내 고장 특산품, 구입은 전통시장에서"

현수막 아래에는 재래시장 상인회와 관련 단체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귀는 고향냄새가 물씬 풍기면서 정겹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래시장을 이용하자는 내용이었는데, 가슴으로 느껴지기는커녕 몇 년 전부터 내걸려 있던 현수막 같아서 씁쓸하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설대목, #구제역,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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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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