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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6진으로 소말리아 해역에서 작전중인 해군 '최영함'
 청해부대 6진으로 소말리아 해역에서 작전중인 해군 '최영함'
ⓒ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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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지난 24일 <부산일보>와 <미디어오늘>, 그리고 <아시아 투데이> 등에 대해 청와대 기자실 출입정지와 출입기자 등록 취소라는 고강도 제재를 내렸다. 이유는 한국 해군의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하기 위해 펼친 1차 구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붙잡힌 삼호 주얼리호의 구출작전을 벌이기 전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뉴스 엠바고(News Embargo)를 요청했고,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국방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엠바고 어겼다고 출입기자 등록 취소?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부산일보>가 정부의 엠바고 요청을 깨고 청해부대의 삼호 주얼리호 1차 구출작전 실패 소식을 보도했고, <미디어오늘>과 <아시아 투데이>가 <부산일보>의 보도를 인용해 1차 인질 구출작전 실패 소식을 보도했다. 이와 함께 <세계일보>와  <뷰스앤뉴스>도 온라인에서 청해부대의 1차 구출작전 실패 소식을 인용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부산일보>와 <미디어오늘>, 그리고 <아시아 투데이> 등 3개 언론사가 뉴스 엠바고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의 모든 부처에 기자실 출입을 금지 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맨 먼저 이들 3개 언론사의 출입기자 등록 취소와 기자실 출입정지 조치를 내렸다.  

뉴스 엠바고를 어겼다는 이유로 정부부처 출입기자의 등록을 취소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뉴스 엠바고는 언론사와 뉴스 제공자(정부기관, 회사, 사회단체 등) 사이에 합의를 통해 보도를 일정기간 유예하는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으로 법적 책임이 없는 비공식적인 합의사항이다. 정부기관이 이를 문제 삼아 출입기자의 정부부처 출입을 못하게 하여 취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미국의 언론사들도 실수로 또는 의도적으로 뉴스 엠바고를 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뉴스 엠바고를 어겼다는 이유로 해당 언론사의 정부부처 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가 취해진 적은 없다. 왜냐하면, 이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이러한 조치로 인해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뉴스 엠바고를 어겼을 경우, 해당 언론사에 일정기간 뉴스 소스를 제공하지 않는 조치를 취한다. 그게 제재의 전부다.

오바마 아프간 방문 엠바고 깬 ABC, 제재 없었다

2010년 12월 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2010년 12월 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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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미국의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인 ABC 방송사는 백악관이 요청한 뉴스 엠바고 요청을 깨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깜짝 방문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이 대통령의 안전을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두번째 아프가니스탄 방문에 대해 뉴스 엠바고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ABC 뉴스는 이를 어기고 엠바고가 끝나기 전에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방문소식을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ABC 방송사는 정부의 엠바고 요청을 어겼다는 이유로 어떠한 제재도 당하지 않았다. 정부가 요청한 뉴스 엠바고를 지키지 않은 것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뉴스 엠바고가 설정된 경우라도 정보가 유출되어 알려진 경우, 뉴스 엠바고를 해제하는 조치를 취한다. 영국 국방부는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돼 군 복무를 한다는사실을 언론사에 알리고 해리 왕자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안전을 위해 보도를 유예해 달라고 언론사에 뉴스 엠바고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영국 국방부는 엠바고를 해제하고 해리 왕자를 귀국시켰다. 즉 이미 공개된 정보에 대한 뉴스 엠바고 설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엠바고를 즉시 해제한 것이다. 이번에 청와대의 제재를 받은 <미디어오늘>과 <아시아 투데이>의 경우도 <부산일보>에 이미 보도된 내용을 인용해 보도한 경우로 엠바고 설정이 더 이상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엠바고를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

출입기자단도 아닌데 엠바고 지키라니

뉴스 엠바고는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병원, 일반회사 등이 언론사에 요청한 특정사안에 대해 보도 유예 요청을 언론사가 받아들였을 때 성립되는 것이다. 즉, 언론사와 뉴스 엠바고 요청 기관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사가 판단하기에 뉴스 엠바고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뉴스 엠바고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청와대의 제재 대상이 된 3개 언론사는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포함되지 않은 언론사들로 실질적으로 국방부와 국방부 출입기자단 사이에 합의한 뉴스 엠바고를 지킬 의무가 없다. 이들 3개 언론사에 엠바고 파기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국방부가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포함되지 않은 3개의 언론사와 개별적으로 뉴스 엠바고를 합의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아무런 합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뉴스 엠바고를 어겼다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계약도 하지 않고 책임을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뉴스 엠바고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최소화되어야 하며, 심사숙고 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기관의 편의를 위해 뉴스 엠바고가 남발되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기관에 대한 취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탄압하는 행위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 엠바고, #알권리, #언론의 자유, #NEWS EMBARGO, #최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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