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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호의 얼음이 얼어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괴산호의 얼음이 얼어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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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때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고 오는 경우가 있다. 나에겐 충북 괴산의 산막이 옛길이 그렇다.

지난 22일~23일 여행 작가 학교 동기들과 괴산으로의 여행, 그 첫 번째 코스로 선택된 산막이 옛길. 동기 중 한분의 부모님이 펜션을 운영하고 계신다는 이유로 우리의 여행지는 괴산으로 결정되었고, 그분의 추천으로 산막이 옛길이 첫 번째 코스가 되었다.

일행 대부분이 괴산 여행은 처음이거니와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산막이 옛길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미지의 길이었다. 걷기 여행을 선호하는 나에게 충분한 호기심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실망할 것이 두려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마음 속을 간지럽히던 곳, 괴산의 산막이 옛길을 걸어보자.

산막이 옛길은 괴산호를 끼고 산막이 마을까지 조성된 3.1km의 길로, 산이 막혀 가지를 못한다는 뜻의 산막이 마을의 이름을 따 '산막이 옛길'로 이름지어졌다. 길은 괴산호를 따라서 이어진 데크길과 등잔봉으로 올라 한반도 전망대와 천장봉을 찍고 산막이 마을로 내려오는 등산코스로 나누어진다.

우리는 걷기 편한 데크길을 선택했지만, 한반도 전망대에서는 한반도 지형과 비슷한 괴산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매력적일 듯하다. 요즘엔 한반도 지형이 너무 흔해진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괴산 산막이옛길의 차돌바위 선착장, 봄부터 가을까지는 유람선이 운행된다.
 괴산 산막이옛길의 차돌바위 선착장, 봄부터 가을까지는 유람선이 운행된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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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의 초입은 아직 미완성이다. 눈으로 덮혀 있어 정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길을 닦는 중이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얼마 전 다녀왔던 서산의 아라메길이 생각나 살짝 실망할 뻔했다. 여기도 그곳처럼 나무를 다 베어내고 길 욕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우려섞인 한숨이 흘러나온다.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들과 눈이 녹은 자리에 드러나는 흙빛이 마치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진 모습을 연상케한다. '새순이 트는 봄에 오면 이곳도 좀 풍성해지겠지'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길을 따라 걷다 간이 화장실이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을 해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차돌바위 선착장이 나타난다. 계속되는 한파로 단단하게 얼어버린 호수에 묶여 있는 선박은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움직일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시로 유람선이 운행을 한다. 배삯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푸른 호수 위로 유유히 흐를 유람선을 상상하니 꽤나 낭만적인 풍경이 그려진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산막이옛길을 찾아야겠다.

여기서 잠깐! 선착장으로 오는 길목에 있던 화장실이 산막이마을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화장실이다. 주차장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선착장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화장실에 대한 나의 힘들었던 경험담은 잠시 후에 다시 털어놓기로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연리지
 사랑하는 사람이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연리지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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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의 운치있는 풍경에 반해 발길을 떼지 못하는 동안, 일부 일행은 이곳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미안한 마음 한덩이.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한 나무처럼 합쳐진 연리지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연리지 앞에서 기도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연리지 옆으로는 연인들의 이름과 소망이 새겨진 하트 모양의 목판들이 줄지어 있다. 형태가 온전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쪼개지고 부숴진 것들도 눈에 띈다. 분명 스스로 부숴지진 않았을 텐데, 누군가의 장난이라면 참으로 괘씸하다. 연리지의 힘을 믿든 믿지 않든, 그때만큼은 한자 한자 글자를 새겨넣으며 진심을 담았을 텐데 말이다.

길쪽으로는 고인돌 쉼터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다. 이곳은 고인돌 형태의 바위들과 주변에 돌무지와 큰 뽕나무, 밤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옛날 사오랑 서당이 여름철 더위가 기승일 때는 이곳에서 야외 학습을 했다고 전해진다. 호수에서 불어온 바람이 책장을 넘기고, 송글송글 맺힌 땀을 씻어줬으리라.

소나무공원 산책로
 소나무공원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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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쉼터를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40년생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동산이 펼쳐져 있다. 솔향기를 맡으며 삼림욕을 즐기다보면 몸도 마음도 정화가 되는 기분이다. 길 옆으로 괴산호가 내려다 보이니 시야가 확 트여 가슴 속 까지 뻥 뚫리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눈 덮인 겨울 호수도 아름답지만 눈이 다 걷히고 얼음이 녹으면 펼쳐진 잔잔한 호수도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장난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 하시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것도 잠시, 하얀 세상 아래 감춰진 모습들을 상상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산막이 옛길 곳곳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잘 만들어 놓은 공간은 또 하나의 감동이다. 날씨만 따뜻하다면 책 한권 손에 들고 앉아 망중한을 즐길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지게 위에 한편의 시가 담긴 목판을 얹겠다는 발상의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이런 소소한 소품들이 산막이 옛길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길이 심심할 때쯤 나타나는 출렁다리는 재미를 더해준다
 길이 심심할 때쯤 나타나는 출렁다리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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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오솔길로만 걷기 심심할 때쯤 소나무 사이로 긴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물론, 나는 쓸데없는 겁 때문에 이 곳을 포기하고 계속 오솔길을 고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출렁다리에 발을 들여놓은 일행 중 몇몇은 식은땀을 삐질대며 끝까지 건너야 했다. 긴 사투를 끝낸 일행들은 저마다 한숨 섞인 한 마디씩을 뱉어낸다.

"하아. 이렇게 힘들 줄 몰랐네."

여유롭지만 심심한 길을 선택한 나는 그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또 한 번 웃는다.

출렁다리의 입구에는 아기자기한 우편함이 마련되어 있다. 아래 보관함에 준비되어 있는 엽서를 꺼내 사연을 적어 위쪽 우편함에 넣으면 수취인에게 전달이 되도록 해 놓았다. 여행지에서 종종 보던 모습이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엔 시도해 보겠다며 서랍을 열었다. 한 장의 엽서와 볼펜을 꺼내들고 벤치에 앉았지만 결국 다시 보관함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볼펜에 잉크가 없어서. 항상 다니고 다니던 볼펜을 하필 오늘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출렁다리로 건넜을 일행들은 못봤을 나무, 조금은 민망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정사목.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에서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야 발견할 수 있지만, 길가에 19금이라는 표지판 호기심을 무한 발동시키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산책로를 고집한 일행과 둘이 민망함에 키득거리며 재빨리 내려왔다.

괴산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세루
 괴산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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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담, 예전에 벼를 재배하던 논으로 오직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의존하여 모를 심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새로이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피게 해 놓았다. 지금은 연꽃을 볼 수 없는 계절이라 표지판이 없었다면 이곳이 연못인지도 구별하지 못했을 거다. 꽃이 만개할 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산막이옛길, 어쨌든 봄 되면 다시 꼭 찾아야 할 이유 투성이다.

연화담을 지나 괴산호쪽으로 따라가면 망세루로 이어진다. 망세루는 남매바위라 불리는 바위 위에 정자를 만들어 비학봉, 군자산, 옥녀봉, 아가봉과 좌우로 펼쳐진 괴산호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이다.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자연과 함께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지만 난 이곳에서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했던 화장실 사건이 여기서 터진 것이다. 산막이옛길의 화장실은 모두 간이화장실이다. 그러니 내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저분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주차장에서도 선착장에서도 괜찮겠지 하고 참았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인내심을 소진하고 말았다. 주차장에서 망세루까지는 거의 1km의 거리. 선착장 화장실이 가장 가깝지만 화장지가 차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주차장까지 가는 수밖에…. 결국 다시 돌아가 시원하게 일을 해결하고 다시 일행들의 뒤를 쫓았다.

굳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민망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방문객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일행들에게 장난으로 "오늘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어, 화장실은 그때 그때 가자"라고 말을 했지만 절대 헛된 말은 아니다. 더불어 이곳을 추천해준 일행의 말에 의하면 자금 부족로 제대로 된 화장실 하나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니 이 또한 발빠른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이 아름다운 산막이 옛길의 이미지 훼손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망세루를 지나면 걷기편한 나무데크길이 이어진다. 불가피하게 계단을 만들어야 했던 데크길에는 자전거족을 위해 경사진 나무판을 덧대어 놓는 센스까지 돋보인다.

길을 따라 열심히 일행을 뒤쫓아가다 순간 멈칫했다. 내 눈 앞에 호랑이가 떡하니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형. 깜빡 속아 한 두걸음은 뒷걸음질을 쳤던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 세상에 동물원도 아닌 사람들이 버젓이 다니는 산책로에 호랑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나도 참. 호랑이 모형의 뒤쪽으로 보이는 굴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여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이라고 한다.

매의 머리 형상을 닮은 매바위
 매의 머리 형상을 닮은 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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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앞을 지나오면 이번엔 매가 나타난다. 누가 봐도 매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매바위다.매바위라는 명칭은 어느 지역에 가도 흔한 것이지만 이렇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매바위를 지나 길모퉁이를 돌면 한 여인이 옷을 벗고 앉아있다. 안내판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옷을 벗고 엉덩이를 보이며 무릎을 꼬고 앉아 있는 듯한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40여년생 참나무라고 설명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그런 형상이지?'하고 의아해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꼰 다리를 위로 들고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지지 말아요! 부끄러워요!'라는 표지판도 익살맞다. 어쨌든 보면 볼수록 요염한 여인네다.

앉은뱅이가 물을 먹고 걷게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앉은뱅이 약수터
 앉은뱅이가 물을 먹고 걷게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앉은뱅이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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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의 중간쯤에는 앉은뱅이 약수터가 있다. 옛 오솔길 옆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앉은뱅이가 지나가다 물을 마시고 난 후 벌떡 일어나 걸어갔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약수터다. 수질이 좋고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더니 겨울인데도 물이 얼지 않고 나오는 걸 보면 그 말이 허튼 말은 아닌가보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나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얼음 바람골이 나타난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바람이 산막이옛길을 걷는 자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주며,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하여 얼음바람골이라고 한다. 골짜기 아래 가만히 서서 바람을 느껴봤지만 머리카락 한올도 날리지 않았다.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가 아니라 '한여름에만' 한기를 느낄 정도로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일행들이 이미 산막이마을에 도착해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호수 위를 걷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바쁜 걸음을 재촉해서 도착한 곳은 호수전망대. 이곳에서는 괴산호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저 멀리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쪽으로 넘어오라는데 아무리 얼음이 두껍게 얼었지만 물 위를 걷는다는 건 조금 무서워서 망설였다. 왔던 데크길을 따라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일행들과 함께 하고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발을 디뎠다. 이때부터 나는 호수를 벗어날 때까지 온몸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괴산호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호수전망대
 괴산호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호수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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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위에 서서 미처 가지 못한 길을 바라보니 번지점프대를 연상케하는 난간이 눈에 들어온다. 산막이옛길의 고공전망대다. 어차피 고소공포증때문에 가보지도 못했을 곳이지만 왠지 아래에서만 올려다봐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길을 완주한 일행들에게 물어보니 더이상은 볼 것이 없었다고 한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마흔고개, 다래숲동굴, 진달래동산, 가재연못, 산딸기 길등이 명소로 지정되어 있지만 어차피 겨울엔 진가를 발휘하긴 어려운 풍경들이라는 판단하에 과감히 미련을 버렸다.

얼음호수 위를 걷는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중간 중간 멀리 얼음이 녹아 물이 드러나는 곳도 있었고, 눈이 쓸려간 자리에는 얼음 아래의 모습이 비춰 아찔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걸음을 빨라지고 몸 전체에 긴장이 더해져 담이 올 것만 같았다. 한발 한발 디딜때마다 애꿎은 발가락에 힘만 잔뜩 주게 되었다. 의연하게 걸어보자 마음 먹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겁쟁이가 된건지…. 조금만 마음을 여유롭게 먹었다면 그 풍경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더불어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한 관리의 필요성도 생각해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22475518 개인블로그에 중복게재된 글입니다.



태그:#산막이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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