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를 떠난 선배와 후배가 다시 만났다. 선배가 다녔던 학교를 청소하던 아주머니와 후배가 다니는 학교에서 해고당한 아주머니를 위해 만났다. 비록 몇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아주머니들의 복직을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22일 기자가 찾은 홍대 앞 정문에는 환갑을 앞둔 아주머니들과 학생들이 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고 있었다.

빵집 사장님, 75만 원짜리 청소노동자가 되다

노병의 투쟁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붉은 조끼를 입었다. 조끼에 적힌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의 문구가 낯설기만 하다. 노년에 월급 1억을 받는 이가 있는 반면, 이들은 월급 75만 원을 받았다. 75만 원의 월급으로 자식들 먹이고, 대학까지 보냈다.

1월 2일 이들은 졸지에 생계를 잃었다. 많게는 10년이 넘게 일한 직장이었다. 회사는 이제 계약이 끝났으니 그냥 가라고만 했다. 회사는 이들의 밥그릇을 깨버렸다. 학교에 항의를 해보았지만, 학교는 '해고문제는 용역회사 내부의 고용관계에 관한 것으로 본교와 법적으로 전혀 무관하다'는 말만 했다. 노병의 투쟁은 20일째를 맞고 있었다.

지난 2일 해고된 홍대 청소노동자 서복덕(57)씨.
▲ 청소노동자 지난 2일 해고된 홍대 청소노동자 서복덕(57)씨.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애들이랑 가끔씩 커피도 마시고, 얘기도 해. 그럼 애들이 남자친구 생겼다, 헤어졌다 다 얘기해줘. 미대 애들은 예술하고 공부만 해서 진짜 착해. 애들이 다 자식 같아. 애들이 농성하는 줄 알고 이틀마다 찾아와. 미안하고, 고맙지. 애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

서복덕(57)씨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서씨는 농성을 하고 난 후부터 미대 학생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지난 17일 노조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서씨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녀가 울자 기자회견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청소노동자들도 울고, 방문 온 학생들도 울었다. 울고 있는 서씨 앞에서 기자들은 연방 플래시를 터트렸다.

노동조합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서씨는 5년 전까지 조그만 빵집을 운영했다. 큰 수익은 아니었지만, 네 식구 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동네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빵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빵집을 그만두고 홍익대학교 청소직으로 일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씨가 담당한 구역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4층과 8층이었다. 학생들이 물감 흘리면 수세미질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8층 건물에서 쓰레기더미를 끌고 내려왔다. 조소과 실기시험이 있는 날이면 석고상 쓰레기가 넘쳐났다. 쓰레기의 양과 무게가 갑절이 많아졌다.

서씨 월급은 75만 원, 식비는 하루 300원이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남편의 월급과 서씨의 월급으로 두 딸아이는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막내딸이 얼마 전에 취업을 했지만, 서씨의 딸 걱정은 변함없었다.

"이제 막 졸업해서 취직했는데, 사회초년생이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 학자금대출도 있으니까. 나도 같이 갚아줘야지."

"우리딸은 (농성) 그만 하라고 하지. 엄마 아플까 봐. 내가 보기에는 이래도 종합병원이야. 안 아픈 곳이 없어."

서씨는 당뇨, 요통, 위염, 오십견, 고혈압을 앓고 있다. 얼마 전 농성장에 진찰 온 한의사는 당뇨 관리를 잘하라고 당부하고 갔다. 서씨는 농성 시작하고, 혈당을 한 번도 재지 못했다. 혹시라도 당뇨 합병증이 생길까 봐 걱정되지만, 공공노조 홍익대학교 부분회장인 그녀는 농성장을 떠날 수가 없다.

홍대 문헌관 청소노동자 농성장에 붙어있는 공개수배 자보.
▲ 공개수배 홍대 문헌관 청소노동자 농성장에 붙어있는 공개수배 자보.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월 100만 원짜리 경비노동자가 건넨 '박카스'

"학교 측 입장이 자기네들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해. 물론 이해는 돼. 하지만 여기는 이윤을 추구하는 장사꾼이 아니잖아.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지. 법이 만사가 아니지. 장사꾼들처럼 그러면 안 돼. 그것도 교육기관에서…."

김동춘(60)씨가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며 말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잔을 건네며 '박카스니까 마시라'고 했다. 추운 농성장에서는 박카스(소주)를 마셔야 잘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오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일한다. 문을 다 잠그는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는 휴식시간으로 포함돼 근무시간 적용을 받지 않는다. 홍익대 경비직임금은 100만 원이다. 최저임금 4180원으로 계산을 하면, 김씨는 매달 약 20만 원가량 덜 받는다.

"경비특수직은 최저임금의 80%까지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데.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 최저임금이 뭐야. 경비직 같은 사람들한테 예외조항을 만들고 어떻게 최저임금을 얘기할 수 있어. 우리는 이거라도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이야. 나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지 이해가 안 가."

23일 새벽 잠을 자고 있는 청소노동자
▲ 농성장의 새벽 23일 새벽 잠을 자고 있는 청소노동자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침낭이 미처 덮지 못 한 콧잔등에 한기가 느껴졌다. 여름용 침낭으로는 한 겨울 농성장 추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시멘트 바닥 위에서 침낭에 의지한 채 잠을 자는 청소노동자들은 마른 기침을 했다. 코골이가 심한 할아버지 옆에서 잠든 이들은 연신 뒤척였다.

서복덕씨에게 "잘 때 춥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농성장에서 자는 잠은 잠이 아니다"고 답했다.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먼저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홍대 농성장은 당번을 정해, 하루 3끼를 직접 해먹는다. 마땅한 취사도구도 없지만, 50인분의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이날 아침은 시레기국과 오징어포,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청소노동자들이 다 집에 가면 엄마들이니까 못 하는 음식이 없어. 김치찌개, 카레, 순두부찌개, 콩나물국 등을 주로 해먹어. 집에서보다 더 잘 먹는 아저씨들이 많아."(서복덕씨)

식사를 하는 동안 다른 60대 경비노동자들이 임씨에게 늙은이처럼 오전 4시에 일어난다고 놀렸다. 임씨는 12년 째 오전 4시에 일어난다. 인천에 사는 임씨는 경비직 특성상 오전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다음 날 오전 4시에 일어난다. 12년 동안 오전 4시에 일어난 임씨는 해고되었지만, 아직도 오전 4시에 일어난다.

일요일 아침 대청소를 하고있는 청소노동자.
▲ 청소노동자 일요일 아침 대청소를 하고있는 청소노동자.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아침을 먹자 생수통 4개를 끌고 4층으로 올라갔다. "왜 4층에 가서 설거지를 하냐"고 물었다. 서씨는 "학교 측에서 뜨거운 물을 끊었기 때문에 따뜻한 물을 받아 호수가 있는 4층에서 설거지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청소의 달인이잖아"

아침 조회를 마치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며칠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농성장에는 먼지와 흙이 많았다. 건물 밖에 나가 침낭을 털고, 그 동안 쌓인 먼지들을 닦아냈다. 청소노동자들의 손이 몇 번 지나가자, 농성장은 깨끗해졌다. 한 청소노동자는 기자를 보며 "우리는 청소의 달인이잖아, 우리 손 몇 번가면 깨끗해져"라고 말했다. 

농성장에서 나와 내려가는 길에 아침조회 때 나온 공지사항이 생각났다.

"어디 가실 때 꼭 말씀하시고 가세요. 혼자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싸움은 함께 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어머님들은 건강을 꼭 지키셔야 합니다."

홍대 농성장에 붙은 포스터
▲ 청소노동자 홍대 농성장에 붙은 포스터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구태우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청소노동자, #홍익대학교, #비정규직, #간접고용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