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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갈대와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
▲ 제주도 중산간 갈대와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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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제주를 떠나고 나서 몇 번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제주도는 나를 반겨주지 않았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 50mm 단렌즈 하나만 달랑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왔습니다. 한 가지 신경 쓴 것이 있다면 삼각대를 챙겨왔다는 것이요, 화각이 좁은 50mm 단렌즈의 단점을 보완해줄 스마트폰을 챙겨왔다는 것입니다.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여명의 아침
▲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여명의 아침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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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그런가 봅니다.
제대로 챙겨올 걸 후회하게 하는 날씨이거나 이렇게 챙겨왔는데 날씨가 왜 이럴까 하는 후회 같은 것이지요. 사진을 담기에 좋은 날씨가 싫은 것이 아니면서도 남는 그 미련 같은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제주도에 살 적에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던 오메가를 행운처럼 만났습니다. 인증샷 정도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렇게 해서 또다시 떠오르는 해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가 보다 생각하니 위로가 됩니다.

제주의 바람에 누워버린 억새
▲ 누워버린 억새 제주의 바람에 누워버린 억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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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에서 가장 추운 시간은 해 뜰 무렵이라고 합니다.
밤과 낮의 경계를 가르는 시간, 어둠과 빛이 분명하게 나뉘는 시간, 이것과 저것이 분명해 지는 시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하는 시간이라는 상징성을 잘 품고 있는 듯합니다. 혁명과 반역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그 순간 같은 것이지요. 영상 기온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인지라 제주의 바닷바람이 만만치 않습니다.

종달리 앞바다의 아침
▲ 제주바다와 파도 종달리 앞바다의 아침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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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여미고, 시린 손을 비비고, 얼얼해지는 볼을 비벼가며 시간 따라 변하는 오묘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의 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뜹니다. 아무리, 그렇게 두 눈을 부릅떠도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일출 혹은 일몰의 시간에 잠시 나타나는 신비한 푸른빛을 보질 못했습니다. 그 빛을 보지 못했지만, 늘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제주의 돌을 감싸 안는 하얀 파도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제철은 아니지만, 고소한 자리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 자리구이 제철은 아니지만, 고소한 자리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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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제주시에 있는 미풍해장국이 먹고 싶다 했습니다. 아이들은 성산일출봉 가계부 앞에 있는 허름한 고깃집의 삼겹살과 콩나물 무침이 먹고 싶다 했습니다. 나는 모슬포항 돈지식당의 자리구이가 먹고 싶었습니다. 다 먹고 가자고 했습니다. 여행길에서 멋진 풍광을 만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맛난 음식을 만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니까요. 정말 맛난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추억이라는 양념이 듬뿍 들어 있는 밥상이 그리운 것이겠지요.

모슬포항에서 바라본 모슬포
▲ 모슬포 모슬포항에서 바라본 모슬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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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보냈던 대학시절, 그런데 나 역시도 한 가정의 독재자가 되어 있습니다. 인식하든 말든 그렇습니다. 그 먹고 싶다는 것들 가운데 내가 먹고 싶다는 자리구이를 먹으러 모슬포항 돈지식당으로 갔습니다. 충분히,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교묘하게 내가 원하는 곳을 먼저 간 것이지요. 가족들조차도 자신들의 뜻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면서 말이지요. 뼈에서부터 머리까지 모조리 다 씹어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육지 것의 한계로 그리 먹지는 못했습니다.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 제주의 일출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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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제주에 살았어도 보지 못했던 오메가를 이틀 연속으로 보았습니다.
우도가 보이는 종달리 앞바다에서 황홀한 오메가의 해돋이를 만났고, 성산일출봉 근처의 광치기 해변에서 또 한 번의 황홀한 해돋이를 만났습니다. 제주에서 오메가의 해돋이를 만나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곤 했는데, 이틀씩이나 연이어 바다에서 떠오르는 끈적끈적한 불덩어리를 만난 것입니다.

우도 우편으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처음처럼, 마지막 처럼.
▲ 종달리 바다의 일출 우도 우편으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처음처럼, 마지막 처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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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시작되는 알파의 시간에 마지막을 상징하는 오메가를 만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지금 저 해는 어느 땅에서는 해넘이일 것입니다. 해넘이와 해돋이의 붉은빛은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아져야 한다는 상징일 것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오늘 살아가는 날이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바다를 닮은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 만나고 싶습니다.


태그:#일출, #제주도, #모슬포, #종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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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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