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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이후 6개월이 흘렀다. 야권연대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각각 '공동정부 운영'을 약속했다. 실제로 각기 단위 현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6.2 지방선거 이후 달라진 지역별 공동정부 상황을 점검했다. 점검의 대상은 지난 선거에서 공동정부 운영을 약속했던 자치단체들이다. 서울, 인천, 경남, 경기도 고양시 등 다양한 지역현장의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비전을 묻는 생중계 좌담도 마련했다. 모두 5차례로 나눠 지방정부 7개월 성과와 한계를 따져본다. [편집자말]
최성 고양시장이 20일 고양시 공동시정운영위에서 서울시의 혐오시설에 대한 시의 입장을 운영위원에게 설명하고 있다.
 최성 고양시장이 20일 고양시 공동시정운영위에서 서울시의 혐오시설에 대한 시의 입장을 운영위원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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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조직개편안을 보니깐, 주민자치업무에 대해 아직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자치행정과에 주민자치팀을 꾸린다고 돼 있죠. 하지만 참여예산제나 자치센터 운영, 주민창안 등 각종 주민자치 업무를 '팀'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민자치국'을 꾸려 순수하게 이 업무를 담당해도 일이 넘칠 거예요."

지난 20일 오후 고양어울림누리 별따기배움터 3층. 23차 고양시정운영위에 참석한 이춘열 전 고양무지개연대 집행위원장이 격하게 말을 쏟아냈다. 당초 주민자치업무를 담당하는 독립된 '과 부서'를 꾸리기로 했다가 자치행정국의 '팀'을 꾸리는 정도로 개편안을 만든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는 또 평화·인권팀 등 최성 고양시장의 선거공약에 따라 확대·강화돼야 할 부서들도 전혀 강화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고양시청 기획예산과의 송이섭 과장은 "과를 하나 더 신설하는 것은 시 공무원 총 정원을 늘려야 되는 문제다, 행정안전부까지 연계돼 있다"며 "시장도 이 조직재설계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고 있다"고 이해를 구했다. 또 조직개편을 위해 20여 차례 토론회와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청 측이 12명의 위원들이 참고할 조직개편안 관련 자료를 단 두 부만 준비하면서 "시청이 진정 시정운영위와 조직개편을 함께 논의할 생각이 있는 거냐"는 지적이 나온 것.

한 시정운영위 위원은 이를 들어, "이솝 우화에서 여우가 두루미를 초청한 저녁식사가 생각난다"며 "마치 긴 부리로 접시에 놓인 못 먹는 두루미와 지금 우리가 같은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결국 시청 쪽이 자료를 다시 복사해 나눠준 뒤에야 조직개편안 논의가 재개됐다.

개혁예산 줄줄이 삭감·주민참여기본조례도 유예... 흔들리는 '연합정치'

6·2 지방선거 당시 연합정치의 '기대주'였던 고양시가 7개월 만에 비틀거리고 있다.

고양시는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연합정치'의 가능성을 가장 꽃 피운 곳이다. 특히, 지역의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연합정치의 기틀을 닦고 방향을 제시했다. '고양무지개연대'는 고양시정의 10대 개혁의제와 100대 정책공약을 제안하는 등 '연합정치'의 내용부터 마련했다. 이처럼 꼼꼼하게 짜인 밑그림 위에서 출발한 '선거연합'은 대단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단일 후보로 출마한 최성 민주당 후보는 54.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광역 및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압승했다. 도의원 선거는 모두 이겼고 기초의원 30석 가운데 17석을 확보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60%의 득표율을 얻었던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 비해 고양시의 정치지형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연합정치는 좀처럼 전진하지 못했다. 민주당 등 야5당과 고양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동시정운영위원회는 운영위원장 선출을 놓고 내홍을 겪었다. 공동시정운영위원회를 조례 제정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도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김혜연 진보신당 의원 등 야당 의원 11명이 지난해 12월 22일 '고양시정주민참여위원회'의 설치 등을 포함한 '고양시 주민참여기본 조례안'을 발의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중심의 자문기구인 시정운영위원회를 해소하고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나 이 조례안 역시 지난 12월 29일 해당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됐다.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와 자치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예산들도 2011년 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뭉텅 잘려나갔다. 주민자치헌장 제정 위원 수당 1840만 원, 주민자치위원 역량강화 교육비 2000만 원, 마을학교 만들기 사업예산 2925만 원, 주민자치운영관계자 연찬회 예산 2000만 원, 주민자치아카데미 예산 2억 원 등이 지난 연말 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마을가꾸기 공모사업비는 당초 요구액 3억 원에서 대폭 삭감된 4800만 원으로 정해졌다.

문제는 이 예산들이 전체 시예산 편성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았단 점이다. 시의회는 이보다 더 규모가 큰 초등학교 전학년 무상급식 지원 예산 126억 원은 '무사 통과' 시켰다. 이 때문에 '시정운영위원회'에 대한 시의회의 불편함이 반영된 예산심의였단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시의원 중 일부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이 벌어진 금정굴의 위령사업 타당성 예산 2200만 원을 전액 삭감하는 데 일조하면서 '연합정치' 구성원 사이의 신뢰마저 흔들렸다.

이와 관련, 고양시청 기획예산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주민자치 관련 예산은 약 2억5000만 원 정도로 2011년도 총예산 1조1712억 원 중 정말 미미한 정도"라며 "시에선 향후 시의회와 협의하여 2011년 2월 예정인 추가경정예산에 반영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홍' 겪는 민주당... 시의원 13명 중 절반은 '반연대파'

영화배우 문성근씨, 최성 민주당 고양시장 후보,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2010년 5월 2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미관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손을 함께 들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단일후보였던 최성 시장은 6.2 지방선거에서 54.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영화배우 문성근씨, 최성 민주당 고양시장 후보,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2010년 5월 2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미관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손을 함께 들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단일후보였던 최성 시장은 6.2 지방선거에서 54.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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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등 야권이 상당수 의석을 점유한 시의회가 '연합정치'의 걸림돌로 불거진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김혜연 진보신당 고양시의원은 "고양무지개연대로 대표되는 연합정치 실험이 사실 시의회 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당시 고양무지개연대가 추동해 낸 선거연합이 광역·기초단체와 광역의회엔 일정한 파괴력을 보였지만 중선거구제로 2~3명의 후보를 선출하는 기초의회에선 큰 영향력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민주당 고양시의원 지역구 당선자 12명 중 9명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고양무지개연대의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고양무지개연대의 지지후보랑 경쟁했다.

이 같은 근원적 한계는 작년 7월 1일 의장단 선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선거연합에 비우호적인 민주당 내 다수파가 의장으로 당선됐고 부의장 자리는 한나라당이 차지했다. 시의회 5개 상임위원장 자리는 민주당 3개, 한나라당 2개로 분점됐다. 이는 예산삭감 과정과 주민참여기본조례 제정 실패로 이어졌다. 김 의원이 지난 12월 발의한 '고양시 주민참여기본 조례안'에도 김필례, 김영복, 소영환, 이화우, 장제환, 한상환 등 민주당 시의원 6명은 서명하지 않았다.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도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양지역의 민주당 인사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연대·연합에 부정적인 시의원들이 매사 연합정치의 일환인 정책이나 예산에 반대하고 있다"며 최근 고양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으로 한나라당 시의원을 선출한 것을 '반연대파'의 발목잡기의 일례로 들었다.

성추행 사건으로 위원장직을 사임한 현정원 시의원(현 의원은 위원장직 사임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함) 후임으로 민주당이 선출될 수 있었는데도 '반연대파' 시의원들이 한나라당에 협조해 임형성 현 한나라당 시의원이 위원장이 되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이었다.

임 의원은 지난 11일 임시회에서 총 17표를 획득, 12표를 얻은 이윤승 의원(민주당)을 제치고 문화복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현재 고양시의회 30석 중 한나라당은 13석, 민주당 13석, 야3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4석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민주당 시의원 중 일부가 이 의원이 아닌 임 의원에게 표를 던진 것.

이 관계자는 이런 점을 볼 때 중앙당 차원의 정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중앙당이 2012년 총·대선에서도 '야권연대'를 통해 집권하겠단 목표를 세운 만큼 지방의 '연합정치'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게 맞고, 고양의 '반연대파' 시의원들처럼 연합정치의 기반을 갉아먹는 이들을 제제하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연합정치 진척 정도에 대한 시민사회 쪽의 요구 수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방선거 이후 7개월이나 지난 가운데, 아무 것도 실현시키지 못한 셈인 만큼 민주당 쪽에서 그런 '볼멘소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란 얘기였다.

반면, '고양시 주민참여기본 조례안'에 서명하지 않은 민주당 시의원 중 한 명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일단 시장을 뽑았으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하지 않냐"며 시정운영위가 과도하게 시와 시의회를 압박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문제가 된 문화복지위원장 선출에 대해서도 "당초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시의회 의장단 구성 당시 합의대로 한나라당이 계속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게 맞다고 결정했는데 일부 이견이 있어 표결을 진행한 것"이라며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주당 내 '내홍'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고 반박했다.

"2012년 총·대선 야권연대 위해서라도 지방정부 연합정치 성공해야"

현재 시정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를 '민주당의 복합적 정체성'으로 규정했다.

그는 "지역기반 혹은 호남향우회를 정체성으로 삼는 민주당과 민주화 운동 세력을 정체성으로 삼는 민주당이 동시에 존재한다"며 "이 두 가지 정체성이 선거 당시 '반MB 연대' 전선으로 뭉쳐져 있다 선거 이후 갈라졌다"고 말했다. 또 "연합정치나 개혁적 시정에 대한 최성 시장의 정치적 의지가 박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최 시장도 양쪽의 민주당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교수는 "민주당 중앙당이 연합정치의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방정부의 연합정치가 실패로 끝난다면 야권 간의 불신만 키워 2012년 총·대선에서의 선거연합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설명이었다.

"연합정치를 시도한 점, 현실정치와 부딪히며 한국의 주민자치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확인한 점 등은 의미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화, 즉 '굳히기'가 안 된 상태다. 시민사회 측에선 이 제도화 속도가 늦은 것에 대해 불만이고 민주당은 자신들의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다. 연합정치의 딜레마인 셈이다."

"연합정치 7개월 동안 고양시가 거둔 성과는 0%"라고 일갈한 이춘열 전 고양무지개 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런 시의회의 문제점은 "돌파해야 할 조건일 뿐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양지역 야권연합의 최대 수혜자인 사람들의 거버넌스 의식이 예상보다 취약했던 게 더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며 고양의 '연합정치'를 처음부터 다시 짚고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올 2월 말까지 공동시정운영위를 운영한 뒤 현재의 모든 쟁점을 총망라한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한 상태다.

우선 이 전 위원장은 "각 단위별로 숙의와 토론을 통해 다시 연대·연합 정신을 복원하고 연합에 참여했던 각 구성원들이 당시 맺었던 협약 이행의사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7개월간의 고양시 연합정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한시 바삐 새 출발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초기 개혁에 실패했던 안팎의 진보개혁세력의 전철을 밟게 될 것 같단 위기감이 든다. 함께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체계를 종횡으로 다양하게 엮고 진지하게 대화하며 협의한다면, 지금이라도 고양무지개는 다시 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태그:#연합정치, #고양, #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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