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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지인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소위 사회적으로 정해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올해 접한 두 건의 결혼 소식은 새삼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과 동시에 생면부지의 통영에 신접살림을 차린다는 소식이 그러했고, 대학교 후배 또한 결혼을 하면서 고단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연고 하나 없는 진해로 내려간다는 알림이 그러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낯선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삶, 전업주부를 선택한 지인들의 행보가 왜 그토록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삼십여 년 전, 나의 어머니는 부모형제의 곁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의 직장이 그곳에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언니와 나를 낳고 삼십여 년을 살았다. 한데 이제 내 지인들이 내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살아가겠다고 한다. 낡은 필름이 지리하게 리플레이 되는 것처럼, 무엇인가가 무한 반복되는 느낌에 입맛이 썼다.

 

내 친구의 신혼집

 

그토록 기다리던 서른이 끝나갈 즈음,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넉넉한 여행경비도, 자동차도, 대단한 배포도 없는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막연히 '남해 쪽으로 가볼까'라고 생각했지만, 꽤 오랜만에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발바닥에 끈끈이주걱이라도 붙은 것처럼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쑥 통영에 '연고'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내게는 통영에 신혼살림을 차린 친구가 있었지. 결혼식에 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 5, 6년 동안은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데 무작정 연락을 했다. 통영에 갈 일이 있으니 얼굴이나 보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나는 통영으로 떠났다.

 

놀랍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했다. 결혼을 했다고 '나 기혼 여성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고, 결혼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으니 부부라기보다 연인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일진데, 새삼 나의 놀라움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친구는 달라져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서 밥을 차려 주겠다고 집으로 데려가는 친구 앞에서 '사실 나는 얼굴만 보려고 했을 뿐 잠은 찜질방에서 자려고 했다'는 계획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신혼집과, 거실 한가운데 걸린 웨딩 사진과, 한 상 거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니 드디어 친구의 결혼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남편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든 후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만나지 못한 수년간의 사건사고와 심경을 털어놓는 동안, 마치 십몇 년 전 우리가 함께 다닌 고등학교 스탠드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등꽃 향이 퍼지는 것 같았다. 친구는 결혼을 하긴 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평생 이 남자와 함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결혼이라는 안정된 틀 안에 들어섰다고 해서 모든 생의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불쑥 나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에 대한 불안이 비혼인 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서 야릇한 동질감을 느꼈다.

 

"걔네 엄마는 걱정이 많으시겠구나"

 

다음 날 아침, 친구가 차려준 정갈한 아침 밥상을 먹고 통영의 명소, 한려수도해상공원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그 사이 친구의 어머니가 안부 전화를 걸어왔고, 친구는 명랑하게 "친구 정은이가 놀러왔다"고 말했다. 조금 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친구는 "아니, 아직."이라고 대답했고, 잠시 뒤 조금 더 난처한 기색으로 "아니, 아직"이라고 답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그래, 정은이는 결혼했나?"라고 물은 뒤 "그럼 정은이 언니는 결혼했다나?"라고 물으신 것이다. 아직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의 반응은 '대중적'이었다. "하이고, 그래서 우야노. 정은이 엄마는 걱정이 많으시겠네."

 

아, 이 아연함! 순식간에 나와 내 언니와 우리 엄마는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순간 당신 딸이 생면부지의 도시에서 잘 살아가는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전화를 거신 친구의 어머니에게 남자 하나 믿고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당신 딸의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지, 내가 나이 서른에 결혼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도 없고 통장 잔액도 부실하다고 해서 당신 딸보다 불행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를 따지고 들고 싶었다. 도대체 왜 나는 물론이고, 내 언니와 내 어머니까지 안쓰러움과 걱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명절날 "결혼은 언제 할끼고?"라고 물어대는 친척들 앞에서처럼 배시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구절절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저러니 시집을 못 갔지'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아니, 자기 엄마의 반응에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의 얼굴 때문에? 아니, 친구 어머니에게 저런 말을 늘어놔 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니, 당당한 비혼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없어서? 아니,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유일지도.

 

끊임없이 행복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

 

현재 기혼 상태가 아니며, 인생 계획에 결혼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를 '비혼'이라고 말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로 미혼이 아닌, 비혼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비혼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의 가치관과 행복함과 비전을 증명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하고, 현재 내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드러내야 하고, 결혼하지 않고도 독거노인으로 쓸쓸히 늙어가지 않을 것임을 내보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면 상대는 "언제까지 철없게 살래? 결혼해라"라고 답하고, "불안하고 두렵다"고 말하면 "그러니 결혼하라"고 말한다. 무슨 대답을 해도 결혼으로 흘러들어가는 깔때기, 상자 속에 손을 넣고 '원하는 것을 뽑으라'고 기회를 주는 척하지만, 사실 그 상자 속 모든 쪽지에는 '결혼'이라고 적혀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가 비혼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위에 열거한 모든 조건을 충족한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준비가 덜 된 채로 무대 위로 떠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이크를 들고선 순간, 나는 끝없이 뾰족해진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대로, 부모가 원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내 욕구에 충실하며, 부단히 내 삶을 성찰하며, 이러저러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가를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기혼자들을 한 두릅으로 묶어 나의 대척점에 놓는다. 서로를 노려보며 경쟁하는 대결구도, 안타깝게도 나의 경쟁 상대 속에는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나의 지인들이 서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나는 내 지인들의 선택을 검열하고 그들의 삶을 샅샅이 훑어 내려야만 하는 것인가. 도대체 이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온몸에 바짝 돋아난 가시에 일순 힘이 빠진다. 전의를 상실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비혼의 삶

 

친구와 나는 케이블카에서 내려와 멍게 비빔밥을 먹고 헤어졌다. 친구는 설렘과 기대와 불안과 혼란이 뒤섞여 있는 신혼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홀로 소매물도에 들어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뱃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적당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에메랄드 빛으로 깊어지는 바다와, 수면 위에 반짝이는 햇살과, 콧끝에 걸리는 바다 내음과, 귓전에 울려 퍼지는 카를라 블루니의 음성이 이내 나를 평온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불쑥, 삭막하기 그지없는 서울 한복판에서 오늘도 묵묵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내 비혼 친구들이 떠올랐다. 내가 떠나온 자리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 그리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들과 함께 빚어갈 삶의 무늬를 떠올리니, 꽤 열심히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원래 이렇게 잘 설레고, 쉽게 감동하고, 잘 믿어버리는, 그런 여자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뒤, 칼바람을 뚫고 이사할 집을 찾아다니는 내게 어머니는 '좋은 남자 만나서 작은 아파트 얻어서 착실하게 늘여가라'는 "아파트 합병설"을 던지셨다. 엄마가 괜히 심란해하실까 봐 결혼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엄마를 위해서'였다. 나란 여자가 이토록 사려 깊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건만 보러 다니는 집마다 '이 집에 살던 사람이 결혼을 해서 나간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동년배들이 졸업한 교실에 홀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어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주는 지인들 덕분에, 그 격려에 힘입어 나는 다시 비혼으로 살아갈 보금자리를 계약했다. 새집에서도 나는 기쁘고, 즐겁고, 설레고, 화나고, 불안하고,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내 삶을 채워갈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주변에는 구불구불 비혼으로 살아가는 지인들이 곳곳에서 '여이, 잘 지내?' 들풀처럼 손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냥 우정하게 해 주세요, 네?

 

그래, 내 고등학교 동창은 한 세대 전, 내 어머니가 한 것과 비슷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내 어머니가 결혼을 선택했던 시대와 달리, 비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각각의 변주를 통해 세상은 조금씩 더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혹여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을까 봐, 나는 '여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내 비혼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

 

며칠 전, 결혼해서 진해로 내려갈 예정인 후배에게서 청첩장을 보내겠으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결혼식에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고, 후배는 "선배가 맨 뒷줄에서 눈썹만 나와도 좋으니 그 자리에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난 이제 결혼하는데 넌 언제 결혼할 거냐는 유세나 닦달이 아니라, 인생의 소중한 순간으로의 초대. 나도 모르게, 다분히 방어적이던 마음 한 귀퉁이가 살짝 녹아내렸다. 이런 초대를 주고받을 수 있을 때 '기혼지옥 비혼천국'이라는 편협한 이분법의 늪에 빠지지 않겠다 싶었다.

 

언제 결혼할 거냐고 너무 쉽게 물어보는 당신들. 당신들이 나를 단 한 번도 욕망한 적 없고, 신고 싶은 마음도 없는 '유리 구두' 속에 나를 구겨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와는 좀 다른 선택을 존중하면서, 온기를 나누면서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제발,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우리가 그냥 우정할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언니네 http://www.unninet.net> 채널넷에 실린 칼럼입니다. 


태그:#비혼,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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