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학시절 직접 강의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도 성함이야 물론 알고 있었다. 또 한 분은 워낙 유명한 의사이니 역시 알고 있었다. 앞의 분은 이화여대 김재은 명예교수(80세), 뒤의 분은 정신과 의사인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76세)다.

오늘(1/22, 토) 오후 2시, 서울 세검정에 있는(주소는 종로구 신영동) <가족아카데미아>에서 회원들을 위한 정기 강좌인 '나눔 & 소통의 예띠교실'이 열렸다. 회원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인연의 끈이 닿아 참석하게 된 것. '이근후, 김재은의 살아온 이야기'라는 강좌 제목부터가 편안했는데 분위기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서로 질문과 답을 하기도 하고, 그냥 순서 없이 번갈아 말씀하기도 했는데 2시간 내내 80년 인생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재은 교수
▲ 김재은 이화여대 명예교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재은 교수
ⓒ 유경

관련사진보기


김재은 교수는 자신의 삶에는 세 가지 코드가 있다며, 전쟁과 심리학과 기독교 - 이 세가지가 엮여 자신의 생애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태어나던 해의 만주사변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6,25 전쟁. 전쟁은 힘겹게 살아남은 육체와 정신에 흔적을 남겼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전공 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심리학을 전공해 공저를 포함해 총 128종의 책을 펴낸 학자로서의 삶 또한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교회 성가대원과 반주자로 만나 결혼에 이르렀기에 기독교 또한 삶의 빼놓을 수 없는 코드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두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 먼저 "참 좋은 사람들하고 살았다!"며, 주위에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목숨이 있는 한, 기억이 살아있는 한, 사회에 이바지하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자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이근후 교수의 살아온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4년 아래인 이 교수는 김교수의 삶이 태풍의 핵 자체였다면 자신은 그 핵에서 약간 벗어난 세대라고 정의를 내렸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근후 교수
▲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근후 교수
ⓒ 유경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에서 받은 교육, 좌우로 나뉘어 혼란스럽던 시절, 정신과 의사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개방병동과 사이코드라마, 정신건강간호사 제도 도입 등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물론 부인(이동원 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과의 만남과 결혼생활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은 '내 멋대로 살았다'며,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얹혀온 삶이었고 그래서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겸손의 말을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분은 주거나 받거니 하면서 김 교수가 복사해온 시 낭독이라든가, 결혼식 주례 경험담과 함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지침(인내심을 가져라! 현명한 문제해결력이 있어야 한다!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이라든가, 이성 친구의 소중함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곳까지 넘나들며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두 분의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했다. 

파안대소하는 두 분의 모습이 유쾌하다.
▲ 이근후 교수(사진 왼쪽)와 김재은 교수 파안대소하는 두 분의 모습이 유쾌하다.
ⓒ 유경

관련사진보기


몇몇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한 후, 두 분은 30명 남짓한 참석자들에게 '이런 자리 역시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좋은 기회'라는 감사 인사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두 분을 보면서 '백세 현역의사'로 유명한 일본의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와 요즘 '백세 시인'으로 놀라운 시집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시바타 도요 할머니를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 노년 모델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냥 있어도 쌓아온 것만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두 분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 주위를 살피는 삶을 살기 위해 힘을 보태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는 모습에 마냥 머리가 숙여졌다.

바로 오늘 아침 부음을 들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과 김재은 교수는 1931년생 동갑으로 서울대 입학 동기이고, 이근후 교수는 바로 얼마 전 통화를 했다며 아쉬워했다.  

오래도록 두 분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인생의 스승이면서, 우리가 걸어갈 인생길을 앞서 걸어가는 선배님으로 오래도록 곁에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 가슴 속에서 여러 차례 밑줄을 그은 두 분의 말씀이다.

○ 행복한 사람과 만나라. 그래야 행복해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교제하라.
○ 우리 민족에게는 '논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정서'가 있기에 성숙할 수밖에 없다.
○ 합리성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비합리성까지도 포용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다. 

덧붙이는 글 | (사)가족아카데미아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라는 기치를 걸고 현대 가족이 처해 있는 문제점을 연구하고 건강한 모델을 실천하는 모임. 이사장 이근후, 원장 이동원. 02-732-8144, 8146. http://cafe.daum.net/familyacademia



태그:#김재은, #이근후, #가족아카데미아, #노년, #노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