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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이란 말이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로 먹거리에 영향을 미쳐 '유기농'이란 또다른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웰빙의 열풍도 영향을 못 미친 것이 있는데 바로 육식 습관이다. 아다시피 잦은 육식은 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한 번 입맛을 들인 육식 습관은 흡연처럼 고치기가 힘들어서 웰빙시대에도 갈비와 삼겹살, 양념치킨은 일상의 음식이 되었다.

 

요즘 수많은 소, 돼지, 닭들이 죽어나가는 비극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구제역 또는 조류독감 발생의 근본원인은 딱 하나다. 육식을 좋아하는 인간들에게 저렴하고 다량으로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 용량을 초과한 많은 수의 동물들을 몰아넣고 키웠기 때문이다. 가축들의 사료 속에 흔히 넣어 먹인다는 항생제도 듣지 않을 정도다. 지역마다 오가는 차량을 소독하고 외지인의 출입을 금하기도 하지만 소용없을 것이다.

 

구제역에도 백신이 있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 백신주사를 놓았으면 지금처럼 온 나라 가축들이 땅 속으로 생매장을 당하며 죽어가지 않았을 텐데. 백신주사를 놓으면 구제역 발생 국가로 찍혀 고기 수출을 못한다 하여 추가 감염을 막는 방법으로 구제역에 대처했다니 세계 제12위의 무역국가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 고통받는다는 생각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 힘을 모으자. 고통 받고 있는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말자고 말하는 분이 이 책 <희망의 밥상 (원제: Harvest for Hope)>의 저자 제인 구달이다. 

 

그들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방법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저항력이 없는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인간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 마하트마 간디

 

효율의 이름 아래 거칠고 딱딱한 콘크리트 우리에서 사는 돼지들, 제 몸 하나 들어가면 옴짝달싹 못 하는 좁은 닭장에서 길러지는 닭. 이는 소들도 마찬가지다. 눕기에도 힘든 우리에 갇혀서 먹고 살만 찌우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소들, 타고난 본성을 표현하지 못하며 사는 소의 실상과 동물들의 원망이 서려있는 이야기가 책속에 절절히 써있다.

 

제인 구달이 말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고기를 아예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가축들의 인도적인 사육과 도축이다. 죽어서 인간의 식탁으로 가는 날만을 기다리며 죽기보다 더한 삶을 사는 불쌍한 가축들을 생각할 때 상식적이고 맞는 말이다.  

 

가축 혹은 짐승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나 국가를 보면 깨닫는 것이 있는데, 그런 사회는 타인의 고통에도 무심하다는 것이다. 저항력이 없는 가축에 잔인한 사회는 그 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에도 들어 맞는 것 같다.

 

문제는 '그들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나 '그들도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들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이다. - 본문 중

 

채식 위주자가 되자

 

인간의 건강에 이롭고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생존 기회를 증가시키는 데 있어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인간의 몸은 해부학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자주 섭취하는 데 적당치 않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은 장의 길이부터가 다르다. 육식 동물의 내장은 짧아서 먹이 중에서 소화되지 않는 것도 부패하기 전에 재빨리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초식 동물은 식물성 먹이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의 길이가 길다. 인간의 내장도 몸의 4배 정도로 길이가 길다. 따라서 육식을 자주 하면 고기 찌꺼기가 장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암 같은 병에 걸리게 된다.

 

또 인간은 고기를 찢거나 베어내기 적합한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다. 게다가 육식을 많이 하면 공장식 사육장에서 가축을 사육할 때 사용한 항생제와 호르몬이 어른은 물론 아이들의 몸까지 오염시킨다.

 

이런 '상식'들을 알면서도 우리나라 현실에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길러진 육식 습관이 그 첫번째 이유이지만, 직장에서의 회식, 지인들과의 모임 등에서 잘못하면 혼자 오래 살려고 유난을 떤다는 소리를 들으며 왕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술을 끊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에서 채식식당은 찾기도 힘들다. 이런 현실에서 좋은 대안으로 고기를 가끔씩 먹는 채식 위주자는 어떨까.  우리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또한 저 불쌍한 가축들까지 구제한다면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한걸음씩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도 하고 말이다.

 

변화의 주인은 바로 우리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먼저 음식을 먹는 습관부터 바꿀 수 있다.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사육된 육류 제품의 소비를 거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갑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변화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정부가 아닌 바로 우리, 평범한 대중들이라는 것이다. 먹을 것을 사러 시장에 갈 때 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각 개인들이 자신의 생활방식에서 그러한 변화를 일으킬 때마다 윤리적이고 건강에 유익한 식품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육식의 종말> 등 앞서 나온 책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는데 그쳤다면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내일 우리동네에 있는 '두레생협'에 가입하기로 맘먹었다)

 

2011년 새해엔 저자가 소개한 방법들을 생활속에서 실천해 보자. 가축들이 어른, 새끼할 것 없이 버둥거리며 굴착기에 밀리고 실려 땅 속으로 생매장 당하는 뉴스 장면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면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무분별한 육식으로 멍든 인간 스스로를 구제하라는 자연의 충고이자 경고로 다가온다.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2006)


태그:#제인구달, #희망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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