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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민주주의 민생복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범국민연대와 야권연합추진특위 1차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민주주의 민생복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범국민연대와 야권연합추진특위 1차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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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 복지논쟁이 뜨겁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복지' 담론이 쏟아지는 상황은 그동안 정치권이 '개발'만을 떠들어온 데 비하면 상당한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환영할 수만 없는 찜찜함이 남는다. 구체적 재원 마련과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말만 너무 앞서 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사교육비 급등, 만성적인 취업난과 고용불안, 내수 침체, 상위 10%만 잘 사는 승자독식구조 등으로 일반 가계가 느끼는 민생고는 극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가 느끼는 극심한 불안과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개발' 대신 '복지' 담론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 포퓰리즘' 주장은 시대착오, 시간 지나면 도태될 것

하지만 현재의 민생고 문제는 복지를 강화한다고 모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집값을 낮추고 사교육비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며 공정한 경쟁규칙 아래 독과점 폐해 없이 일반 생활인들이 잘살 수 있는 건전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고 근본적 해법이다.

물론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사회안전망과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작업 또한 필수 과제다. 선제로 이 같은 예방적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향후 복지지출 비용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하기 전에 전략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가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 총조사 잠정 결과를 보면 인구증가율이 통계청 추계치보다 더 빨리 줄고 있는 등 인구충격이 현실에서는 더욱 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복지 논쟁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거쳐야 할 필수적인 논쟁이다. 하지만 현재의 복지논쟁은 생산적 정책논쟁이기보다는 정당 간 정치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정치공방'으로 흐르는 느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서울시장의 '복지 포퓰리즘' 주장이 야권의 의무급식 정책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데 맞춰져 있고, 민주당의 '무상 시리즈' 당론 발표도 박근혜 의원의 '복지국가론'에 대응하는 모양새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복지논쟁이 단순한 정치공방의 소재가 아니라 납세자와 유권자로서 시민에게 도움되는 생산적 논쟁이 되는 데 필요한 일곱 가지 전제조건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현의집에서 열린 '서울시장과의 현장대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숙인들과 쉼터 종사자들의 건의사항에 답변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현의집에서 열린 '서울시장과의 현장대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숙인들과 쉼터 종사자들의 건의사항에 답변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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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서울시장과 같은 사람들은 논외다. 한국 사회의 GDP 대비 복지 재정지출이 OECD국가 평균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는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복지논쟁에 낄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한 복지논쟁을 원하는 세력이 아니라 복지정책을 이념문제로 몰아가 국민의 거부감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세력일 뿐이다. 즉 생산적 복지논쟁의 훼방꾼들이며 시간이 지나면 도태될 세력일 뿐이다.

따라서 이 글은 기본적으로 최근 '무상 복지' 시리즈를 내놓은 민주당 등 야권과 최근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측을 대상으로 하는 글임을 전제한다.

민주당과 박근혜 복지공약, MB의 747이 되지 않으려면...

1. 우선, 복지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식으로 가선 안 된다.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하기 전에 복지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려가야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필요한 복지 지출은 하더라도 가급적 돈을 안 들이고도 사람들이 편히 살 수 있는 사회경제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서민들을 끊임없는 주거난에 시달리게 하는 구조를 놔두고 주거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과 건설일용직 등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실업수당을 확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제도와 정책만 잘 디자인한다면 얼마든지 같은 재원을 가지고도 민생고를 해결하고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doing more for less)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2. 이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복지행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와도 이어진다. 물론 국토해양부와 산하 공기업 등에서 퍼주는 토건분야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복지전달체계에서도 상당한 비효율과 재원 누수, 자금 횡령 등 부조리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복지전달 체계 개혁과 부패 해소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3. 관련 제도를 개혁하는 문제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의무급식 문제는 이미 급식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 상태에서 급식 예산을 추가로 더 지원하느냐 여부만 결정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무상의료 방안은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 지원 규모를 늘리는 수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의료시스템 전반 개편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비중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10% 수준인데 공공의료기관 인프라 확대와 상당한 의료 인력의 공무원 전환 없이는 무상의료 방안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의료수가나 약값 등의 적정성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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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 세대의 계층 간 형평성 외에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화나는 현실이지만 현 정부 들어 금융 공기업을 뺀 공공부문 부채가 450조 원가량 폭증한 게 어쨌든 현실이다. 이미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힘들어 '88만 원'이라는 딱지까지 붙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막대한 빚을 물려주게 생겼다.

그런데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은 향후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료와 국고지원 규모가 급증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결국 현 세대의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효과가 발생한다. 우리 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건강보험을 통해 2050년까지 252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잠재채무가 누적되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 하더라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추진해야 한다.

5. 충분한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특히, 야권이 정말 '보편적 복지'를 하고 싶다면 재원마련 대책과 관련 시스템 개편 등에 대해 정직하게 설명하고 국민 다수의 '보편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특히 야권은 야권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의 동의를 최대한 구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 대상은 '보편적 국민'일 텐데 여권 지지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핀란드나 스웨덴 등 이른바 조합주의 복지국가들에서 각 정파와 노사정 3자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심화할 수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해 한나라당의 다수 분파는 복지논쟁을 할 최소한의 인식수준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권 지지층을 포함해 다수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과정 없이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절대 복지정책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6. 복지 수준을 올리더라도 국내의 사회경제적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최적화해야 한다. 국내의 복지 수준이 워낙 빈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담세능력이나 경제 규모를 현저히 넘어서거나 미래세대의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도록 그 속도와 복지 확대 수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7.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재원 문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복지 재원 확충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고 있거나 부유세, 사회복지세 등을 증설하거나 아니면 현행 조세 및 재정 구조 틀 안에서 다른 재원을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어떤 식이든 복지 재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한 그것은 공허하거나 재정 악화 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 자신들 생색내는데 이미 수백 조 원의 공공부채를 끌어써버려 향후 재정이 급속히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다. 따라서 가급적 향후 재정적자 증가와 생산경제 위축을 최소화하면서도 복지 인프라를 선제로구축하기 위한 세입세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방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안타깝다.

직장인에게 손 벌리기 전 막대한 탈세 바로 잡으라

이에 대해 필자는 나름대로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개발연대 때 구축된 시대착오적인 조세구조와 재정지출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 원씩, 약 100조 원의 추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50/50전략이다.

부동산 등 자산경제에 대해 제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탈루소득을 잡아내면 근로 직장인들의 세금을 더 늘리지 않고도 50조 원의 세수는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이 같은 조세 구조개혁과 더불어 무분별한 토목사업 등 세출 구조조정을 제대로 단행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의 사업을 정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년 50조 원 정도의 낭비성 지출을 추가로 줄일 수 있다. 엉뚱하게 소수 건설업계와 재벌 기업들을 배 불리며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책사업들을 지탱하고 관료들의 밥그릇을 키웠던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은 이들은 필자가 최근 출간한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편>을 참고해 보기를 권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조세 및 재정 구조개혁, 이와 연동한 부패 일소와 정부시스템 개혁만 제대로 한다면 별도의 증세 없이도 건전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갖추면서 삶의 질도 확연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조세 및 재정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부유세와 사회복지세 신설부터 거론하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주장의 선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를 확충하기 위해 설사 증세를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탈세 엄단과 기본적인 과세 형평성 제고가 우선과제 아니겠는가? 막대한 탈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성실한 납세자한테 세금을 더 내라 하면 어떤 납세자가 "네, 여기 있습니다"하고 기분 좋게 세금을 내겠는가?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 중인 충남 공주 4대강 사업 현장.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 중인 충남 공주 4대강 사업 현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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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이들이 재벌과 현 정부 고위 관료 등 특권층 무임승차자들에 비해 세금을 공평하게 내고 있지도 않고, 우리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지도 않다고 믿는데 그런 신뢰 회복 과정 없이 어떻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는 말인가? 세금 더 내자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많은 국민의 반발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각 정치세력이 이념의 틀, 정파적 틀에 갇히지 말고 세금 내는 평범한 납세자로서 가장 형평성에 맞는 조세구조를 만든 다음, 그렇게 확보한 돈을 어떻게 하면 가장 가치 있게 쓸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길 바란다.

'말 잔치'로 끝난 이명박의 '747 공약'을 잊지 말라

특히 민주당 등 야권이 야심 차게 내놓은 '무상 시리즈' 방안은 앞으로도 가다듬어야 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예를 들어, 무상의료정책만 봐도 재정 부담 측면과 아울러 의료시스템 개혁 등의 측면에서 볼 때도 고려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하나하나가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제대로 공론화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인 무상의료 공약이 얼마나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실행가능성이 높겠는가. 과거 노무현 정부의 주택 후분양제나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치권은 정책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을 선거용으로 급조해 발표하곤 했다. 그 결과 구체적 재원 확보 방안이나 탄탄한 실행 가능성 검토, 이에 대한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결여해 결국 관료들에게 휘둘리면서 후퇴를 거듭해 말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좋은 정책 목표를 세우고 발표하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실행 전략과 방법론이다. 이명박 정부가 '747 공약'과 초일류 선진국가, 공정사회 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목표에 전혀 맞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4대강 사업 등 개발연대 때나 통할 법한 시대착오적인 재정사업과 부자감세/서민증세 등 반서민 정책들을 통해 오히려 목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결국 겉으로 내세운 방향에 맞는 전략과 방법론, 실행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권이 이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선대인 기자는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입니다. 트위터 http://twitter.com/kennedia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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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복지논쟁, #무상의료 , #김광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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