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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의 삵이 웅크리고 앉아 낮잠을 즐기고 있다.
▲ 우왓! 삵이다! 공릉천의 삵이 웅크리고 앉아 낮잠을 즐기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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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릉천에서 탐조를 하기 시작한 지 벌써 1년 가까이 되어간다. 이제는 공릉천에 어떤 새가 있는지, 어디를 가면 새를 볼 수 있는지 등을 비교적 잘 꿰뚫고 있다. 내가 이 정도 수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경향신문> 윤전국장인 이재흥 아저씨와의 우연한 만남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흥 아저씨는 2010년 3월, 혼자 공릉천을 탐조하고 있던 나를 보곤 '어린 학생이 대단하다'고 관심을 보였다. 그날은 공릉천 갈대밭에 화재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그후 아저씨와 난 파주지역에 있는 수리부엉이를 보러 몇 번이나 그곳에 가기도 했다. 또 아저씨는 공릉천이나 임진강 등으로 날 데려가 주기도 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이재흥 아저씨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 중 하나가 '삵'에 대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삵이 주로 어디에 있는지, 또 자신이 예전에 찍은 사진들이 어느 사이트에 있는지 알려줬다. 소개해 준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생태사진작가와 신문기자들 그리고 취미로 사진을 찍는 일반인들이 찍어놓은 삵 사진을 보게 되었고, 나는 삵에게 빠져 들게 되었다.

삵은 '살쾡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남한 땅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 표범, 여우, 스라소니 등을 제외하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양이과 맹수다. 한반도 먹이사슬 꼭대기에 올라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에 삵을 놀라게 하다

삵이 졸린 표정을 짓고있다.
 삵이 졸린 표정을 짓고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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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과 고양이의 차이점은 귀 뒷면에 있는 누런반점이다.
▲ 소리에 반응하는 삵 삵과 고양이의 차이점은 귀 뒷면에 있는 누런반점이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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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은 야행성이라, 특히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해질녘 공릉천 도로 위를 유유히 걷고 있는 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삵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이재흥 아저씨나 다른 생태사진작가들은 해질녘에 공릉천에서 삵이 나올 만한 장소에 차를 세워놓고 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 운이 좋아 삵이 나타나면 커다란 대포 망원렌즈를 꺼내 모습을 담는다. 자동차는 새와 동물들이 많이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학생이다 보니 멀리 있는 물체까지 포착할 수 있는 대포 망원렌즈도 없고, 동물들에게 가까이 갈수 있는 자동차도 없어서, 직접 걸어 다니며 내 두 눈으로 삵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2011년 첫 탐조를 나갔던 1월 4일, 나는 공릉천에서 처음으로 삵을 만났다(관련기사).

내가 처음 삵을 만난 감동의 순간은, 모 신문사 사진기자 아저씨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다. 그리고 이틀 뒤인 1월 6일 나는 다시 한 번 삵을 만났다. 그때는 오로지 나와 삵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험 부족과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에, 가까이 가려다가 삵을 놀라게 하고 말았다. 때문에 첫날보다 더 싱겁고 후회스럽게 삵과 내 조우는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모든 일은 삼세판이라고 했다.

새들 보러 갔다가 마주친 삵, 너무 귀엽네

난 1월 18일, 새를 보러 공릉천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이날도 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저장해주는 4GB CF카드를 안 가져간 것이다. 나는 가방에서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128MB짜리 CF카드를 꺼내 카메라에 넣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워낙 용량이 작아 이날은 36장만 찍을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횟수를 아끼고 또 아껴면서 돌아다니다가 공릉천을 한 바퀴 돌았다. 그때까지 6장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이미 공릉천을 한 바퀴 돌았지만, 새가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더 가볼까'하다가 몸도 피곤하고 카메라 용량도 많이 남지 않아 집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때, 난 갈대 사이로, 세모 모양으로 뾰족한 뭔가가 돌출되어 있는 걸 보았다. 마치 고양이 귀처럼 보이긴 했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강한 바람 때문에 눈이 아파서 제대로 보지 못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 삵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설마'했다.

난 "설마 저런 곳에 삵이 있겠어?"라며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삵인지 아닌지 확인해서 손해 볼 게 없으니, 다시 한 번 그 물체를 확인했는데 '우왓!' 진짜 삵이었다. 멸종위기종이고 보기가 힘들고 귀해서 사람이랑 가까운 이런 도로에 있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하마터면 삵을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삵은 야행성이라 대부분 해질녘이 되기 전까지 갈대밭 속에서 웅크리고 잔다. 

삵은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면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너무너무 귀여웠다.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는 저리가라였다. 하지만 그 똘망똘망한 귀여운 눈망울은 CF카드 용량문제로 사진으로 담질 못했다.

나는 일단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폈다. 1월 4일, 삵을 처음 만났던 날에 겪었던 일을 되풀이 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 다음엔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내 욕심을 다스렸다. "이 정도는 상당히 가까운 거야! 더 이상 가까이 갈 필요가 없어"란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귀여운 외모에 현혹돼, 맹수라는 사실을 잊다

 활동을 시작하는 삵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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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 풀숲 사이로 돌아다니는 삵 경계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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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은 소리에 무지 민감했다.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날갯짓에도 반응하고, 언 강이 갈라질 때마다 나는 "쩌저적!" 소리에도 반응하며, 꿩이 근처를 날아갈 때도 반응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삵의 귀를 보면, 청각이 무지 발달한 것 같이 보인다. 사람들이 기르는 개들 중에는 귀를 접고 사는 개가 있는데, 그에 비해 삵은 귀가 솟아있어 소리를 잘 듣도록 진화된 것 같았다. 삵이 졸려서 하품을 하는데, 입을 벌리는 순간 녀석의 이빨이 드러났다. 무척 날카로웠다. 나는 귀여운 외모에 현혹되어 녀석이 맹수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삵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산책하던 할아버지가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삵이 여기 앞에 있으니 보고 싶으면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대신 조용히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할아버지께 삵을 보여드렸다. 나는 이 할아버지가 저번에 만났던 모 신문사 기자처럼 삵을 내쫓진 않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삵을 보여줬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얌전히 삵을 보시고 '저건 고양이 아니냐?'고 하셨다. 나는 "저건 고양이가 아니고 삵"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할아버지는 몇 번 더 "고양이 같은데..."라고 하다가, 삵은 고양이랑 크기가 많이 차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그제야 납득하신 듯 송촌교 근처에서 본 고라니 이야기를 해주셨다.

삵은 그렇게 계속 웅크리고 있다가 해를 한번 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재흥 아저씨가 말한 '삵은 도로 위로 올라와 움직인다'는 것을 떠올리고 도로 뒤편으로 가서 삵을 기다렸다. 하지만 삵은 도로 위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삵이 앉아있던 곳으로 가보니 왼쪽 갈대밭 사이로 삵의 꼬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삵은 일직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삵을 다시 보려면 단순히 삵을 앞질러가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건 DMZ생태연구소장인 김승호 아저씨에게 배운 사실이다. 풀숲에 숨어 10분 정도 기다리자 삵이 갈대밭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갈대밭에 웅크리고 앉았을 때는 몰랐는데 몸을 피자, 몸길이가 정말 길었다.

녀석은 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처음 본다는 듯이 놀란 눈치로 나를 쳐다보다가 앉아서 이빨로 풀을 씹었다. 이빨로 왜 풀을 물어 뜯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다시 일어나 나를 주시하면서 옆을 지나갔다. 나는 몸을 돌려 사진을 찍으려다가 삵이 그때마다 눈이 동그랗게 뜨면서 나를 쳐다보기에, 동작을 멈추었더니(삵이 나 때문에 놀라는 게 싫었다) 아까보단 덜 놀란 얼굴로 갈대밭 사이를 유유히 걸어갔다. 나는 다시 한번 삵을 앞질러 가 기다리다가 내가 삵을 너무 괴롭히는 게 아닌가 싶어 풀숲에서 나왔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갈대도 꺾어지고 눈도 쌓여, 삵을 관찰할 기회가 자주 생기는 것 같다. 공릉천의 먹이사슬 최고봉을 차지하고 있는 삵의 당당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올해는 나에게 행운이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내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덧붙이는 글 | 조류학자 또는 그 비슷한게 되는 것이 꿈인 올해 고등학생 되는 학생입니다. 시골에서 길을 걷다가 고양이 같은게 있으면 한번 자세히 보세요. 삵일지도 모릅니다.^^



태그:#공릉천, #삵, #살쾡이, #야행성, #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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