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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쓰인 방언은 강화도 사투리입니다. 재미있게 글을 쓰고자 방언을 빌어 써봤습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 인기코너 '두 분 토론'에서 남하당의 대표 박영진이 뱉어내는 여성폄하의 독설은 언제 들어도 맛이 있지 않의꺄. 요즘 시대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조선시대쯤, 아니 고려시대쯤의 이야기를 마구 해대니까, 시대적 상상을 추억으로 곱씹으며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고 있시다.

개그맨 박영진은 1월 16일분 방송에서 "여자들이 소개팅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야. 감히 까도남? 까도남!? 여자가 따질 수 있는 것은 몇 번째 부인인지 따지는 것뿐이었어"라며, "여자들 소개팅 나와서 하는 짓 보면 가관이야. 밥도 사주길 바라고 또 애프터를 바라? 내 때는 여자가 남자한테 바랄 수 있는 건 합방뿐이었어." 이어, "내 때는 시어머니가 애가 없다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면 언제 첫 부인이 되나 기다리고 그랬지"라며 특유의 조선시대 발언을 서슴지 않았시다.

남자, 조선시대로의 회귀?

남존여비를 굳게 믿는 권해효와 아내 문정희(왼쪽)와 헌신적인 남편 이재룡과 이지적인 아내 박주미 부부와 딸
 남존여비를 굳게 믿는 권해효와 아내 문정희(왼쪽)와 헌신적인 남편 이재룡과 이지적인 아내 박주미 부부와 딸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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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그가 떠드는 발언들에 공감이 가서 웃는다기보다 너무 '가관이라' 웃는 것 아니겠시까? 근데 그 가관인 이야기를 요즘 방영되고 있는 KBS 2TV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극본 조정선, 연출 이재상)에서 피닉스 종합학원의 유명한 스타 강사 겸 원장인 권기창 씨(권해효 분)가 쓰고 있지 않의꺄.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강산이 아무리 열두 번 달라져도 변하지 않은 인간이 있었으니, 조선시대의 아버지상, 남편상을 그대로 전수한 권기창씨가 그런 입지전적 인물 아니겠시꺄? 가부장적 사회, 유교적 터전에 진득하니 자리한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짙은 칼라의 옷을 입고도 전혀 두렵지 않은 사나이, 아니 당당하다 못해 교만한 사나이, 권기창씨가 소위 '남하당'의 기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시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 못했는가? 내가 돈을 안 벌어다 주길 했나? 아니면 남들처럼 바람을 폈나?'라며 자신이 가장 이상적인 남편이요, 아버지요, 가장이라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의꺄. 근데 그게 이상하리만치 요즘 남자들 이야기 같기도 하여 헷갈리지 않의꺄.

뭐, '차도남', '까도남'이 대세라지 않의꺄? 전자는 '차가운 도시 남자'란 뜻으로 '따시남'(따스한 시골 남자)의 반의어로 사용되고 있시다. 요즘 여자들은 '따시남'보다 '차도남'을 좋아하구 말이다. 좀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냉철한 이성과 확고하고 세련된 취향을 가진 현대 남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시다.

한 단계 발전하여 요샌 '까도남' 시대인데, '까칠한 도시 남자'란 뜻이라이다. '좀은 싸가지가 없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를 말하는데, 요새 여자들은 남자의 그런 모습을 매력적이라 생각한다고 하이다. 내 참, 그렇담 권세창씨가 딱이지 않나 싶의다. 요즘 그런 '까도남'의 대표 주자는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매리는 외박 중>의 장근석이라고 하이다.

남자, 여자 때문에 '남하당원'이 된다?

권기창씨는 제사를 도우러 시집에 간 아내를 휴대전화로 조정하기도 하이다. "전화기 든 채로 밖으로 나가 30미터 앞으로! 거기 빗자루 있지. 치워! 장독대로 간다. 실시! 장독 뚜껑 열린 장독이 있을 거야. 그거 덮어!" 투덜대던 아내 김영희(문정희 분)는 그 위력에 눌려 하는 수 없이 그가 하란대로 다 하고야 전화의 지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시다.

권씨의 아내 김영희씨는 좀 칠칠맞의다. 작은 아버지의 드라마 보조 작가 노릇을 하는데 집안은 엉망이라이다. 흐트러진 빨랫감이 거실에 가득하고, 이리 저리 뒹굴고, 넘어져 팔이나 부러지고,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다가도 그 위력 앞에 쉽게 무너지고. 하여튼 무엇인가 똑 부러지는 구석이란 눈 씻고 찾아도 간 곳이 없다이다.

권기창씨가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것은 다 아내가 흐리멍텅하기 때문이라고 칼날 세울 만도 하이다. 글 쓰고, 공상하고, 드라마 보는 것 외에는 잘하는 게 없는 여자, 그런 김영희씨를 아내로 둔 남편은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고.

권기창씨는 주변의 남자들이 다 적이라이다. 우선 처남인 김동훈씨(이재룡 분)가 가장 맘에 안 든다이다. 아내를 유학 보내고 딸을 혼자 키우는 착하고 헌신적인 남편으로 등장하니. 그래서 실은 은근히 포장마차로 불러 그렇게 아내를 위해 헌신하며 사는 모습만 보여줘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하지 말라고 윽박질러(?) 보기도 하지만, 통하질 않는다이다.

'난 내 식으로 사는 거야. 자넨 자네 식으로 살아.' 성질이 더 난 권씨는 외친다이다. '형님이 그러니까 제 아내가 더 그런 단 말입니다.'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까도남'인 '남하당' 기수 권기창씨는 다른 남자도 자신 스타일을 강요하지만 되지 않자 속으로 부화가 치민다이다. 근데 '남하당' 스타일로 권기창씨가 언제까지 버틸지 그건 좀 의구심이 가는 구석이라이다. 대부분 그렇게 독득하게 시작했다가 슬그머니 본성을 감추는 드라마가 하도 많은지라.

정치,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

MB정부의 이명박 대통령과 가부장적 가장을 자임하는 권기창 역을 맡은 권해효씨
 MB정부의 이명박 대통령과 가부장적 가장을 자임하는 권기창 역을 맡은 권해효씨
ⓒ 청와대,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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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난, 이 시점에서 요즘 정치가 떠오르는지 그걸 나도 모르겠시다. 우리는 이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연결되는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두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의 민주시대를 거쳐, 지금의 MB정부의 좀은 독특한 민주정치(?)의 시대까지 죽 달려왔시다.

부드러운 남자들의 정치였다고 할 수 있는 두 김씨 대통령 시대와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간지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우리는 부드러운 남자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좀은 '차도남'이나 '까도남'의 스타일인 MB시대를 즐기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MB정부가 막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의 함성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 파도치는 '아침 이슬'을 들으며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던 때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게 아니지 않시꺄. 그땐 되게 부드러운 대통령 이미지였었시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근데 왜 지금 우린 무슨 커다란 넘지 못할 산이 가로 놓인 것 같은지 모르겠시다. 무슨 벽 하나가 그리도 골 깊은 담을 쌓아 놓은 것 같은지 모르겠시다. 기독교인 대통령이 들어섰다고 기독교인들이 무척이나 들떴던 적도 있었시다. 나도 기독교인이기에. 그런 부류였더랬시다.

근데 MB정부 들어 기독교 하면, '강남'이나 '대형교회', 혹은 '부자' 등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겠시꺄. 원래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 아니꺄. 언제부터 기독교가 기득권층이 되고 부자이었고, 대형이었시꺄. MB정부 들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이미지는 바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 일 거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게 드라마요, 영화라지 않시꺄? 그래서 이런 '차도남', '까도남' 시리즈들이 봇물처럼 넘실대는 것이꺄? 드라마나 개그에서는 그냥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내세워 한몫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겠지만, 정치는 재미 보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시꺄.

한긴 '남하당'의 대표 주자를 자임하는 권기창씨는 자기 아내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고 항변할 게 뻔하이다. 그렇담, 국민들 때문에 MB스타일의 정치가 있는 것이라고 항변하실 것인지. 그게 참 궁금하이다. 권기창 씨의 권위, MB의 권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게 좀 궁금하이다.


태그:#사랑을 믿어요, #드라마, #MB정부, #권위주의, #차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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