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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만 원이 든 봉투를 들고 화천읍장(이호영씨)이 화천군수(정갑철씨)를 찾은 것은 1월18일 11시쯤이다. "돌아가신 분이 내신 장학금입니다"라는 읍장의 말에 군수가 의아해 한 것은 당연했다.

 

화천읍 중리에 사시는 박순덕 할머니는 89세로, 지난 12월 29일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먼 친척뻘인 석아무개씨를 불러 '내 유언 좀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죽거든 세간을 다 뒤지면 금반지와 팔찌 그리고 은비녀도 있을 것이여. 이걸 다 화천군에 가져다 줘서 어려운 학생들 학비에 보태게 해줘."

"할머니는 앞으로 10년은 더 사실거라는 건 내가 장담해요."

 

위로와 함께 춥다는 할머니를 위해 방을 따뜻하게 해 드린 지 이틀만에 석씨는 박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 할머니는 생활보호 대상자였다

 

박순덕 할머니는 25년 전까지만 해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농사도 짓고 산나물도 뜯으며 남부럽지 않게 사셨다. 할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신 후 혼자의 힘으로 농사일도 하시고 남의 집 허드렛일도 하시다가 결국 힘에 부쳐 군청에 독거노인 대상 신청을 했다.

 

한달에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돈은 고작 20여만 원. 재산은 없지만, 근면·성실한 것이 인간의 기본 도리라며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도 노인일자리 사업장에 다니셨다고 이웃 주민들이 말한다.

 

천국에서 온 박 할머니의 장학금

 

석씨는 읍사무소와 인근 주민들에게 박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리고 장례를 치러드렸다. 할머니 삼오제까지 모시고 나서 유언에 따라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봤더니 안방 모서리에 은비녀 금팔찌, 금반지, 구리 반지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것 아닌가.

 

"당신께서 내게 집안을 다 뒤지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시키는 것도 신세라 생각해 돌아가시기 전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유품 정리를 해 놓으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할머니가 남기고 가신 유품을 소중하게 보자기에 싸서 읍장을 찾아 자초지종을 말하고 전달을 하려 했더니, 읍장은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의 숭고하고 고마운 뜻을 전할 방법은 화천군 장학금으로 내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는 방법인데, 유품 그대로는 전달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친척 되시니까 정리를 하셔서 가지고 오시면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석씨는 읍장의 말에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금은방에 들러 할머니 사연을 이야기를 했더니, 시가보다 더 쳐주겠다는 금은방 주인의 말을 듣고 아직 세상 인심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할머니 모든 유품을 정리해서 받은 돈이 520만 원. 석씨는 지체할 수 없어 18일 오전 9시에 읍장에게 전달하고 이날 11시 읍장은 군수를 통해 '천국에서 할머니가 보내신 장학금'을 화천군장학회에 송금했다.

 

 

"부디 이 돈의 혜택을 입어 공부한 학생이 인류대도 가고 나라를 위해 정직한 일꾼이 되는 모습을 할머니께서 끝까지 보고 계실 것입니다."

 

석씨가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한 말이다.


태그:#화천군, #장학금, #박순덕할머니, #이호영화천읍장, #정갑철화천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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