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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요놈 때깔 좋다~!" 이덕화씨가 얼음구멍에서 막 뽑아낸 붕어를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있다.
 "야, 요놈 때깔 좋다~!" 이덕화씨가 얼음구멍에서 막 뽑아낸 붕어를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있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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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 중에 '낚시광'들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영화배우 한석규씨는 틈만 나면 용인의 신갈지 물가를 찾고, 김래원씨도 2대째 꾼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 그룹 DJ DOC의 리더 이하늘씨는 최근 대형붕어낚시 재미에 푹 빠져 산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연예인 낚시꾼들 중 이 사람을 빼놓고는 계보 형성이 안 된다. 바로 이덕화(60)씨다.

"신년 초 고구지 '꽝'은 잊어줘"

이덕화씨가 지난 1월 1일 교동도 고구지에서 올시즌 첫 얼음낚시를 즐기고 있다.
 이덕화씨가 지난 1월 1일 교동도 고구지에서 올시즌 첫 얼음낚시를 즐기고 있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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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덕화씨를 만난 건 7년 전이다. 2004년 12월 마지막 날. 강화 숭뢰지가 얼음낚시터를 개장한 날이었다. 이날 얼음낚시 첫탕 취재를 위해 무작정 찾은 숭뢰지에서 나는 아래위 노란색 방한복을 입고 얼음낚시를 하고 있던 이덕화씨를 처음 만났다.

이때의 만남이 퍽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유명 탤런트여서가 아니었다. 이날 숭뢰지 얼음구멍을 뚫었던 70~80명의 꾼들 중 입질을 받은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바로 이덕화씨였다. 그는 이날 숭뢰지에서 36.5cm 짜리 대형붕어 한 마리를 낚았다. 하마터면 얼음첫탕의 조과사진 한 장 못 건질 뻔 한 나를 살려준(?) 사람이 바로 이덕화씨였던 거다.

이때 나는 이덕화씨가 '코리아 오케이 피싱클럽'이라는 약간은 별난 이름의 낚시회에 소속돼 있다는 것과, 매년 연말이나 연초면 반드시 얼음낚시터를 찾는다는 걸 알게 됐다. 햇수로 7년이 지난 올해 지난 1일. 교동도의 고구지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아~, 숭뢰지. 거기 참 좋은 낚시터였는데…. 지금은 낚시를 못 하게 하니 쩝…."

7년 전 숭뢰지에서 나를 만난 걸 혹시 기억하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나에 대한 기억보다 좋은 낚시터 하나 없어진 게 못내 아쉬운, 어쩔 수 없는 꾼이었다.

이덕화씨는 그러나 이날 고구지에서 보기 좋게 '꽝' 쳤다. 이덕화씨뿐 아니라 이날 눈 덮인 고구지를 찾은 60여명의 꾼들은 모두 빈 손이었다. '특별한 어복을 타고 났다'는 그도 전방위 몰황에는 속수무책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1주일 쯤 뒤 이덕화씨가 소속돼 있는 '코리아 오케이 피싱클럽'의 이병수 총무에게 전화가 왔다. 1월12일 화성의 대성지(대성농장지) 상류로 출조한다는 거다. 한참 원고마감으로 바쁠 때였다. 그러나 '고구지에서의 참패를 되갚고 싶다'는 이덕화씨의 부탁을 전하는 이 총무의 취재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여러 장르 중 얼음낚시가 최고"

"야~, 씨알 좋다~!" 이덕화씨가 얼음낚시에서 걸어낸 첫 붕어를 들어 보인다.
 "야~, 씨알 좋다~!" 이덕화씨가 얼음낚시에서 걸어낸 첫 붕어를 들어 보인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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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반. 인근 고잔낚시터 식당에서 만난 우리는 후다닥 새벽밥 한 그릇을 국에 말아먹고는 바로 대성지로 향했다.

"며칠 전 여기서 우리 회원 서너 명이 34.5cm까지 월척만 4마리를 낚았대."

누구보다 먼저 상류에 자리 잡은 이덕화씨가 얼음구멍을 찍어내며 기대감을 드러낸다. 내가 지켜본 앞에서 당한 고구지 몰황이 정말 아쉬웠나 보다.

"오늘은 한 마리 걸어야 되는데…. 월척아, 부탁해요~!"

옛날 TV 쇼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할 무렵 히트시킨 유행어. 그 특유의 중저음은 아직 여전하다. 조심스럽게 얼음구멍에 채비를 집어넣는다. 이날도 날씨가 꽤 추웠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13℃라고 했으니 대성지 상류의 체감온도는 족히 -20℃는 됐으리라. 제방 쪽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이 제대로다. 바람을 등지고 앉긴 했으나 목덜미와 손끝을 타고 들어오는 칼바람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는 얼음낚시를 무척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얼음낚시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붕어낚시 갯바위낚시 등등 다 좋아하지만 옛날에는 얼음낚시만큼은 안 했어요. 그때는 얼음낚시 가는 친구들을 보면 '야야~, 아무리 낚시에 미쳐도 그렇지, 얼음판 위에 벌벌 떨면서 그게 무슨 청승맞은 짓이냐'고 핀잔했거든요."

그는 곱은 손으로 지렁이를 꿰어 얼음구멍에 채비를 내린 후 말을 잇는다.

"그러다가 한 번은 미친 척 하고 얼음낚시를 따라 나섰지. 아~, 그런데 이게 또 색다른 맛이 있는 거야."

동그랗게 뚫어 놓은 얼음구멍에서 빨간 찌톱이 곱게 솟아오르는 게 그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었다는 거다. 첫 경험에 마릿수 찌맛을 본 후 그때부터 그는 얼음낚시의 매력에 푹 빠졌고, 매년 연말이나 연초면 누구보다 먼저 첫탕을 뚫는다고 한다. 지금은 감성돔 찌낚시와 함께 붕어 얼음낚시를 '낚시 최고의 재미'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단다.

40대 초반 인생 암흑기, 낚시로 극복

"근데…, 제대로 못 먹고 컸나? 왜 이렇게 비쩍 말랐어?"
 "근데…, 제대로 못 먹고 컸나? 왜 이렇게 비쩍 말랐어?"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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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첫 입질은 의외로 빨리 들어왔다. 오전 8시 50분쯤, 오른쪽 두 번째 찌가 느릿하게 솟는 걸 그는 놓치지 않았다. 챔질. 그러나 수초에 감겼는지 채비가 얼음구멍에서 빠져나오질 않는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얼음구멍으로 잽싸게 돌진, 원줄을 잡고 끌어낸다. 25cm 쯤 되는 예쁜 토종붕어가 얼굴을 내민다.

"잡았다~! 잡았어~!"

손바닥 만한 붕어 한 마리를 손에 들어 보이는 그의 표정이란…, 60대 중견 연기자의 그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진하다.

"고놈, 참~ 예쁘군, 음…."

다시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 익살(?)도 빼놓지 않는다. 그에게 낚시란 어떤 걸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물다섯 살 때 병원에 입원해서 스물여덟에 퇴원했어요. 다시 태어난 거지…."

젊은날 오토바이를 타다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후 3년 동안 병원에 누워 지내면서 거기서 부친(영화배우 이예춘씨)의 임종을 지켜봐야했다는 얘기부터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1992년 대선 때 김영삼씨를 도와 당선시킨 후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작은 섬에 들어가 낚시만 하고 살았던 때를 회상한다.

"그때 내 나이 마흔 하나였어. 한창 일해야 할 때 인생의 낙오자가 된 거지. 당시 정치판도 정치판이지만 연예계에서도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서 더 이상 사회에 발 붙일 데가 없었어."

그는 그때 낚시가 아니었으면 어떤 위험한 선택을 했을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참~ 원 없이 낚시해봤지. 뭐~, 할 일이 없었으니까. 아침에 눈 뜨면 낚시하고, 해 지면 자는 거지."

그렇게 인생의 암흑기를 보낸 그는 2005년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지난 12월말 S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자이언트>로 조연상을 받았다. 사랑과 야망의 '태수'와 '한명회' 때 못잖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힘들었던 시절 낚시로 인생공부를 제대로 했다는 그는 지난 1월 1일 새벽, 고구지 얼음판에서 SBS 연기대상 시상식 생방송 때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준다.

"생방송이 12월 31일 밤이었잖아. 아, 그런데 이게 새벽 2시가 넘어가는 데도 안 끝나는 거야. 낚시가야 되는데…, 환장하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생방송 도중에 한 마디 했잖아."

그랬다. '나 새벽 4시 반에 얼음낚시 가야 되니 빨리 좀 끝내주세요'라는 그의 멘트는 그대로 생방송을 탔다.

"시상식에 있던 후배들이 웃고 난리가 났지. 그런데 난 웃을 일이 아니었거든, 진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더라고. 회원들이랑 약속을 했으니까."

"이건 월척이다. 찌올라 올 때부터 알아봤어." 두 번째 찌올림을 놓치지 않았다. 기어이 월척을 낚아내는 이덕화씨.
 "이건 월척이다. 찌올라 올 때부터 알아봤어." 두 번째 찌올림을 놓치지 않았다. 기어이 월척을 낚아내는 이덕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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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촬영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낚시가방을 챙긴다. 이 때문에 '코리아 오케이 피싱클럽'은 정출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가 쉬는 날이 정출 날이 되는 거다. 드라마 <자이언트> 종영 후 올해 초엔 그래도 제법 얼음낚시를 다녔다. 그러나 그의 이런 망중한(忙中閑)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2월 23일부터 방송되는 SBS 드라마 <마이더스>의 촬영이 바로 시작된다고 한다.

이덕화씨는 오전 11시쯤까지 대성지 상류에서 서너 마리의 붕어 손맛을 더 봤다. 이날 코리아 오케이 피싱클럽이 계획한 철수 시각은 오후 2시. 원고마감이 급해 먼저 얼음판을 빠져나오는 나를 그가 연안까지 나와 배웅한다.

"점심도 같이 못 먹고 어떡해…. 다음에 우리 가거도 갑시다. 회도 좀 썰어 먹고…."

낚시꾼이 낚시기자에게 낚시 가자는 말을 하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최소 5짜(50cm 짜리)는 낚아야 되는데…?"
"아, 물론이지. 근데…. 좀 넉넉하게 시간을 잡자고. 한 1주일 쯤은 해야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낚시21>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낚시, #얼음낚시, #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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