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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자에게까지 '공짜밥'을 주려 하는가?"

이른바 '부자복지'를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는 짧고 간명하며 명쾌하다. 이건희 회장 같이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자들에게 왜 필요도 없는 복지혜택을 주냐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을 아껴서 진짜 어려운 사람들이나 도와주자는 거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보편적 복지는 "서민이 낸 세금으로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무차별적 복지"다.

참 간결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한마디다. 그에 반해 무상급식을 필두로 한 이른바 '보편적 복지'를 외치는 진영은 어떤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저 구호에 대응하는 명쾌하고 쉬운 구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느 정도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부자에게 웬 복지?"란 질문을 받으면, 선뜻 쉽게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정말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복지는 결국 '부자복지'에 불과한 걸까? 사실 이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의 정책시행으로 인해 부자들도 혜택을 본다는 단편적인 사실을 가지고 제도의 취지 전체를 왜곡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서울시당,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 게재에 항의하며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서울시당,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 게재에 항의하며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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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속기 쉬운 '부자복지' 주장, 실상은?

'보편적 복지'라는 구호에 깃든 의미는 우리 사회 전반적인 구조 자체를 다시 디자인하자는 데 있다. 현재 지구상을 보면 크게 두 개 정도의 사회상이 제시돼 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가 "작은 미국이냐, 큰 스웨덴이냐"는 논쟁에서 잘 드러나듯,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선과 시혜를 앞세운 사회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구현하고 있는 조세와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로 양분된다.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안을 거부하고 의회 출석 거부 등 마찰을 빚어오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안을 거부하고 의회 출석 거부 등 마찰을 빚어오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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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이라는 말이 통용하는 미국식은 거칠게 말해 가진 자들이 극단적으로 칼자루를 쥔 사회다. 복지는 최소한, 그리고 나머지는 부자들의 자발적인 기부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가진 자들의 '영웅적 선의'에 의해서만 국민들의 복지수준이 결정된다. 게다가 그렇게 부여받는 복지라는 건 매우 자의적이고 선별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으며, 종국에는 약자들이 강자에게 몸을 한껏 낮추고 '팁'을 받듯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실제 '팁'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면 복지를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권리"로 여기는 경향이 큰 유럽식은 강자들이 가진 칼자루를 일정정도 사회에 귀속시킨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선 부자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재산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약자들은 미국과 같이 부자들을 은인 대하듯 하며 허리를 잔뜩 굽히고 도움 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기초생활에 필수적이지만 시장을 통해서는 온전히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교육, 보육, 의료, 주거, 노후보장 등의 복지는 부끄럼 없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리는 권리로서 제공받는다.

시장에서 '능력껏' 번 돈을 국가가 나서서 '갈취'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냐고? 서서히 깨지고 있는 신화이기도 하지만, 시장만으로는 결코 능력대로, 공평하게 분배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차를 인정한다 해도, 이건희 회장이 가진 재산을 평범한 노동자들이 모으려면 30만 년 이상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저축해야 가능하다. 이런 현재의 시장체제가 만들어놓은 불평등 분배구조는 어떤 논리로도 공평을 담보할 수 없다.

보편적 복지, 유럽식 길 택한다는 의미

더욱이 한 사회의 부자들이 가진 부의 몫에는, 개인의 노력여하를 넘어서는 사회의 지분이 일정정도, 아니 상당부분 내재돼 있다. 자본주의경제에서의 '승자'인 워렌 버핏조차 "지금까지 번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준 거라 생각한다.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조세제도 등을 통해 국가가 개입해 시장경제가 야기하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공평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봐야지, 결코 '빨갱이'들의 요구가 아니다.

위에서 제시한 두 사회상을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미국식이야말로 '부자복지'사회고, 유럽식은 '부자부담'사회다. 그런데 우리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사회설계를 새로 한다는 것은 두 사회 중 유럽식의 길을 택한다는 걸 의미한다. 즉, 가난한 사람들이나 받는 것으로 여기던 복지를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권리로서 부여받는 경향성이 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일부 부자들이 아니라 사회가 결정권을 갖고 국민들의 위기상황을 보살피는 동시에 납세자와 수급자의 구분을 없애고 불필요한 낙인을 제거하는 통합적 체제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부자복지'를 외치며 보편적 복지를 공격하는 자들은 복지를 가난한 사람에게만 한정해 제공하자는 전형적인 '미국식'이다. 미국이야말로 '부자천국'이라 부르기에 딱 알맞은 진정한 '부자복지'사회다. 그들은 이제 서민을 위하는 척하며 '부자복지' 운운할 게 아니라, 솔직히 속내를 드러내는 게 옳다.

부자에게까지 '공짜밥'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누진적 조세제도 등을 사회정의의 원칙에 맞게 잘 완비해, 사회시스템을 통해 부자들의 부담을 '의무화' 하는 것. 동시에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복지서비스나 위험에 대한 대비는 모든 국민에게 '권리'로서 제공하는 그런 사회가 그렇지 않은 미국식 사회보다 더 바람직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부자들이 '공짜밥'을 먹는다는 지극히 표피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보면, 보편적 복지가 확대될 시 부자들(때에 따라서는 중산층까지)의 의무적 세금부담은 높아진다. 반면,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권리로서 주어지는 복지의 영역은 넓어진다.

대다수 서민이 택해야 할 답은 이미 나왔다 

무상급식 정도는 현재의 조세구조 하에서도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재원마련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외(의료, 교육, 보육 등)의 분야에까지 보편적 복지를 확충하려면 부자감세철회는 물론 일정정도의 증세가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조세부담률을 OECD평균 정도에만 맞추려 해도 지금보다 37% 가량의 세금을 더 걷어야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복지국가 확립을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적인 면도 있고, 반대로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라는 뜻)'와 같은 공약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도 명확하다.

따라서 누진적 조세강화 등을 통해 부자에게 많은 의무를 지우는 유럽식 사회디자인을 지향하는 보편적 복지를 두고 '부자복지'라고 칭하는 것은 엉터리에 불과하다. 아니,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민들이 보편적 복지의 '맛'을 보지 못하도록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사실일 것이다.

분열과 낙인으로 가득한 양극화 사회를 원하는가, 높은 삶의 질을 담보하는 차별 없는 사회를 지향하길 원하는가? 2011년 연두부터 불타오르고 있는 복지논쟁을 지켜보는 우리들에게 던져지는 이 질문 앞에, 대다수 우리 '서민'들이 택해야 할 답변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태그:#보편적 복지, #무상급식, #복지국가, #부자복지, #잔여적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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