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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 덕담은 오간데 없고 눈과 귀를 통해 접하는 세상은 험하다. 6·25 전쟁 이후 이 땅에서 최악의 학살이라는 구제역 파문은 끝을 장담할 수 없을 지경으로 이어지고 있고 조류인플루엔자 급성 바이러스의 발생과 확산은 또 어떤 피바람을 몰고 올지 예상조차 쉽지 않다. 살처분에 동원된 수의사와 관계자들이 심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단지 그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제정신을 챙기면서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년벽두부터 사회는 서민들에게 잔인합니다

 

엄동설한에 300원 식비를 받던 직장마저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 전셋값 폭등에 보금자리마저 한없이 밀려나야 할 사람들. 대책 없이 치솟는 물가에 장보기를 포기한 주부들까지. 아, 신년벽두는 어찌 이리도 잔인한가?

 

소와 돼지가 묻히고 닭과 오리가 떼로 죽어 나가고 농민과 도시서민은 제 삶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2011년 한해는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하는 건지, 매몰되지 않기 위해 버텨야 하는 건지 가축들이나 서민들이나 벼랑 끝에 선 모습은 별반 다를 바 없다. 물가 폭등, 전세난, 줄어드는 수입에 삶의 방향을 잃은 서민들.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는 무엇이고 정치인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고 묻고 싶다.

 

그러나 절박한 서민들의 궁한 물음에 대한 정부나 여당의 반응은 차갑다. 정부와 여당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접할 때면 무엇을 위하여 정당이 있고 누구를 위하여 정부가 존재하는지 회의가 드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구제역 확산 기간이 야당의 장외 투쟁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의 논평. 구제역 파문에서 정부와 여당의 인식과 역할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만큼이라는 것의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세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부동산 비수기라는 한겨울에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아우성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흘러 나온다. 그런데 국토해양부 장관은 '전세난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주택정책의 최고 수장이 이런 진단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제대로 된 전세 대책이 나오겠는가. 서민을 위한 대책에는 서민이 없고 정치인은 넘쳐나는데 제대로 된 정치는 찾을 길이 없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잔칫상 앞에서의 '가뭄 걱정', 꼭 사극의 현대판을 보는 것 같다.   

 

복지 포퓰리즘 논란,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격

 

지난해 10월 김황식 총리가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하철 탑승을 무료로 하게 하는 것은 과잉복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거센 반발에 사과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총리의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총리는 이후에도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소신을 여과없이 드러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무상급식 주장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반격했다.

 

대통령도 이 논란에 가세했다. 예산 날치기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로 작심한 듯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역대 어느 때보다 복지 예산을 많이 배정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정된 국가 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은 결코 아님"을 강조했단다. 이후에도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 이재오 특임장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까지 나서 야당의 복지, 시민단체의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무차별적이고 전면적인 복지 포퓰리즘 반격은 참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숫제 더 줄 것 없으니 떼 쓰지 말라는 아이들 장난 같은 협박에 가깝다. 방학 중 결식 아동 급식 예산이 삭감되는 등 크고 작은 복지 예산이 삭감되거나 폐지된 것은 보수 언론에서조차 수차 지적된 문제임에도 복지 예산이 크게 늘었다니···. 그리고 더 이상의 복지 요구는 포퓰리즘이라니, 반격과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사실에 근거하거나 앞뒤 문맥이라도 맞아야 할 것 아닌가?

 

정부와 여당의 복지 포퓰리즘 논쟁.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시켜주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약발이 다 된 빨갱이, 좌파 딱지를 바통 터치라도 하려는 것인가. 말은 많으나 논리는 없고 윽박만 지른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에게서 정작 정치를 찾아 볼수 없는 현실, 코미디 같은 비극이다.

 

정치가는 넘쳐나는데 정치는 없다

 

연평도 포격 이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발언이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며 희화화된 적이 있다. 불탄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했다는 보도는 군면제가 유독 많은 이명박 정권의 고위 관료나 여당 당직자에게는 큰 약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희화화되고 조롱거리가 된 데에는 안상수 대표의 책임이 크다.

 

군에 갔다 오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정작 문제는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자기의 본분을 망각한다는 것이다. 군복을 입고 마치 작전 사령관이라도 된 듯 과장된 액션을 선보이며 보온병 논란을 만든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 행위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때에 맞춰 옷만 갈아입는 광대가 된다면 그것은 국민들에게 웃음주는 희극이 아니라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비극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검찰 퇴임 후 한달에 무려 1억 원이 넘는 돈을 급여로 받으면서 7개월 동안 7억 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 들였다고 한다. 한달 1억 원의 급여.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만져보기 힘든 돈을 한 달에 벌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과연 이 사회는 300원 식비를 받으면서 한 달에 백만 원도 벌기 힘든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백배 이상의 돈을 급여로 받는 것이 통용되고 이해될 수 있는 일인가. 그를 그냥 능력 있는 사람, 존경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사람이 공직자를 감시하는 자리에 있다면 직분을 다 할 수 있을까.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 이런 사람이 정치가가 되면 정치는 비극이 되고 사람은 권력의 광대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새해 벽두, 구제역, AI, 물가폭등, 전세난,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나지 않는 가정수입 속에서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치권, 정부와 여당에 묻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왜 이런가? 현실은 매번 자본이 먼저이고 대기업이 먼저인 것 같다. 서민의 삶은 왜 번번이 뒷전인가. 일자리가 먼저라는데 왜 자꾸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파리 목숨이 되어 가는가.

 

그러면서도 재래시장에 가서는 서민이 우선이고 노동자 손을 잡고 좋은 일자리 만들겠다고 한다. 이것은 정치쇼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인가 아니면 웃음을 파는 광대인가. 그런 행위는 서민을 위한 정치행위인가? 표를 끌어 모이기 위한 포퓰리즘인가?

 

'군군신신(君君臣臣)',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청와대에서 2011년 신년 화두로 '일기가성(一氣呵成)'를 내놓았다는 소식이 있었다. '국운융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아 국민이 단합해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고 선진국의 문턱을 막힘없이 넘어 가자는 염원을 담았다'는 표현이란다. 

 

신년 화두에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다만 선진국 문턱을 넘는 다급함에 챙겨야 할 것을 다 못 챙기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선진국 문턱을 서민들도 함께 어깨 걸고 넘을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인은 넘쳐 나는데 진정한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했다. 제후가 공자한테 정치에 관해 물었는데 공자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구를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2011년에는 정치쇼 좀 그만두고 제대로 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서민들의 꽉 막힌 살길을 정치로 풀어줬으면 좋겠다. 집권여당과 정부 고위인사들, 정치권 모두가 할 일은 제 자리에서 제 역할 충실히 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고 국민은 국민답게 대접받는 2011년이 됐으면 좋겠다.


태그:#복지 포퓰리즘, #물가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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