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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밥상>
▲ 겉그림 <부끄럽지 않은 밥상>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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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오마이뉴스> 서평 기사를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5년째로 접어들었다. 누가 쓰라고 권한 적도 없었다. '살아가는 이야기' 기사를 주로 써왔는데, 소재가 점점 바닥이 난다는 생각에 이런 글 써도 되나 기웃거리다 아예 자리 펴고 앉고 말았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 읊는다는데 서평 기자 5년 동안 무얼 했을까 돌아보니 부끄럽기만 하다. 왜 서평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써왔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다짐해 본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서평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왜 책을 읽는 걸까. 거창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어려서는 무작정 책이 좋았고, 책 읽을 때가 가장 즐거워 접할 수 있는 책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동화, 위인전은 물론이고 만화, 잡지에 선데이 서울 등의 야한 책도 마다않고 읽었다. 책이 귀해서 책에 목말라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책읽기는 좋아한다. 물론 어릴 때처럼 걸신들린 것처럼 닥치는 대로 읽지는 않는다. 책을 선별해서 읽는 편인데, 읽다보면 특별하게 애착이 가는 책도 꽤 있다. <부끄럽지 않은 밥상>도 그 중의 하나다.

아흔 살, 인동 할머니
겨울 햇살에 앉아 하루 내내
떨어진 곡식 포대를 깁고 있다.

거저 가져가라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포대를
돈으로 따지면
새것이라도 칠팔백 원밖에 하지 않을 포대를
그리운 자식처럼 끌어안고
(서정홍, 겨울 햇살에 중에서)

시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칠십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몸이 상할 대로 상해 거동조차 어려워 바깥출입조차 마음대로 못하시는 고향의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추수 뒤 가을 들녘에 하얗게 앉아 이삭을 주워 모으던 어머니, 여름철 무더위에 쉬어버린 밥도 버리지 않고 "난 위장이 튼튼해서 괜찮다."며 물에 씻어 들던 어머니….

책을 왜 읽는 것일까. 내가 살아왔던 길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싱그러운 어린 시절 느꼈던 부끄러운 마음을 다시 느껴보고, 부끄러움조차 잊고 살아가는 지금 모습을 부끄러워하기 위해서, 잊고 살았던 그리움들을 되살리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다면서 정작 펼치는 정책들에서 서민은 소외시켜 버리는 이들도 부끄러움을 알 리 없다.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내 것 쪼개어 나눌 줄 아는 사람, 내 잘못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좋은 책 한 권 읽었다고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좋은 책 읽을 때의 감동이 쌓이고 또 쌓이다보면 마음도 행동도 바뀌고 세상도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은 …(중략)… 머리로는 의사나 판검사가 나오는 게 좋은데, 가슴으로는 농부나 착한 사람이 좋다고 합니다. 바른 농사를 짓는 농부는 사람이 병들기 전에 몸을 지켜주는 사람이고, 착한 사람은 판검사 따위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마음에 정의와 진리가 들어올 수 있도록 늘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 자신은 물론 세상까지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서정홍 / 우리교육 / 2010.12 / 1만3500원



부끄럽지 않은 밥상 - 농부 시인의 흙냄새 물씬 나는 정직한 인생 이야기

서정홍 지음, 우리교육(2010)


태그:#서정홍, #농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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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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