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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동안 수몰 지역의 주민들을 다 이주시켰고, 보상금도 지급했다. 또 엄청난 돈을 투입해 대체도로를 만들고 학교도 지었다. 그런데 그들은 댐 건설을 중단했다. 지난 58년동안 유지해오던 또다른 댐도 부수기로 결정했다. 댐은 홍수를 일으켰고, 수질을 악화시켰으며, 지역경제마저 완전히 파괴했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이다.

지난 12월 8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일본 구마모토현을 찾아갔다. 가와베가와 댐 건설을 중단하고, 아라세 댐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일본의 뼈아픈 선택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4대강 사업도 40~50년이 흐른 뒤에 일본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 '해외기획-일본은 왜 댐을 부수나'를 통해 한국의 4대강 사업을 조명했다. [편집자말]
계획에서 부터 40여년 만에 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조감도 모습.
 계획에서 부터 40여년 만에 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조감도 모습.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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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좀 보세요."

가와베가와댐 건설 예정지를 안내하기 위해 동행한 기모토 마사미(木本  雅巳, 아름다운구마천을 지키는 시민의회 사무국장)씨가 차창 밖을 가리켰다. 잘 가꿔놓은 차밭이 시야에 꽉 찼다. 눈길을 두는 곳마다 차밭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취재진의 시선은 다시 기모토씨에게 향했다. 가와베가와 댐과 차밭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일본 정부에서 댐 건설 이유 중 하나로 농업용수 부족을 꼽았어요. 실제 지대가 높아 물이 풍족하진 않아요. 하지만 댐을 건설해야 할 만큼 물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민들이 장기간 연구 끝에 전략적으로 물이 비교적 적게 드는 차를 집중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취재진을 사가라 마을(相良村) 뒤에 있는 육각형 모양의 취수정으로 안내했다. 큰 우물을 연상케 했다. 자세히 보니 위쪽 인공수로에서 흘러온 물이 잠시 머무는 지점이었다. 지역 농민들은 이 농업용수를 조달하기 위해 10㎞나 떨어진 상류까지 인공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왔다. 가파른 산기슭을 파 일궈 만든 폭 1m도 안 되는 수로가 만리장성보다 더 대단해 보였다. 

"이 취수정은 상징적인 곳입니다. 인공수로는 댐 건설을 중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모토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정부에서는 농사를 지으려면 건설되는 댐 물을 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수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댐 물은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인공수로를 통해 얻는 물만으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이 수로로 인해 정부는 결국 댐 건설의 주요 목적 중 하나였던 '농업용수 공급'을 더 이상 내세우지 못하게 됐습니다."

죽은 사람에게까지 댐 찬성 동의서 받은 정부

가와베가와댐 건설 예정지를 안내하기위해 동행한 기모토 마사미씨가 사라촌 마을 뒤에 있는 취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취수정은 위 쪽 10km 상류에서 인공수로를 따라 흘러온 물이 머무는 지점이다.
 가와베가와댐 건설 예정지를 안내하기위해 동행한 기모토 마사미씨가 사라촌 마을 뒤에 있는 취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취수정은 위 쪽 10km 상류에서 인공수로를 따라 흘러온 물이 머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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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또 '농민 ⅔ 이상이 댐건설에 찬성하고 있다'는 정부 측 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4000여 농가를 일일이 돌며 사실 여부를 재확인했다. 그 결과 정부가 이미 사망한 사람의 동의서를 만드는 등 댐 건설 찬성 농민수를 허위로 부풀린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인공수로와 함께 이수 관련 소송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3년 5월 후쿠오카 고등법원은 농민들의 '댐의 물은 필요 없다'는 주장을 인정했다. 정부 측이 내세운 댐 건설 목적(이수, 농업용수 공급)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댐 기본 계획 변경이 불가피해지면서 댐 건설 일정에 큰 차질을 안겨줬다. 현지 농민들은 여전히 "댐이 아닌, 지역 실정에 맞는 농가 본위의 이수 사업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와베가와 강은 보배라고 얘기했어요"

가와가베댐 건설 예정지 하류 마을로 연결된 인공수로. 사가라촌 농민들은 10km 상류에서부터 인공수로를 만들어 농업용수를 조달하고 있다. 농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수로를 만들고 일본 정부를 향해 댐 물은 필요 없다고 외쳤다.
 가와가베댐 건설 예정지 하류 마을로 연결된 인공수로. 사가라촌 농민들은 10km 상류에서부터 인공수로를 만들어 농업용수를 조달하고 있다. 농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수로를 만들고 일본 정부를 향해 댐 물은 필요 없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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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도착한 곳은 사가라마을 종합체육관이다. 한적한 종합체육관에 일행을 내려놓은 연유는 무엇일까?

"댐 건설을 놓고 처음에는 주민들 간 찬반의견이 팽팽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9번의 주민토론집회가 열렸어요. 연인원 1만 2000명이 참여했습니다. 이곳에서 열린 첫 주민토론집회에는 3000명이 모였고 세 번째 토론회에도 2500명이 참가했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댐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분수령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토론회를 통해 주민들은 누가 옳은 말을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기모토씨 일행이 안내한 다음 행선지도 가와베가와댐 건설예정지가 아니었다. 기모토씨는 취재진을 가와베가와 강변으로 이끌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하천은 환경성과 국토교통성으로부터 4년 연속 맑은 물(청류)로 선정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여러 하천 주변공사로 수질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게 보입니다. 하류에 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은어가 이곳까지 떼지어 올라왔어요."
 
굳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굽이굽이 휘어져 흐르는 하천은 비경이었다. 세월에 다듬어진 바위와 맑은 물이 어우러져 빚어낸 소리는 청아했다. 자꾸만 지리산 댐으로 수장위기에 놓인 한국의 칠선계곡 앞 용유담의 모습이 교차했다.

"주민들에게 댐이 만들어지면 맑은 물도, 마을의 자랑도, 벗하며 살아야 할 자연도, 마을의 역사와 추억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와베가와 강은 보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다. 일본 최초의 '댐 건설 중단선언'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댐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이를 확인 시켰다. 일본 정부는 반박할 수 없는 주민들의 공세에 밀려 결국 40여 년간 막대한 예산과 공을 들여 추진해온 댐 건설을 끝내 포기해야 했다.

댐 건설을 추진해온 일본 건설교통성은 지난 2009년 가와베가와댐 공사를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 정부 최초의 댐 건설 중단 선언이었다. 당시 가와베가와댐은 주변도로 개설과 주민이주단지건설 등 40여 년간에 걸친 모든 사전 준비 작업을 끝내고 댐 본체 공사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인근에 댐 만들어진 이후 수해 커졌다"

첫 댐 건설여부를 놓고 처음으로 주민 대토론회가 열린 사가라촌 종합체육관
 첫 댐 건설여부를 놓고 처음으로 주민 대토론회가 열린 사가라촌 종합체육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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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베가와댐 건설예정지로 가는 길은 댐건설중단으로 막혀 있다.
 가와베가와댐 건설예정지로 가는 길은 댐건설중단으로 막혀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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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가와베강댐이 건설될 경우 수몰될 예정이었던 이츠키마을. 이미 보상과 공사가 끝나 원래 마을과 학교는 댐건설 시 예상수위 위쪽(사진 오른쪽 위)으로 옮겨졌고, 주민들은 고향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2008년 촬영사진
 구마모토 가와베강댐이 건설될 경우 수몰될 예정이었던 이츠키마을. 이미 보상과 공사가 끝나 원래 마을과 학교는 댐건설 시 예상수위 위쪽(사진 오른쪽 위)으로 옮겨졌고, 주민들은 고향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2008년 촬영사진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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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가파른 도로를 한참 동안 달린 후에야 공사가 중단된 댐 건설 예정지에 도착했다. 댐 건설은 중단됐지만 수몰 예정지였던 옛 '이츠키 마을'(五木村)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대표적 민요인 '이츠키 자장가'의 상징물인 아이를 등에 업은 동상도 모습을 감췄다. 대신 인근 산 중턱에 새로 조성된 수십여 가구의 '이츠키 마을'(이주단지)과 모던해 보이는 새로운 '이츠키 자장가 상'이 그 자리를 메웠다. 정부의 보상과 이주대책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다. 4500호에 이르던 댐 예정지 주변 가구 수는 주민 보상이 마무리된 후 1500호로 줄었다.

최종 목적지까지 이르렀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여전히 남았다. 일 정부의 주된 댐 건설의 목적 중 하나는 홍수예방이다. 농민들의 지혜로 용수부족 문제를 해결했다지만 홍수는 무슨 재주로 예방하겠다는 것일까.

"이곳은 수해를 체험한 사람들이 댐에 의한 치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1960년 이후 대홍수가 세 번 있었습니다. 일 정부는 대홍수를 겪으면서 댐 건설만이 홍수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경험에 의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구마천이 만나는 구마강 상류에 만든 세토이시댐이 오히려 홍수 피해를 키웠다고 믿고 있습니다.  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무릎 정도까지 침수됐지만 댐이 완성된 후 갑자기 허리 위까지 물이 차 오르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주민단체에서 만든 가와베가와댐 건설반대 홍보전단. 다리위에서 뛰어내리며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에 "필요없다! 가와베가와댐"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주민단체에서 만든 가와베가와댐 건설반대 홍보전단. 다리위에서 뛰어내리며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에 "필요없다! 가와베가와댐"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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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요시에 있는 허름한 공중 온천에는 이에 대한 입증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약 140여 년 전 지은 온천은 나무기둥에 홍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세토이시댐을 만들기 이전 침수 흔적은 70cm 남짓했지만 댐 건설 후 3차례 홍수의 침수 위는 각각 1m30cm, 2m에 이어 3m를 훌쩍 넘어섰다.

"댐을 만들고 제방을 높인 후 홍수가 일어나면 더 큰 피해를 일으킵니다. 따라서 댐이 아닌 다른 대책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치수는 치산 때문'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 숲을 울창하게 가꾸고, 강폭을 넓히거나 천변 논밭을 유수지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안정적인 유역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치수입니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사업에 반기를 드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댐 건설을 놓고 이웃들이 찬반으로 갈렸고, 정부를 상대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법정 공방을 벌여야 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건설사와의 공방도 치열했다.

"강에 대한 애정이 댐 공사 중단 힘의 원천"

구로다 히로유키(黑田 弘行)씨는 댐 공사를 중단시킨 힘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댐 건설을 막기까지 20여 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20년 전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늦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동쪽에도 댐 건설 여부로 논란을 빚었던 얀바댐(군마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얀바댐은 댐 건설 중단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가와베가와댐과 얀바댐(정부가 가와베가와댐과 함께 댐건설 중단을 결정했으나 지역주민들의 댐 건설요구로 중단 방침이 결국 철회됐다)의 사례가 주는 중요한 차이는 주민들이 강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가 여부입니다. 강에 대한 애착심, 이것은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강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구로다 히로유키(黑田 弘行)씨.
 '강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구로다 히로유키(黑田 弘行)씨.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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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로 댐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하류 모습
 일본 최초로 댐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하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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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겨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취재진에게 구로다씨가 조언하듯 말을 이었다.

"댐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막으면 물이 더 맑아진다고 말합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또 시뮬레이션을 통해 홍수의 위험성을 말하며 강물을 막고 제방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할 수 있는 홍수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는 지금 댐에 의존하지 않는 하천과 마을 재생을 위한 행복한 고민에 푹 빠져 있다.

가와베가와댐 건설계획에서 중단까지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군 이츠키에 위치한 당초 '가와베강댐' 건설 예정지 모습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군 이츠키에 위치한 당초 '가와베강댐' 건설 예정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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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베가와댐은 일본 삼대 급류로 알려진 구마천(球磨川) 최대 지류에 계획됐다. 1966년 발표됐으며 높이 107.5m, 총 저수량 1 억 3300 만 ㎥ (도쿄돔의 약 107 개분)로 규슈 최대의 댐이다. 건설 목적은 치수 (홍수 방지), 이수(관개 농업 용수), 발전용 등이다.

처음 계획 당시 추정사업비는 350억 엔이었으나 댐 본체 건설을 앞둔 시점에는 2650억 엔으로 늘어났다. 2005년 기준, 관련 연관 사업비를 합할 경우 4100억 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다.

1966년 댐 건설계획이 발표된 직후에도 수몰 지역을 중심으로 강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활동 내용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970년대 이르러 수몰단체 및 수몰민들이 댐 기본 계획 취소 소송을 취하하고 일 정부와 화해하면서 댐 건설 작업은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수몰이 예정된 이츠키 마을 주민들은 수몰을 전제로 한 마을 계획 수립과 본체 공사 착공에 동의했고, 2000년 중반 경 마을 중심의 산기슭으로 모두 이전을 완료했다.

다른 한편 1990 년대 초반부터, 댐 하류인 히토요시시를 중심으로 댐 계획 재검토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들은 환경 문제, 불필요한 대형 공공사업 검토, 댐의 치수 효과에 대한 의문 등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토교통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마천 어업보상을 진행했다. 2003년 5월 후쿠오카 고등 법원이 농민들의 '댐의 물은 필요 없다'는 주장을 인정, 댐 기본 계획 변경이 불가피해졌음에도 정부는 어업권과 관련 '강제 수용 절차'에 착수했다.

2001년 12월부터는 국가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치수와 환경을 주제로 '주민 토론회'가 시작돼 2003년말 까지 9차례 열렸다. 지난 2008년 3월 23일 치러진 구마모토 지사 선거에서 가바시마 이쿠오 현지사가 당선되면서 가와베강 댐 건설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그는 당선 몇 달 만인 같은해 9월 11일 전격적인 댐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이듬해 일 국토교통성도 민주당의 정권공약에 따라 군마현의 얀바댐과 함께 가와베가와댐 건설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군마현 얀바댐의 경우 지역주민들의 건설요구로 결국 건설 중단 방침이 철회됐다. 이에 따라 가와베가와댐은 일 정부 최초의 댐 건설 중단 첫 사례로 기록됐다.

특별취재팀 : 김병기 편집국장, 심규상 지역팀장, 허재영 대전대 교수(취재자문. 충남도 4대강 재검토특위 공동위원장), 주영덕씨(통역)


태그:#가와베가와댐, #일본 최초 댐중단, #탈댐선언, #히토요시, #이츠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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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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