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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는 전라남도 홍도에 다녀왔다. 홍도의 절경을 둘러보면서 아쉽게도 나는 단 한 가지를 찾아 볼 수 없었다. 홍도 아이들이었다.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섬에 사는 까무잡잡하고 사투리 쓰는 귀여운 아이들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후에 배를 타고 홍도를 둘러보는데, 배 위에서 안내해 주시는 할아버님께서 홍도 안에는 초등학교가 단 하나 밖에 없다고 설명해 주셨다. 내가 마을을 둘러보며 본 작은 어린이 놀이터 만했던 운동장과 낮고 작은 건물이 이 아름다운 홍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배를 타고 내륙으로 나가 목포에 있는 중학교를 진학한다고 한다. 내가 아이들을 못 본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러 그 부모님들도 다 목포로 나가고 그 어린 동생들까지 나가, 이제는 홍도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다고 한다.

 

돈이 없다 보니 중학교를 짓지 못했고 중학교가 없으니 학생들이 모두 나가고 그래도 지으려니 학생들이 없어 지을 수도 없다고 하셨다. 그나마 남아있는 초등학교도 학생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외지에서 큰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한 뒤 이 아름다운 섬에 돌아오지 않는 다고 한다. 그러니 자주 여행을 와서 돈을 써달라는 농담 섞인 말도 할아버님의 간절한 마음을 다 덮을 수는 없었다.

 

내가 대한민국 공교육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마주한 순간이었다. 뉴스를 통해서 여러 농촌·도서지역에서 폐교가 늘고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내가 읽은 수십 개의 기사보다도 할아버님의 말씀 한마디가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 홍도의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학생이 없는 홍도의 학교를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내 머릿속에 순간 스친 것은 바로 EBS이다. EBS로 공교육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아주 작은 학교에서도 컴퓨터 몇 대와 관리해 줄 선생님 한 두 분만으로도 교내에서 컴퓨터로 같이 EBS 강의를 들으며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대의 컴퓨터만으로도 프로젝터를 사용해 여러 아이들이 함께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을 매우 높고 홍도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하니 EBS 교육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EBS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무료 수강이 가능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첫 번째로 EBS 강의의 질이다. 경력을 채우기 위해 EBS에서 강의하는 몇몇의 선생님들이 아닌 정말 실력이 있는 수준 높은 수업을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확보되어야 한다. 게다가 공교육뿐만 아니라 사교육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기본부터 심화까지 강의해 주실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 또한 이들을 위해 충분한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오직 농촌·도서 지역의 학생들만을 위한 강의가 따로 진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EBS에서 학생들의 내신 시험까지도 책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EBS 강의를 들으며 시험도 봐야 하니 EBS에서 농촌·도서지역의 학생들을 위해 일괄적으로 시험을 출제하는 것이다. 물론 EBS 강의의 수준에 맞게 출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농촌·도서 지역 학교에서는 내신을 위한 높은 '퍼센테이지'를 얻기 힘드니 EBS에서 도시 기준으로 EBS 수업 학교를 묶어 내신을 산출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모의고사처럼 EBS에서 한 날짜를 정해 학생들이 일괄적으로 시험지를 다운받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학생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이다. 이러한 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려면 학생들의 EBS 강의 커리큘럼을 짜주고 학생들의 출결을 관리해 줄 선생님이 필요하다. 이곳의 선생님은 직접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주고 상담을 해주며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시는 학교 당 한 두 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네 번째는 이러한 EBS 수업을 받은 학생들을 위한 대학 진학 특혜이다. 현재도 각 대학마다 농어촌·도서 지역 학생들을 위한 특별전형을 시행하고 있다. 이것을 좀 더 개편하여 EBS 공교육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EBS 공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특혜를 준다면 굳이 자녀의 교육 때문에 전출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변 도시의 학생들이 이 혜택을 받기위해 전입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공교육만 활성화 될 뿐 아니라 농촌 사회 문제까지도 일부 해결할 수 있다.

 

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예정보다 1주일 미루어 시행된 2011년 수학능력시험이 치러 지는 날 전국에는 고요한 긴장감이 돌았다. 이번 수능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EBS 연계였다. 현 정부가 '공교육 살리기'를 표방하면서 이번 수능이 EBS와 70%의 연계율을 가지고 출제하였으나 어려운 수능은 결국 EBS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데 일조해 버렸다.

 

이 정책이 예상 밖의 결과를 낸 것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공교육이 형평성을 추구하는 동안 사교육은 효율성을 추구해 왔다. 바로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경제 이론에 따른다면 사교육의 수요를 줄이려면 공교육의 수요도 줄어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 사교육을 따돌릴 방법은 있다. 그것이 바로 사교육이 교육 시장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방법인 '틈새 시장' 공략하기이다. 사교육이 이윤을 창출하기 힘든 농촌·도서 지역에서 공교육의 기초를 다잡는 것이다. 혹자는 큰 파급효과를 내지 못 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만일 이러한 정책이 큰 파급효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의 균형적 교육은 실현할 수 있다.

 

그리고 최소한 홍도 아이들이 더 이상 공부를 하기 위해 섬을 떠나 그들의 아름다운 고향을 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조선, 중앙, 한겨레,  경향, 동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EBS, #공교육, #홍도,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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