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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곳 무각사 갤러리에서 시인이 그동안 찍은 사진 13만 장 가운데 고른 30점을 만나셨습니다. 삼천 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사진들을 만난 것이지요."

 

박노해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기획한 이기명씨의 말로 지난 12월 30일 무각사 로터스 문화관 3층 참선방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10년 동안 지구촌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을 앵글에 담으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시인은 차분한 어조로 들려 주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한 달 동안 전시된 시인의 사진을 관람했었던 지역민들이었고, 타지에서 온 시인의 팬들도 여럿 있었다.

 

시인은 아프리카나 중동의 분쟁지역을 방문해 기아와 전쟁 공포에 시달리는 삶을 알리려 앵글에 담으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한다. 셔터를 누르다가 붙잡혀 죽을 만큼 맞기도 했고, 여러 번 저격당할뻔했다고 한다. 그럼 무엇이 시인을 사지(死地)로 가게 했을까?

 

"티브이를 통해 분쟁지역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느꼈던 고통보다, 직접 찾아가 함께 하는 것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인의 생각은 그의 사진으로도 읽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 펴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노동해방을 꿈꾸었던 혁명가가 이제 인류애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행사장을 찾은 사람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앳된 소녀가 "선생님의 시 스승은 누구세요?"라고 묻자 시인은 '노동'하는 분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특히 자신의 이모님처럼 성실하게 사는 이 땅의 농사꾼이 모두 스승이었다고, 그분들의 몸말이 모두 아름다운 시였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였다. "직장 생활을 하되 틈을 내 농사 지으세요. 그래야 영혼을 살찌울 수 있고, 미래에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시인과의 만남이 끝나고 '새해엔 한 평이라도 땅을 일구리라!' 다짐하며 무각사 경내를 걷는데 마침 눈이 내려 산사가 더욱 아늑해졌다.


태그:#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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