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에 눈을 뜨고 버릇처럼 창을 열었어요. 눈 소식은 있었으나 역시 말짱합니다. 하늘을 봐도 눈 올 것 같지는 않은 날씨였지요. 기대를 접고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데, 얼마쯤 지났을까?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부르네요.

 

"눈 온다! 빨리 와봐!"

"에이, 거짓말!"

"아니야. 진짜라니까? 빨리 와봐!"

 

조금 앞서만 해도 하늘이 멀쩡했는데, 눈이 온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남편이 짓궂은 장난도 잘 치기 때문에 장난인 줄 알았지요. 그래도 워낙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에, 뛰어가서 창밖을 보니 진짜로 눈이 내리네요. 그것도 '내린다'고 말하기엔 넘칠 만큼 그야말로 펑펑 내립니다. 아니, 하늘에서 눈을 마구 쏟아 붓듯이 내립니다. 뛸 듯이 기쁘네요. 참으로 얼마 만에 눈다운 눈을 보는 건지 모릅니다. 얼마 앞서도 눈이 오긴 했는데, 그저 땅만 살포시 적시다가 말았거든요.

 

냉큼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습니다. 눈 오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도 호들갑을 떨까 하겠지만, 이 지역에서는 진짜 제대로 된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온 나라에 눈이 많이 와서 난리가 났다 해도 이곳만큼은 언제나 비껴가는 가거든요. 아예 구경도 하지 못하니까요.

 

 

며칠 동안 날도 추운데다가 감기까지 몹시 걸려서 일터에 갈 때 자전거를 타지도 못했답니다. 오늘은 자전거 타고 가보나 했는데, 갑자기 눈이 저리도 많이 오니 방법이 없네요. 하는 수 없이 일터 식구 차를 얻어 타고 갑니다.

 

아뿔싸, 집 앞을 나와서 찻길로 나가자마자 이내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 차선은 구분도 할 수 없고, 차들은 저마다 이리저리 뒤엉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콱 막혀버렸네요. 게다가 얕은 오르막길을 올라가야하는데, 어떤 차든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빙그르르 돌다가 미끄러지고 맙니다.

 

"누님, 이거 어쩌지요? 저기로 못 올라가는데요. 돌아가려고 해도 저렇게 많이 밀려있으니 방법이 없어요."

"큰일이다. 그나저나 오늘 이래갖고 장사를 하겠나?"

"이런 날엔 화물차는 더 못 다녀요. 암만해도 안 되겠는데요?"

"그럼 어쩌지? 가만있어봐 다른 식구들은 어떤지 전화 한 번 해보자."

"아마도 아직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걸요?"

 

 

아니나 다를까 일터 식구들한테 하나하나 전화를 해서 물으니,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오늘 일은 접어야 할 듯했어요. 물론 이런 결정은 사장님이 내려줘야 하겠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방법이 없네요. 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동료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오르막길 하나만 올라가면 이내 닿을 일터였지만, 화물차를 끌고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동료들은 아무래도 오늘은 쉬어야 할 듯하네요. 차에서 내려서 온통 차로 엉켜있는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왔어요. 걸어서 가는 길도 만만치 않네요. 눈 쌓인 바닥은 얼음판이 되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자칫하면 뻥~ 엉덩방아를 찧겠더군요.

 

 

아예 올라가기를 포기했는지 길 한 쪽에 그냥 세워둔 차도 여럿 눈에 띕니다. 걸어서 한참 만에 닿은 일터에는 팀장님이 혼자 나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막 왔다는데, 15분이면 닿을 거리를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면서 오늘은 아무래도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네요.

 

덕분에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아침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출근했다가 돌아오기까지 한 4시간 쯤 걸린 것 같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다행스럽게도 해가 나서 눈이 많이 녹고 있어요. 몇 시간 앞서만 해도 전쟁을 치르듯 엉망이었던 찻길도 뻥 뚫렸어요. 아침에 오르막길을 오르지 못해 길 한쪽에 세워두었던 차만 몇 대 보이고 보통 때랑 다름없네요.

 

지금도 눈발은 계속 날리고 있습니다. 더 춥지만 않다면 괜찮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이 눈이 꽁꽁 얼어붙어 내일이 더 걱정일 수도 있겠네요. 구미에서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하니 무척 기쁘고 즐거운데, 차타고 다니는 이들한테는 그리 반갑지 않겠네요.

 

그나저나 우리 사장님은 이 눈이 녹으면 배 아프지 않을까요? 직원들이 출근조차 못했으니 말이에요. 하하하!


태그:#눈, #구미시, #폭설, #출근길전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