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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중순, 삐걱대는 쪽대문을 밀고 들어간 건물 내부는 대낮인데도 침침했다. 천장은 아득하게 높았지만 얼기설기 튀어나온 배관과 전선들 때문에 허리를 숙여야 했다. 불콰하게 풍겨오는 냄새에 본능적으로 호흡이 더디어진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은 불결하고 비좁아 보였다. 좁은 복도를 따라 여관방마냥 방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통 방 크기의 반쪽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여 이름 붙은 '쪽방'이다.

반쪽짜리 방 '쪽방'... 도심 한복판 그늘에 가려진 동자동 쪽방촌

동자동 쪽방촌의 한 쪽방 건물 복도
 동자동 쪽방촌의 한 쪽방 건물 복도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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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을 중심으로 도심에 속하는 용산구 대로변에는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는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다. 그 중 4호선 서울역 11번 출구 바로 앞에는 게이트웨이타워가 서 있다. 게이트웨이타워는 지난 7월 1397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던 고급 오피스 빌딩이다. 그러나 그 뒤편으로 몇 발짝만 내딛으면 마천루의 화려함과 대조되는 최하급의 주거 공간인 쪽방촌이 존재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쪽방을 '도심 인근이나 역 근처에 위치하여 1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단신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로,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별도의 부엌과 목욕시설은 없는 형태'라고 정의한다.

동자동 쪽방촌의 하룻밤 숙박료는 6000~7000원 선이고 월세는 17~20만 원 정도로 보증금은 따로 없다. 환경은 열악하지만 방세가 저렴하니 오갈 데 없는 독거노인이나 일용직근로자, 장애인과 같은 도시 빈민들이 거주한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도 많이 산다.

이런 쪽방들이 밀집된 쪽방촌이 서울에는 크게 다섯 군데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 이곳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이다. 남영동 주민센터 이상윤 사회복지담당공무원에 따르면 300~400가구 정도가 여기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주민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동자동 쪽방촌이 더 컸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의 노른자위 땅이니 이곳에 재개발의 칼바람이 불어 닥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재개발로 삶터를 잃은 거주민들은 아직 남아있는 다른 쪽방으로 옮기거나 창신동, 회현동 등의 다른 쪽방촌으로 흩어졌다. 대책없이 거리로 내몰린 이들도 상당수다.

게이트웨이타워 뒤편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동자동 쪽방촌에 해당한다. 쪽방촌 가운데 있는 새꿈어린이공원은 별다른 할 일이 없는 주민들이 소일하는 공간이다. (지도 원본 출처 - Daum)
 게이트웨이타워 뒤편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동자동 쪽방촌에 해당한다. 쪽방촌 가운데 있는 새꿈어린이공원은 별다른 할 일이 없는 주민들이 소일하는 공간이다. (지도 원본 출처 - Daum)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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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화장실? 차라리 공원으로 가지"

서너 사람이 채 앉기도 비좁은 김충섭 씨의 쪽방
 서너 사람이 채 앉기도 비좁은 김충섭 씨의 쪽방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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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섭(가명, 44)씨가 동자동에 온 지도 약 2년이 됐다. 광산노동자였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뒤 고향 강릉에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맨주먹으로 상경해 중국집 배달원, 양화점 구두공 등으로 일했으나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서울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입에 풀칠하기 바쁘게 십수 년을 보내다가 청량리를 거쳐 결국 동자동 쪽방촌으로 흘러들어 왔다.

"빨래나 목욕은 할 수가 없지. 싱크대가 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해먹는 걸. 목욕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목욕탕 가서 하지. 빨래는 모아놨다가 세탁소에 갖다 주면 7000원 받아요. 화장실은 너무 좁고 불편해. 차라리 바깥으로 나가서 공원에 있는 데로 가버린다고. 거기가 더 낫어."

김씨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매달 42만 원 정도를 수령한다. 월세로 17만 원을 내고, 식비와 생활비를 쓰고 나면 돈은 거의 남지 않는다. 그나마 평일에는 근처 복지관에서 하루 두 끼씩 식사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크게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 병원비가 안 드는 것도 다행이다.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의료보호를 받기 때문에 의료보험이 되는 선에서는 무료로 진료를 받지만, 큰 검사나 수술이 필요한 중병이 들게 되면 비용 마련을 못해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역설적으로 "돈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내가 구두를 엄청 잘 닦는다고. 사우나 같은 데 입구에서 구두 닦는 일 하면 최소 월 200~300은 벌어요. 그런데 거기 자릿세 보증금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야."

다른 일자리는 없었는지, 구청에서 일자리를 알선해주지는 않냐고 묻자 그는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구청에서 하는 공공근로가 있기는 하지만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밥 사먹고 출퇴근 하려면 돈이 더 든단다. 게다가 언제 잘릴 지도 모르는 한시적인 일자리를 구했다가 기초생활수급이 끊겨 버리면 더 곤란해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해도 쉽사리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그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복지병'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일해도 가난하고 일하지 않아도 가난하다면 큰 병 나지 않게 일을 않는 것이 경제 주체로서 그나마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터다.

서울이 반기지 않은 도시빈민들의 삶터, 쪽방촌

서울역 맞은편, 이렇게 으리으리한 빌딩들 뒷골목에 동자동 쪽방촌이 숨어있다. 오른쪽 건물이 게이트웨이 타워.
 서울역 맞은편, 이렇게 으리으리한 빌딩들 뒷골목에 동자동 쪽방촌이 숨어있다. 오른쪽 건물이 게이트웨이 타워.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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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다는 김씨나, 지금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 나은 곳으로 이사했지만 어릴 때 식모로 팔려 간 누나없이 홀로 머슴 생활을 하다 상경해 동자동 쪽방촌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최성식(가명, 69)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실에 불편해진다.

가난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수성가의 신화는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에나 먹혀들던 희망고문이다. 좁은 천장을 바라보고 사는 이들은 날마다 절망 속으로 잠식한다. 꿈꿀 권리는 잃은지 오래다. 몸도 마음도 반쪽짜리 방에 맞추어 쪼그라든다.

동자동 쪽방촌의 특징은 도심 한복판이라는 위치다. 번듯하게 지어올린 빌딩들 사이에 있지만 절대로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 애써 숨겨 놓기라도 한 듯 쪽방촌은 고층 빌딩의 그림자 속에 교묘히 가려져 있다. 멀쩡한 주택가나 상업 건물 뒤편에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는 쪽방 건물은 그 문을 열고 냉기를 느껴보기 전까지는 전혀 존재감이 없다. 쪽방촌에서의 삶은 알아주는 이 없이 그렇게 조용히 흘러간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저널리즘 실습' 과목의 실습 과제로 작성한 것입니다.



태그:#동자동쪽방촌, #쪽방, #동자동, #쪽방촌, #기초생활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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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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