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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지난 여름방학 동안 35개 교실 마룻바닥 공사를, 한 교실에 1000만 원씩 모두 3억5000만 원에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35개 교실 중 2개 교실만 공사하고 나머지 공사는 취소됐습니다.

취소된 까닭은 제가 마룻바닥 공사와 관련해 학교 측과 교육지원청 측에 몇 가지 문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사를 취소하라고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공사와 관련해서 궁금한 사항을 몇 가지 물어만 봤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기로 결정된 공사가 취소되어서, 학교 공사가 한 교사가 묻기만 해도 취소될 수 있는 것인지 매우 놀랍고 의아합니다. 우리 학교 공사가 취소된 전후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방적으로 마루공사 통보받다

지난 여름방학을 얼마 앞두고 교사들은 관리자한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협조 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여름방학 때 전체 교실 마루공사를 할 예정이니, 혹시라도 모르니 각 반 담임선생님들은 귀중품 보관을 잘 하시고,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을 모두 제거해서 컴퓨터실에 쌓아 보관해 두고, 책걸상을 복도 밖으로 내놓아 달라.

35개 전체 교실 마룻바닥을 모두 뜯어내서 새로 마루를 까는 공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마루를 새로 깔아서라기보다 그렇잖아도 컴퓨터로 마무리할 일이 많은 방학 전에 미리 컴퓨터에 연결된 선을 다 빼서 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교는 컴퓨터가 안 들어오면 모든 일이 정지되는데, 특히 방학 전에는 NEIS(네이스)에 아이들 평가 입력 완료하랴, 통지표 출력하랴, 아이들을 위한 방학 계획서 작성하랴 그 어느 때보다 컴퓨터가 가장 요긴하게 쓰일 때인데, 컴퓨터를 쓸 수 없게 미리 빼라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요.

저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창 컴퓨터가 필요한 때 미리 컴퓨터를, 그것도 교사들한테 빼라고 하면 어떡하냐? 방학한 뒤에 업자들이 하게 하면 안 되느냐 했더니, 업자들한테 시키면 아무렇게나 빼서 부속이 다 망가지고 코드도 잃어 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교사가 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망가진 것은 업자가 책임을 지면 안 되냐 했더니 그래도 교사가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다음 공사가 끝난 뒤에도 교사들이 컴퓨터기기를 갖다가 다 연결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니, 이렇게 멀쩡한 마루를 뜯는다고?

세게 뛰어도 꿀렁거리는 곳도 없습니다.
▲ 30년된 마루가 아직까지 멀쩡합니다. 세게 뛰어도 꿀렁거리는 곳도 없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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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서 교실로 돌아와 앉아서 치밀어 오르던 열을 식히다가 물끄러니 교실 바닥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다 뜯어내서 새로 깐다는 교실 마룻바닥이 아주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교실 곳곳을 돌아보았습니다. 뛰어도 봤습니다. 어느 곳 하나 출렁거리거나 삐걱거리지 않고 단단했습니다.

오래돼서 때가 끼어 있다는 것과 마루판 사이가 벌어져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 것을 빼면 아주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다른 교실에도 가 봤습니다. 역시나 우리 교실만큼 마룻바닥이 멀쩡했습니다. 단지 한 교실만 출렁거리고 사이가 많이 벌어져 있을 뿐, 29년 동안 제가 겪은 교실 마루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마루였습니다.

 가장 좋지 않은 곳이 이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을 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곳이 있다고 모든 교실 마루바닥을 다 뜯어서 새로 깔아야 하나요? 부분만 보수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 30년된 마루바닥 모습 가장 좋지 않은 곳이 이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을 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곳이 있다고 모든 교실 마루바닥을 다 뜯어서 새로 깔아야 하나요? 부분만 보수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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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교사들에게 메신저로 문제가 있는 교실 마룻바닥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교사 한 분만 답을 보내왔습니다. 역시나 마룻바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때와 먼지가 많다, 마루판 사이가 벌어져서 먼지가 끼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왜 이 멀쩡한 마루를 바꾸려고 할까, 새로 바꾸면 어떤 마루가 되나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마룻바닥 공사한 걸 보면 공사 전보다 더 나빠진 모습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옛날 마루보다 새로 깐 마루가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할 뿐 금세 망가지고 관리하기에도 나빴습니다. 틈 사이가 전보다 더 벌어지고, 가장자리가 갈라지고 벌어져서 아이들이 다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또 공사 뒤에는 환경호르몬 물질이 많이 나와서 1년 동안은 교사와 아이들의 아토피와 비염이 심해집니다. 그래서 행정실에 문의를 했습니다.

마룻바닥 공사가 어떤 과정으로 결정이 되었나요?
마룻바닥이 멀쩡한데 왜 바꾸려고 하나요?
마룻바닥 공사 금액이 얼마인가요?
새로 깔기로 한 마루는 어떤 것인가요?

마룻바닥 공사 금액은 한 교실에 1000만 원이라고 답변이 왔고, 실제로 학교에 온 공문을 보니 우리 학교 마루바닥 공사 금액이 35개 교실 3억5000만 원이었습니다. 한 교실에 마루를 새로 까는 금액이 1000만 원이나 된다고 해서 더 놀랐습니다. 

 한 교육청에서 지난 여름방학 때 예정된 마루바닥공사비만 8개교에 한 교실당 1천만 원씩 모두 17억 8천만원입니다.
▲ 지난 여름방학에 진행한 환경개선사업 현황표(일부) 한 교육청에서 지난 여름방학 때 예정된 마루바닥공사비만 8개교에 한 교실당 1천만 원씩 모두 17억 8천만원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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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가 마룻바닥 공사를 요청한 이유를 보니 마룻바닥이 개교 당시인 1982년에 공사했다고 되어 있어서 마룻바닥이 오래된 정도로 우리 학교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30년이 다 된 마루치고는 너무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와 교육청에 정말로 이 마루가 1982년도에 시설된 것이 맞느냐, 학교와 교육청에 보관된 시설대장을 볼 수 있느냐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와 교육청 쪽 모두 마룻바닥이 시설된 연도가 나와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선생님 때문에 공사를 못하니 가만히 있어 달라"

행정실에 마루공사에 대해 문의하는 중에 교육지원청 담당직원이 학교까지 찾아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공사는 이미 결정이 됐고 공사를 당장 시작해야 하는데, 선생님 때문에 공사를 못하니 가만히 있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공사하는데 따지는 교사는 한 번도 없었다면서,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는 말이냐? 난 그냥 멀쩡한 마루를 왜 뜯어서 새로 깔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물어보는 것이 잘못이냐. 공사 못하게 한 적 없다. 공사 예정대로 그냥 진행하시면 되지 않느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담당자한테 전화로 "꽤 힘들게 한다. 제발 조용히 있어 달라, 왜 시시비비를 걸어서 공사를 방해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럼 선생님 반만 공사하지 않겠다. 다른 선생님들한테 물어서 원하는 교사 반만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학교 공사를 교사 개개인한테 물어서 원하는 반만 공사를 하느냐?", "꼭 필요한 공사라면 교사가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교사의 의견을 묻는 것은 처음에 공사 요청할 때 해야지, 공사하기로 결정된 지금 원하는 반만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학교공사를 할 때는 학교가 신청한다고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 담당자가 실사를 해야 합니다. 원칙대로 공사를 진행했다면 한 사람이 문의했다고 해서 다시 교사들에게 의견을 묻겠다고 한 것도 의아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교육청 담당자한테 이번에 새로 깔기로 한 마루의 재질을 알고 싶으니 우리 학교와 같은 마루바닥 공사 한 곳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그냥 "친환경적인 좋은 원목"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비슷한 학교는 있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깐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업체 가게나 공장에 설치된 샘플 시공 모습이라도 보여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가정집에 10만 원짜리 장판을 깔 때도 부분만 봐서는 안 되고 시공한 모습을 봐야 알 수 있는데, 어떻게 3억5000만 원짜리 공사를 하면서 시공된 샘플이 없느냐고 했지만 담당자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더니 학교 측에서는 7월 28일자로 교육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교육환경개선사업 재검토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1. 2010년 서울시강동교육청 교육환경개선사업과 관련입니다.
2. 본교에 게획된 교육환경개선사업 중  교실바닥 교체공사에 대하여 협의한 바 아래와 같이 의견이 제기되어 재검토 요청 하오니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협의 내용 -
일부 교실은 훼손정도가 심하나 일부 교실은 바닥상태가 시공년도에 비해 대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이고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큰 지장이 없으므로 훼손이 심할 시기에 교체함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임. 

결국 우리 학교 마룻바닥 공사는 예정된 35개 교실 중 두 교실만 하기로 했습니다. 한 교실은 제가 보기에도 바닥이 꿀렁거려서 새로 공사를 해야 할 정도였지만, 또 한 교실은 바닥이 멀쩡했습니다. 멀쩡했던 교실은 담당 선생님께도 어떤 문의를 한 적도 없이 공사를 했다며 나중에 어이없어 했습니다.

11월 22일자로 교육청 쪽에 추가 정보공개요청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 공사가 취소된 까닭은 학교의 '재검토 요청' 때문이었다고 하고(12월 2일 답변내용), 학교 측이 '재검토를 요청한 까닭'을 정보공개요청을 하니 '협의를 해서' 취소 요청을 했지만, 협의한 근거자료는 '없다'고 합니다.(11월 29일 요청, 12월 10일 답변)

'어렵게 따 온 공사인데......'

제가 마룻바닥 공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관리자 쪽이나 교사들이나 교육청 담당자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어렵게 따온 공사인데 이번에 다른 학교로 넘어가면 앞으로 우리 학교 차례가 오기 힘들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랬지요.

"안 해도 되는 공사를 왜 어렵게 따옵니까? 우리 학교는 안 해도 되니까 우리 학교보다 더 필요한 다른 학교한테 기회가 돌아가면 되지 않나요? 그리고 우리 학교는 정말 마룻바닥 공사가 필요할 때 다시 요청하면 되지 않나요?"

또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담당자는 마룻바닥 공사에 대해 제가 문의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담당자는 정식으로 정보공개요청을 한 저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와서 "참, 힘들게 한다. 이런 공사 문제는 부장이나 행정실이나 교장이 하는 일인데, 교사가 수업이나 잘할 것이지 왜 이런데 신경을 쓰고 그러느냐?"는 험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사가 학교 공사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문의하는데 "교사가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쓴다"는 식의 대응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교사로서 '궁금한 것을 물었을 뿐'인데 이미 공사하기로 결정된 3억5000만 원짜리 마룻바닥 공사가 바로 취소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학교 공사에 얽힌 문제가 무척 많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 학교에 시공할 모습과 같은 사례를 보여달라고 하니 교육청담당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올해 한 마루바닥 공사의 특징이 걸레받이에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구멍을 왜 뚫었느냐고 하니까 바람이 통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 지난 여름방학 때 우리 학교에 시공한 마루바닥 모습 우리 학교에 시공할 모습과 같은 사례를 보여달라고 하니 교육청담당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올해 한 마루바닥 공사의 특징이 걸레받이에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구멍을 왜 뚫었느냐고 하니까 바람이 통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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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교공사문제, #부실공사, #마루바닥공사,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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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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