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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14일 자정까지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으로부터 빌린 1조2천억원이 무담보, 무보증이라는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대출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자료를 내지 않으면 예고한 대로 양해각서(MOU) 해지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의 모습.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14일 자정까지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으로부터 빌린 1조2천억원이 무담보, 무보증이라는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대출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자료를 내지 않으면 예고한 대로 양해각서(MOU) 해지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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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2 허각이 음대 안 나왔다고 우승자 자격 박탈하나? (그랬을 때) 허각이 느끼는 감정을 갖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를 총괄해온 하종선 현대그룹 사장(전략기획본부장)이 22일 오전 기자들에게 작심한 듯 내뱉은 말이다. 소송을 중단하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을 분산 매각해 현대그룹 경영권을 보장하겠다는 채권단 중재안에 대해서도 "현대건설 이사회나 다른 소액주주, 주요 주주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법 위에 있는 제안"이라면서 "우리는 위법한 방안에 공범이 될 수 없다"는 말로 단호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에서 빌린 1조2천억 원 대출계약서 등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20일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한 현대건설 채권단과 현대차그룹을 향한 항변이자 본격적인 법정 공방을 예고한 말이기도 했다.

양해각서 해지 적법성 놓고 현대그룹-채권단 '법정 공방'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581호 법정에선 현대상선 등이 외환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등 채권단을 상대로 제기한 현대건설 지분 매각 양해각서(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 첫 심리가 열렸다.

민사합의50부(최성준 수석부장판사) 주재로 2시간 30여 분에 걸쳐 진행된 첫 심리는 시청각 기기까지 동원돼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참관인석이 10여 개에 불과한 좁은 법정은 양쪽 관계자들과 취재진 수십 명으로 가득 차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보여줬다.   

이 자리엔 신청인과 피신청인 외에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 법정 대리인 3명도 '보조 참가자' 자격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채권단을 상대로 예금 인출, 민형사 소송 등 전 방위 압박에 나섰던 현대차가 이번엔 채권단 측면 지원에 나서 180도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줬다.   

이미 채권단이 양해각서를 해지한 상태여서 현대그룹 쪽은 전날 양해각서 권리를 유지하고 채권단이 현대차그룹과 양해각서 체결이나 매각 절차를 진행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가처분 신청 내용을 급히 바꿨다. 이에 채권단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사이 현대차그룹 쪽이 대신 총대를 메기도 했다.

[쟁점 ①] 현대그룹 우선협상 지위 박탈은 미리 짜인 각본?

먼저 현대그룹 법정 대리인은 구두 진술을 통해 "입찰 공고 이전부터 시작된 전쟁은 불공정한 게임이었다"면서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한 손이 뒤로 묶인 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며 채권단의 불공정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현대그룹은 지난 9월 24일 현대건설 지분 매각 공개경쟁입찰 공고를 앞둔 지난 7월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요구한 것부터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를 막으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채권단이 신규 여신 제공을 중단하면서 국내 금융권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해외 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컨소시엄 참여자에게 인수 대금 전부에 대한 연대 책임을 부과한 매각 조건 또한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 참여를 어렵게 해 현금 자산이 부족한 현대그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말 양해각서 체결 전후 언론, 정치권, 채권단을 통한 현대차그룹의 전방위 압박 역시 대표적 불공정 사례로 꼽았다. 

현대그룹은 "MOU 체결 이전 현대차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인수자금 출처 의혹을 담은 기사 스크랩을 배포했다"면서 "이어 열린 국회 정무위에 유재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이 출석해 자금 출처 조사를 요구받은 뒤 태도가 돌변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유재한 사장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며 현대그룹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박탈이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재한 사장은 22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현대그룹의 인수자금 조달 문제를 알고서도 MOU를 맺은 이유에 대해 "입찰계약서만으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뺏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면서 "현대그룹이 외환은행과 빨리 MOU를 맺지 않고 버텼다면 오히려 법적으로 현대그룹에 유리할 수 있었다"고 밝힌 것이 논란을 키웠다.

하종선 사장 역시 "유재한 사장이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라면서 "인터뷰 내용대로 그런 계획과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며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현대건설 채권단 대표인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가운데)이 지난달 16일 오전 11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을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현대건설 채권단 대표인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가운데)이 지난달 16일 오전 11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을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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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②] MOU 보전 가처분 신청 받아들여져도 효력 상실?

채권단은 지난 20일 주주협의회에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부결했기 때문에 MOU 해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현대그룹은 "MOU 체결 후 현대건설 정밀 실사, 인수대금 조정, 최종 가격 협상을 거쳐 주식매매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계약서 작성도 안 된 상태에서 부결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또 MOU 해지와 동시에 상정된 것은 적법한 해지 사유가 있음을 전제로 부결시킨 것이기 때문에 MOU 해지가 위법하다면 매매계약 부결도 위법하다"고 맞섰다. 

또 현대그룹은 "안건 상정 취지가 현대그룹이 얼마나 높은 금액을 제시하든 매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경쟁 입찰이 아니라 수의 계약 절차"라면서 "4100억 원이나 낮은 가격에 매각하는 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된다"고 채권단을 압박했다.

이에 채권단은 양해각서 '부제소특약'에 따라 채권단이 MOU를 해지하더라도 현대그룹이 어떤 소송도 제기할 수 없다며 모든 소송을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OU 해지 적법 여부에 관계 없이 주주협의회에서 본계약을 체결 않기로 하면 문제없다는 채권단 주장에 대해 재판장은 "MOU 해지 사유가 없는 데도 주주협의회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박탈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우선협상대상자는 어떤 의미인가"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에 채권단쪽은 "협상만 우선이고 협상 결과 결렬되면 매매계약을 체결 안할 수도 있다"면서 "MOU 조항에 따라 어떤 사유로든 주주협의회 결의가 없으면 MOU는 실효된다"고 밝혔다.

[쟁점 ③] 1조2천억원 대출 경위, 채권단도 알았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나티시스 은행 1조2천억 원 대출 경위에 대해 현대그룹은 "넥스젠캐피털은 현대상선 지분 4.8%를 지닌 우호 주주로 컨소시엄에 참여하려 했으나 연대 책임 문제 때문에 잠정 보류하고 모기업인 나티시스 은행에게 1조2천억 원을 대출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이 사건의 핵심은 현대그룹이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부채 1조 2천 억 원 증가를 숨겼다는 것"이라면서 "애초 1조2천 억 원을 자기자금이라고 하고 부채라고 얘기 안한 것은 속임수"라고 따졌다.

이에 현대그룹은 "대출 경위는 이미 채권단도 알고 있었다"면서 "채권단의 대출계약서 제출 요구는 부적법하고 자료 미제출 이유로 해지는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MOU 해지 근거 사유 가운데 하나인 2차 대출확인서 말미에 있는 "이 확인은 고객인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에게만 해주는 것이며, 제3자에게 진술 및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단서 조항에 대한 풀이에서 재판부는 현대그룹 쪽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채권단은 대출확인서가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기재되어 있어 근본적인 법적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지만, 재판장은 "문구 취지는 금융거래 비밀보장 문구로 보인다"면서 "채권단은 무슨 이유로 수신인 이외 확인이 안 된다는 의미로 봤는지 밝혀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쟁점 ④] 나티시스 은행 대출계약서, 재판부에는 제출?

대출계약서 제출 논란에 관해서도 재판장은 "대출확인서 내용은 무보증 무담보 단순한 신용대출로 보이는데 지금 현재 파생금융상품 등 여러 의심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라면서 "의심 해소를 위해 대출계약서를 재판부에 제출할 생각이 없나"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법원에서만 보겠다는 전제로 제출 명령이 나오면 제출하도록 나티시스 은행을 설득 중"이라면서 "시기상 가처분 중엔 어려워 본안 판결 중에 제출하도록 추진하겠다"고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

이에 현대차그룹 쪽은 "이미 MOU가 해지돼 재판부에만 낸다고 미제출 사유가 치유되진 않는다"면서 "대출 계약서 수정을 의심할 수도 있어 지금에 와서 재판부에만 보여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맞섰다.

한편 하종선 현대그룹 사장은 이날 "'승자의 저주'를 가장 염려하는 건 우리"라면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을 컨소시엄에 넣은 것도 차입금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 사장은 "현재 넥스젠을 통해 7군데와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 중이며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가 들어오면 유상증자 통해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에 자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 사장은 또 이날 재판장 분위기가 현대그룹에 유리한 것 아니냐는 기자 질문엔 "변호사가 비공개 의무 조항 때문에 그동안 못한 말을 속시원하게 했다"며 잠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채권단이 빠르면 다음 주에 현대차에게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어 이날 재판부 분위기도 급박했다. 재판부는 일단 후속 심리를 오는 이틀 뒤인 24일 오후 2시 358호 법정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현대건설#현대그룹#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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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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