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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오전 10시 동작구의회 5층 본회의장에서 제2차 본회의가 열리기 전 긴장감이 돌고 있다.
▲ 폭풍전야 12월 21일 오전 10시 동작구의회 5층 본회의장에서 제2차 본회의가 열리기 전 긴장감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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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사당1동 노인복지관 5층에 목욕탕 시설을 추가하는 7500만 원짜리 '목욕탕 예산' 결의안 날치기 처리를 놓고 동작구의회가 시끄럽다. 심지어 국회에서 '형님 예산'이 시끄러웠다면, 동작구의회는 '목욕탕 예산' 때문에 제구실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이었다. 오전 10시 동작구의회 5층 본회의장에서는 약 3000억 원에 달하는 1년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한 제208회 서울특별시 동작구의회 제2차 본회의가 열렸다. 회의 시작과 이어진 5분 발언은 반성문 낭독 시간이었다.

5분 발언을 맡은 한 민주당 구의원은 "의회에서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가운데 정쟁과 파행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이뤄진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면서 "남은 일정 동안 여아가 원만하게 합의해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자"고 말했다.

반성문이 나올 만했다. 구의회와 같은 기초의회는 지방자치법 제127조 2항에 따라 회계연도 시작 열흘 전인 12월 22일까지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해야 하는데, 이번 동작구의회는 그러지 못했다. 반성문은 범법 행위에 대한 일종의 사죄였다.

그러나 얼마나 형식적인 사죄였는지 효과는 한 시간을 가지 못했다. 한 한나라당 구의원은 동작구 사당1동 노인복지관 5층에 목욕탕 시설을 추가하는 '목욕탕 예산' 결의안을 기습 상정했다. 이에 민주당 구의원들은 "전날 이미 상정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렇게 올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국회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생생한 '날치기'의 현장이었다.

'날치기'의 당당한 기세 또한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목욕탕 예산' 결의안은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찬성 8표·반대 8표·기권 1표로 부결됐다. '거사'에 실패한 한나라당 구의원들은 표결 결과를 확인하자, 굳은 표정으로 무리를 지어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기한 안에 처리하지 못해 이날 오후에 열릴 예정이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는 한나라당 구의원들의 집단 불참으로 취소됐다.

동작구의회는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민주당 9석, 한나라당 8석인 양당 구도로 구성돼 있다. 구청장은 다수당인 민주당 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의석이 한 석 모자란 한나라당이 제대로 협의가 되지 않은 예산을 통과시키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민주당 구의원들은 해당 건물이 이미 상당 부분 공사가 진행돼 설계 변경이 쉽지 않고, 목욕탕의 위치가 5층이라 누수로 건물 수명이 짧아지는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야간 시각 차이가 큰 사안을 2차 본회의에서 충분한 논의도 없이 뒤늦게 상정하는 것에 대해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도중에 민주당 동작구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지 않아 결국 정회됐다.
▲ 퇴장한 한나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도중에 민주당 동작구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지 않아 결국 정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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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과 '발목잡기'로 얼룩진 동작구의회

2차 본회의에 앞서 4일간 열린 예결특위에서 한나라당 구의원들은 안건 하나하나마다 질의하면서도 시간은 잘 지키지 않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 점심시간 전에 회의가 잠시 멈췄을 때에도 질의를 준비하는 민주당 구의원들과 공무원들을 기다리게 한 채 식사를 하러 가기도 했다. 심지어 한 한나라당 구의원은 의사 진행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면서 위원장·의회·의원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번에 한나라당 구의원들이 무리하게 '목욕탕 예산' 결의안을 기습 상정한 것을 두고 동작구 시민 단체와 복수의 정당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이라는 의혹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반드시 원안대로 관철해야 하는 예산이라면 '뒷북'을 칠 게 아니라 2차 본회의 이전에 서둘러서 반영을 하고 합의를 이끌어내, 의결하기로 한 수정안을 애초에 만들지도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4년째 동작구의회를 감시하고 있는 유호근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사무국장은 "6.2 지방선거 이후 동작구의회는 균형과 견제가 실종된 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싸움터로 전락했다. 구의원들은 당론에 휘둘리지 말고 구민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더욱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구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구의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처리 기한을 넘기게 한 범법의 주역 '목욕탕 예산'은 오늘도 동작구의회의 '혈액 순환'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구의회의 계획성 없는 예산 편성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볼모로 잡힌 구민이다.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가 시키듯 동작구 망신에 동작구의회가 앞장서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태그:#동작구, #동작구의회, #의원, #형님예산, #목욕탕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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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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