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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계부까지 꼼꼼하게 기록할 정도로 자상한 남편.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딸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버지였던 한 30대 젊은 가장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가장은 주말이던 지난 12일 새벽 4시경 경기도 안산의 철도차량기지에서 까맣게 그을린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갑작스런 소식에 병원 영안실로 달려온 가족들은 아들이자 동생이자 남편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믿기지 않는 듯 하염없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경찰서로,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사고경위를 파악하고 유족조사에 응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고 다음날인 13일 검사의 지시에 의거해 부검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물론, 유족들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당일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를 했던 새벽 1시부터 사망추정 시간인 새벽 4시까지 3시간 동안의 행적이 묘연해 부검을 해야 한다는 조사결과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부검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부검이 진행된 다음날인 14일 유족들은 화장을 하기로 결정하고 이른 아침 발인을 마치고 화장터인 수원의 연화장으로 향했습니다. 수원 연화장은 잘 아는 바와 같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 화장을 했던 곳으로 이 가장도 오전 11시경 화장 절차를 밟고 이승에서 가족들과의 마지막을 고했습니다. 특히, 아내는 "뜨거운 불에 타서 그렇게 되었는데 또 다시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볼 수 없다"며 오열해 주변 친지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네살배기 딸의 천진난만한 외침에 유족들 오열

 

남자의 화장절차가 진행되던 14일 수원 연화장을 찾았습니다(기자와는 사돈지간입니다). 3일 밤낮을 눈물 속에 보낸 유족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남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습니다.

 

눈물이 마를 대로 말라 버릴 만도 했지만 유족들의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이 계속해서 뺨 위로 흘러내렸습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일까. 네살배기 딸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사진을 연신 어루만지며 "아빠아빠~"를 부릅니다. 넋을 놓은 채 슬픔에 빠져 있던 가족들이 마음을 가다듬을 무렵, 어린 딸의 천진난만한 외침은 또 다시 가족들의 눈물샘에서 쉴새 없이 눈물을 만들어내고야 말았습니다.

 

남자는 1시간 반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고, 너무나도 가정적이었고 성실했던 남자가 안식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유골함을 부여잡은 유족들은 또다시 언제 그칠지 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흘립니다. 화장을 마친 남자의 유골함은 유족들과 함께 고향인 대구의 산사에 모셔졌고, 유족들은 생전의 남자의 모습이 눈에 선한 듯 한곳을 주시한 채 마르지 않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남자의 이승에서의 자취는 허무하게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유족들은 남자가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남자가 왜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특히나 남자가 아내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새벽 1시부터 사망추정시간인 새벽 4시까지 3시간 동안의 묘연했던 행적과 사라진 휴대폰, 그리고 지하철 관계자가 유족들에게 공개한 편집된 폐쇄회로 영상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해야 합니다.

 

고압전류 안내판만 설치, 정문은 활짝

 

언론에서도 단 한줄의 보도도 되지 않고 오직 SBS(12월 15일자 모닝와이드)에서 단독으로 취재한 내용과 유족들의 말을 토대로 남자가 사망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면 사고의 정황은 이렇습니다.

 

지난 일요일이었던 12일 새벽 1시경. 옛 직장동료들과 서울에서 송년회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 사망자 윤아무개(34)씨는 전철을 타게 됩니다. 집인 안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철을 갈아타야 했던 윤씨. 윤씨는 전철을 갈아 타고 집으로 향했지만 정거장을 지나치게 됩니다.

 

이 때 윤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정거장을 지나서 내렸고 출입구를 찾기 어렵다는 통화를 합니다. 당시 시간은 새벽 1시경. 이 통화가 부인과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이후 아내는 전철역 앞에서 1시간 동안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결국 집에 두고 온 아이 때문에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난 새벽 4시경 집으로 경찰이 찾아오면서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 사망소식을 듣게 됩니다.

 

당시 전철 관계자에 따르면 문이 잠겼다는 전화를 받고 (전철) 게이트로 가서 개찰구를 열어주었고 폐쇄회로 확인 결과 지하철을 빠져나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버스정류장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고 합니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내려간 윤씨는 방향감각을 잃고 문이 활짝 열려있던 차량기지 정문을 출구로 착각해 들어갔고, 관리인이 없는 텅 빈 관리실을 지나 전철이 한 곳에 모여 있던 차량기지 안으로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밤길이어서 2만5000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안내간판은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을 출구로 착각해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사고가 발생한 차량기지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와 현장을 확인한 유족들의 말에 따르면 2만5000볼트 고압전류가 흐르는 차량기지 정문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게 열려 있었고, 이곳을 통제하는 근무자도 없었습니다.

 

이에 차량기지 안으로 들어간 윤씨는 운행이 끝난 차량을 정비하는 차량기지 안에서 고압선에 의해 감전사를 당했습니다. 새벽업무를 위해 기지 안으로 들어왔던 직원의 신고로 출동한 119구조대가 두 대의 전동차 사이에서 윤씨를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신고를 했던 직원은 119가 출동하기 전까지 무엇을 했을까요? 이 또한 유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차량기지에는 주간에 3명, 야간에 1명만이 근무를 서고 있고, 차량기지 관계자들조차 경비가 없다는 점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원 감소로 기존에 있던 청원경찰이 없어 관리를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전철역은 역에서 관리하는 부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량사업소 측에 책임을 떠 넘기고 있습니다. 차량사업소 관계자는 오히려 경고판도 있고 외부인들에게 위험고지도 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사라진 3시간, 휴대폰, 편집된 폐쇄회로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사고가 발생한 차량기지 안에는 폐쇄회로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윤씨가 차량기지 안으로 들어갔던 새벽 1시부터 사망추정시간인 새벽 4시까지 3시간 동안의 행적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평소 아내의 전화라면 바로 받던 윤씨의 휴대폰이 사라진 사실, 그리고 전철역에서 유족들에게 공개한 편집된 폐쇄회로 화면은 의문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그 화면에는 윤씨가 지하철 역 개찰구를 나오려고 하는 장면과 지하철 직원이 도와주는 장면, 나가서 지하철역 근처 육교를 걸어가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회사 방침으로 인해 윤씨의 행방이 담긴 폐쇄회로 TV를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는 해당 지하철측이 유족들에게 원본이 아닌 편집된 화면을 공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의혹만 점점 깊어져 갑니다. 또, 새벽 1시 윤씨가 차량기지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아내와 통화했던 휴대폰이 현장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재 유족 측이 경찰과 로펌 등에 의뢰해 계속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전철역과 차량사업소측은 유족의 아픔을 헤아려 유족이 요구하는 궁금증을 모두 해소시켜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아있는 유족들을 위해 '도의적인 책임'이 아닌 '관리소홀'이라는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실규명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따른 충분한 보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다시는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보다 가슴 아프고 애통하고 억울한 심경에 있는 유족들은 항의보다는 제2의 동일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심지어 공사장에 웅덩이 하나라도 있으면 펜스라도 하나 치는데 2만5000볼트가 흐르는 위험시설인데…. 누가 또 가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우리는 불행을 당했지만 이 불행이 우리로 그친다는 그런 보장은 없잖아요…."


태그:#안산, #지하철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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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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