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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마 젖보다는 못하다는데
▲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아이 그래도 엄마 젖보다는 못하다는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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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까지 엄마젖을 떼지 못한 아이
▲ 맛있는 이유식 하지만 아직까지 엄마젖을 떼지 못한 아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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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늠름하게 앉기 시작한 아이. 아이는 조금씩 커가면서 이유식도 먹게 되었다. 아내는 6개월 즈음해서 모유수유와 함께 이유식을 병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유식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옛 어른들의 말씀대로 나 역시 배부른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던 것이다.

우선 이유식을 시작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재료를 고르는 일이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모유가 아닌 다른 음식물을 먹여야 하는 이유식. 아내는 아이에게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먹는 음식 재료 가격의 3배 이상 되는 유기농 식재료들을 구입했다. 비싼 걸 아는지 삼시 세끼 이유식을 꼬박꼬박 받아 먹으며 그만큼 건강한 똥기저귀를 배출해내는 아이.

그렇게 유기농 이유식을 만들던 아내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연초, 아이 이름으로 당첨됐던 주말농장에 이유식 식재료를 심어 직접 재배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시아버지의 소일거리를 위해 신청한 주말농장이었지만 밭이 시댁과 생각 외로 멀었던 까닭에 아버지도 고사했던 바, 5평 남짓한 땅을 이유식 식재료를 기르는 텃밭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었다.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경제적 부담도 줄이고, 백 퍼센트 믿을 순 없는 유기농에 대한 갈증도 해소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물론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짓겠는가에 대한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고향이 산천인 아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겠거니 했다.

유기농 이유식 재료 기르기 프로젝트... 생각보다 어렵네

씨뿌리기는 너무 어렵다
▲ 모종심기 씨뿌리기는 너무 어렵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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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내와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밭을 고른 뒤 거름을 뿌리고 모종을 사서 심기 시작했다. 이유식의 재료가 되는 양배추, 옥수수, 호박, 방울토마토 등등. 주말 농장 1년 대여료까지 포함해 총 5만 원 정도가 들었지만 우리 부부는 텃밭에서 그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텃밭에 대한 기대가 야무진 꿈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했다. 농부를 아버지로 둔 아내는 생각 외로 농사일에 무지했고, 오히려 잡초 제거는 군 생활 내내 DMZ 내에서 허구한 날 낫질을 하던 내가 훨씬 잘했다. 게으른 것도 문제였지만 농사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이 우리들의 엄연한 현실이었다.

현실이 이러하니 어디 농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물을 주고, 물길을 내고, 대를 세우고, 잡초를 뽑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고작 5평 남짓 되는 땅을 일구는 것을 '농사'라고 일컫는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농민들은 얼마나 고된 일을 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결국 우리의 야심찬 '이유식 재료 재배 프로젝트'는 한두 번의 수확으로 끝나고 말았다. 호박 세 덩어리에 노각이 되어버린 오이 네댓 개, 부추 한 움큼, 열무 한 단 정도 등이 수확의 전부였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농작물을 길러냈다는 사실만큼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얻은 교훈은 최근 붐이라는 귀농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

어설픈 농부의 모습
▲ 수확 어설픈 농부의 모습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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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시련은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행위 그 자체였다. 아이는 식탁의자에만 앉혀 놓으면 좀이 쑤시고 답답한지 계속 일어서려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먹다 말고 징징대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이러니 대중식당에서 그 많은 엄마들이 숟가락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제발 한 입 먹으라고 사정하는 것일 테지.

그러나 그런 상황은 우리집에선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몸을 비트는 아이를 끝까지 의자에 앉힌 채 숟가락으로 밥을 먹였다. 물론 아이가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졸리다고 계속 울어댈 때에는 예외였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아내는 어떻게는 아이에게 정량의 이유식을 먹이고야 말았다. 나도 가끔 아내를 도와준다며 숟가락을 가져다 댔지만 고개를 홱홱 돌리는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유식도 잘 받아 먹고 잘 놀았는데... 덜컥 인후염에 걸린 아이

가슴 아픈 부모 마음
▲ 아파서 자고 있는 아이 가슴 아픈 부모 마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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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도 먹으면서 이제 제법 사람 흉내를 내는 아이.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구나 싶었지만 역시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 어느 아기보다도 잘 먹고 잘 싸기에 우리 아이는 건강하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장염인가 싶더니만, 일요일 아침 텃밭에서 더위를 먹었는지 저녁쯤해서 열이 38도가 넘는 아이.

이미 늦은 저녁이었기에 우선 약국에서 해열제를 사 먹인 뒤, 날 밝으면 소아과에 가려고 했으나 약사는 38.8도면 높은 편이라며 지금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응급실? 그냥 감기려니 했건만 응급실이란 소리에 아내와 나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의사는 요로감염 혹은 인후염이 의심된다며 소변검사를 하자고 했다. 단순히 감기인 줄 알았건만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이 나오니 덜컥 겁부터 났다. 의사 말로는 요로감염이면 1주일 입원이라는데 제발 아무 일 아니기를.

여아 젖먹이의 소변검사는 길고 지루했을 뿐만 아니라 어렵기까지 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에게 소변 봉투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소변 봉투 붙이기를 세 번이나 시도했다. 시도 세 번째에 아내와 내가 아이를 못 움직이게 잡고 소변 볼 때까지 기다려서 겨우 소변을 받아내었다.

소변검사의 결과는 편도선이 부은 급성인후염. 그래도 입원할 병이 아니라니 그게 어디인가.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지덕지하며 병원을 나섰다.

콜록콜록
▲ 기침하는 아이 콜록콜록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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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지만 아이의 열은 계속 그대로였다. 병원에서 받은 해열제도 먹여 봤으나 열은 여전히 37~38도를 맴돌았고, 아이는 열 때문인지 쉬이 잠을 못 자고 밤새 엄마 품에서 보챘다. 아이와 함께 늘어지는 아내, 두 모녀를 마냥 안타깝게 바라보는 나. 다행히 아이의 열은 병원에서 열이 계속 지속될 때 먹이라던 약으로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났을까? 고비를 넘기는가 싶더니 아이가 갑자기 줄줄 콧물을 흘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급성인후염은 거의 나았는데 약해진 체력에 결국 감기에 걸린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콜록콜록 정신없이 기침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기침 한 번에도 몸을 들썩이는데 저 어린 것이 얼마나 아플까?

그제야 자식이 아픈 걸 보느니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백배 낫다는 부모님들의 말씀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았다. 아이 감기만 해도 이렇게 속상한데, 내가 급성 A형 간염에 걸리고, 머리가 깨지고,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 우리 부모 심정은 어땠을까.

아픈 아이를 보는 것 보다 더 큰 난관은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그보다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병을 낫게 하려면 어떻게든 먹여야 하는 약이건만, 아이는 약 먹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잘 먹는 우유나 주스에 약을 섞어도 귀신 같이 알고 고개를 홱 돌리는 아이.

아내는 아이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면 안 된다며 처음에는 아이가 이해하든 말든 조곤조곤 설명하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강제로 약을 먹였다. 나는 아이의 버둥대는 두 팔다리를 잡았고 아내는 주사기로 약을 주입했다. 아이는 집이 떠나갈 듯이 울었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가슴 아프지만,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얼굴은 핼쑥해졌지만, 아이는 한 뼘 자라 있었다

떼끈한 눈
▲ 아프고 난 뒤 핼쑥해진 아이 떼끈한 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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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와 전쟁을 치르길 1주일. 다행히 아이의 기침은 잦아들었고 열은 내려갔다. 그리고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계속 칭얼대며 엄마 젖을 찾았다. 몰라보게 핼쑥해진 것 빼고는 다시 아프기 전으로 돌아온 듯한 아이.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이는 아프기 전과 분명 달라져 있었다. 어른들 말씀대로 아팠던 만큼 '약아진'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아픈 만큼 성숙해진 아이. 기껏해야 빨빨빨 기던 아이는 아프고 난 뒤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냥 기는 것이 아니라 의자나 상자 등을 밀면서 기는 것이다. 그것이 더 빠르고 더 편하다는 것을 어찌 알았는고. 게다가 아이는 상자를 딛고 좀 더 높은 곳의 물건도 잡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보다 아이큐가 배는 늘은 듯 했다.

뒤에서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대견한 마음과 함께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기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이 가장 빠른 시기라더니, 아이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야. 아픈 만큼 자란다고는 하지만 이 아빠는 네가 더 이상 안 아프길 빌고 또 빌 뿐이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 약아진 아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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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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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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