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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대형할인마트가  골목상권까지 진출한 SSM(기업형 수퍼마켓)에 이어 여전히 배가 고픈지 매장에서 피자와 치킨까지 팔겠다며 원가의 가격파괴로 단번에 사람들을 매장으로 불러들여 줄을 서게 만들었다. 돈이 된다면 지옥이라도 쫒아가는 자본의 속성상 노점의 먹거리마저 뺏으려 들지도 모른다. 재벌답게 통 큰 장사를 하면 안되겠냐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생계형 업종마저 밀어붙이는것을 보면 그들 내부사정도 그리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완벽한 가격, 랜덤하우스
 완벽한 가격, 랜덤하우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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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한국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만큼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 민족은 없다고 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직적인 것만 놓고 본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이 북쪽의 동포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이고, 남은 음식을 처치하는 데에도 많은 세금이 낭비되어야 할 만큼 물질 만능과 풍요의 걸신이 들린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또렷해지는 상황에서 대형할인마트는 최저가격을 넘어 골목상권에 목을 매고 있는 영세자영업자의 목을 조르고 있다.

과학저널리즘학 교수인 엘런 러펠 셸은 <완벽한 가격(원제 Cheap:The High Cost of Discount Culture)>을 통해서 대형할인마트의 원조 미국에서는 소매유통산업의 저가정책이 양극화를 가속시켰으며 결국에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킨 유통 자본의 저가정책에 숨겨진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쳤다.

저자는 '싼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태동하였는지 우리의 생각과 생활방식 그리고 사회 구조와 비지니스법칙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역사, 사회학, 마케팅, 심리학, 경제학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를 통해서 낱낱이 증명하고 있다.

할인마트 가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숫자 '9'다. 9가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할 때는 가장 왼쪽에 있는 숫자를 하나 떨어뜨릴 때다. 즉, 1만 원을 9900원(또는 9990원)으로 표시했을 때 본질적으로는 1만 원 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잠재의식적으로 100원 감소가 '더 싸다' 로 느끼고 매번 그 수법에 속는다. 1+1 과 같은 끼워팔기도 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이런 상술을 의심하면서도 당장에 이익을 뿌리치지 못하고 충동구매를 한다. 어쩌면 그것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을 파놓은 유통자본의 상술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발길을 끊으면 된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시기는 대형마트에 완전히 발길을 끊어버린 몇 달전이었다. 그동안 나의 뇌를 충동질 하게 만든 최저가격의 마법이 궁금했는데, 요술램프 같은 마법은 없었고 알 듯 모를 듯한 포장의 상술과 끝없는 착취를 통해서만이 그 마법의 성은 유지된다는 것이고, 자국의 경제를 파탄시키는것도 모자라 제 3세계의 민족에게 까지 파멸의 길을 뚫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최저가격을 향한 유통자본은 국내의 최저임금 일자리마저 날려버리고 해외에서 물품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대부분이 거주하는 지구의 남쪽 지역에서 양식된 새우의 절반가량이 미국의 월마트로 수출된다.

대표적으로 태국산 양식새우는 우리나라의 할인매장에도 얼마든지 널려있다. 부채에 시달리던 태국 정부는 태국 전역의 논과 해안지역을 새우양식지로 바꿔서 초기에는 쌀과 다른 작물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새우 수요를 더욱 끌어 올리면서 양식지는 황폐화 되고 턱없는 부채와 환경파괴, 인권유린 속에 수백만 명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쌀 수출국 아이티도 1995년 IMF와 미국의 압력으로 미국쌀을 수입하면서 농업이 몰락하였고, 그 자리에는 쌀과 수입품을 구매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선진국의 고객을 위한 저렴한 커피를 생산하거나 싼가격으로 대량생산되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으며 일자리마저 얻지 못한 농민들은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불법이민자가 되어야 했다. 최상급 농지를 갖춘 에티오피아에서도 쌀 대신 커피를 생산하고 수단은 목화를 재배하여 수출하고 그들은 굶주린다.

또한, 미국의 할인점을 떠받치고 있는것은 중국산 저가제품들이다. 대형할인마트들이 공급업체들에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하면 제조업체들은 더 저렴한 노동인력을 찾아서 생산기지를 옮긴다. 중국에는 세계최대의 대형할인점들의 관리본부가 있다. 오늘날 이들은 저임금 경쟁으로 미국 노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어렵게 얻어낸 임금과 복지, 인권을 옛날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국내의 대형할인마트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자유롭게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며 활개를 치고 있다. 정치권의 개입이 절실한 때이지만, 지금까지도 선거철에 목소리만 높였지 실제로 그들을 견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상생의 경쟁과 공정한 사회는 헛구호로는 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나설 때만이 그 진정성을 보여준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가 나서서 정의의 몽둥이를 들어야 할 것이다.


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10)


태그:#대형할인마트, #최저가격, #치킨, #피자,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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