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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의 패션쇼 서막을 알리는 난타공연
 선상에서의 패션쇼 서막을 알리는 난타공연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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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타북 공연으로 쇼가 시작된다. 둔탁하지만 흥겨운 북소리가 패션쇼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면 정장을 차려입은 훤칠한 남자 모델들이 대거 등장한다. 뒤이어 쭉쭉 뻗은 미녀들이 화려한 머플러를 흩날리며 나타난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 패션쇼와 뭐가 다르냐 싶겠지만 한 명 한 명의 넥타이와 머플러마다 독도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 의미가 깊다.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을 굳이 이런 쇼까지 해서 각인을 시켜줘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고 원통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외국인들은 그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지 않아서 아쉽다. 그저 맘에 드는 여자 모델들이 나오면 휘파람이나 불어대니 말이다.

선상패션쇼 잘금 4인방처럼
 선상패션쇼 잘금 4인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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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땅 독도를 어필하는데 한복이 빠질 수 있나? 어디선가 본 듯한 자태의 4인방. 얼마전 종영한 KBS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뜩이나 외로운 계절 잠 못 드는 여심을 흔들었던 잘금 4인방을 패러디 한 듯하다. 이제는 한복을 차려입은 청년 넷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이는 걸 보면 나 역시 그 드라마에 푹 빠져있었던 게 맞다. 그들이 수묵화가 그려진 접이식 부채를 접었다 펼쳤다하며 한 편의 퍼포먼스를 뽐낸 후 사라지고 나면 이제 기다리던 독도 패션쇼가 시작된다.

블라디보스토크행 배 위에서 펼쳐지는 '독도 패션쇼'

독도와 대한민국을 알리는 한복프린팅
 독도와 대한민국을 알리는 한복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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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한복을 차려입은 모델들이 한 명 한 명 무대로 등장한다. 사뿐 사뿐 깃털처럼 가벼운 걸음걸이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녀들의 치맛자락에 그려진 한국화가 정겹다. 머플러에 새겨진 '朝鮮海 獨島(조선해 독도)'라는 문구는 가슴을 파고든다.

선상 패션쇼에서의 변검공연
 선상 패션쇼에서의 변검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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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을 남긴 무대들이 끝나고 나면 조금은 익사이팅한 '변검'공연이 시작된다. 관객과 하나되는 쇼맨십과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가면이 재미있고 신기해 눈을 뗄 수가 없다. 한참을 빠져 있다가 문득 독도사랑 패션쇼라는 주제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변검'은 중국 전통 마술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의문은 공연이 끝난 후에 말끔히 사라졌다. 가면을 벗은 그의 볼 양쪽엔 각각 태극마크와 하트로 둘러진 독도라는 애교 섞인 글씨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선상패션쇼 피날레 - 관객들과의 인사
 선상패션쇼 피날레 - 관객들과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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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 출연자들이 나와서 관객과 인사를 나누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아직은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델과 학생들이라 프로의 향기는 맡을 수 없었지만 조금은 어리숙하고 서툴러서 더욱 신선한 공연이었다. 쇼가 끝났을 때 이미 배는 동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면세점, PC방, 나이트클럽... 없는 게 없는 유람선

선상에서의 패션쇼로 유람선과의 인상 깊은 첫인사를 마치고 나니 배의 내부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많이 남아 있기에 내부 탐험을 시작해본다. 우선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영화 '타이타닉'에서 주인공이 계단을 내려오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배는 1층부터 3층까지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1층은 남, 녀 샤워실을 제외하면 패밀리클래스와 스탠다드룸 형태의 객실로 이뤄져 있다. 샤워실은 화장실처럼 칸막이 형태로 나눠져 있으며 각 칸마다 문을 잠글 수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물은 시원하게 콸콸 쏟아지고 온수도 잘 나온다. 비누만 비치되어 있으니 크루즈를 탑승할 때 기타 세면도구는 챙겨가는 것이 좋다. 드라이기는 한 대가 있지만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이다.

3층 역시 남, 녀 사우나를 제외하면 전체가 객실이다. 주로 VIP등급의 객실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스탠다드룸B형과 패밀리클래스도 있다. 사우나는 히노끼탕이 갖춰져 있고 바다를 바라보며 피로를 풀 수 있어 더욱 운치있다. 홈페이지에는 자정까지 영업한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24시간 열려 있다. 다만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은 청소전이라 탕의 수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dbs 크루즈훼리 안의 면세점
 dbs 크루즈훼리 안의 면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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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S 크루즈훼리 이스턴드림호의 주요 공간은 2층에 모두 모여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면세점이 보인다. 공항에만 있는 줄 알았던 면세점이 크루즈 안에 있다니 좀 놀라웠다. 화장품, 향수, 담배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서 나 역시 생일인 친한 언니를 위해 선물을 하나 장만했다. 2000원을 더 지불하면 예쁘게 포장도 해준다. 면세점 옆으로 안내데스크를 사이에 두고 편의점도 있다. 간단한 식료품이나 생활용품들을 구입할 수 있으며 면세점과 함께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운영된다.

크루즈 내의 zesta bar
 크루즈 내의 zesta bar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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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운데로는 zesta bar가 자리잡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칵테일을 한잔 기울이는 것도 좋고, 식사시간을 놓쳤다면 이 곳에서 컵라면이나 도시락, 샌드위치 등의 요기거리를 찾아도 좋다. 바는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운영되며 오전 7시~8시 아침식사 시간에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바 옆으로는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으니 탑승객을 위한 작은 배려가 고맙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크루즈 내의 PC Zone
 크루즈 내의 PC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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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배 안에 PC방이? 바다 위에서도 인터넷이 된다니 문명이 이렇게도 발전했구나!! 2층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PC방은 한 시간에 4000원. 거금의 돈을 들여야 한다. 여행까지 와서 무슨 인터넷이냐 하겠지만 어마어마한 요금 앞에서도 포기하지 못했다. 인터넷의 유혹. 성질 급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리지만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이 PC zone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빠져들게 한 건지…….

PC방만 신기한 것이 아니다. 정말 없는 게 없다. 심지어 나이트클럽까지 있다. 여긴 배 안이 아니라 아주 작은 마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층에서 선수쪽으로 나가면 바로 보인다. 이 곳에서는 승무원들의 장기자랑과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에 익숙해지지 못해 그 공연을 놓치고 만 것이 이제와서 후회가 된다. 영업시간은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이다.

누군가는 붉은 노을과 함께 보드카 한잔을 기울이고

망망대해의 저녁노을
 망망대해의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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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을 통해 선상으로 나가니 어느덧 망망대해 위의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 오후 5시경, 바다의 해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날씨가 꽤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보드카를 기울였나보다. 벤치 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문득, 나도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독한 보드카 한잔에 입술을 적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배를 한바퀴 휘 둘러보고 일몰까지 보고 3층 로비에 앉아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드디어 오고 말았다. 배멀미!!! 선체가 커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다 한가운데로 나오니 거대한 몸체도 속수무책인가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객실로 향한다. 침대에 바짝 엎드리니 그나마 괜찮아진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오후 7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의 단잠을 깨운다.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나 2층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배의 진동이 아직 멈추지 않아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도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 눈물겹다.

크루즈내의 뷔페식, 모든 식사가 뷔페식이다.
 크루즈내의 뷔페식, 모든 식사가 뷔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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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여행의 식사는 모두 뷔페식이다. 저녁메뉴로 육개장과 밥, 샐러드, 김치, 깻잎, 연어훈제, 고기볶음, 동그랑땡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 메뉴는 3박 4일간의 여행 내내 거의 변함이 없었고 국을 비롯해 몇 가지만 살짝 변화가 있었다. 한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메뉴여서 배멀미로 속이 울렁거리는 와중에도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지만 일행 중 몇몇은 힘들어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나만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의 여정을 기록하며 하루를 돌아보기도 하고, 배에서의 시간에 감성을 더하기 위해 가져온 책을 꺼내 읽어도 본다.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행 크루즈에서의 첫날밤이 깊어갔고 그동안 시달렸던 불면증을 떨쳐버리고 너무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19523121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블라디보스톡, #크루즈여행, #DBS크루즈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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