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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마을에서 최근까지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5~6명이나 된다. 기름사고 이후 찾아온 암 공포에 주민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기름 직격탄을 맞은 충남 태안군 가의도 주동복(80) 이장의 말이다. 2007년 기름유출사고 이후로 충남 태안 지역은 암 공포에 떨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일대에 암 환자가 크게 늘기도 했다.

 

당시 태안군보건의료원(원장 허종일)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일대 총 330여 가구 630여 명의 거주민 가운데 15명의 주민이 암 환자였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유해물질 노출 이후 알레르기와 천식 등은 금방 증상이 나타나지만 암의 경우 유전자 변형으로 종양이 생기고 악성으로 발전하기까지는 통상 최소 5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며 기름유출사고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기름유출과 암 발병... 정부는 부정하고 주민들은 불안감

 

그러나 최근 태안보건환경센터(센터장 허종일)가 기름피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구·조사한 '중장기 주민건강영향조사 1차년도 결과'에 따르면 방제작업을 오래할수록 유전 물질 손상지표가 높게 나타났다. 즉, 기름유출사고로 인해 인체 세포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연구진은 기름유출사고 이후 환경적인 요인으로 피해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증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허종일 센터장은 "기름유출사고가 암 환자 증가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암의 진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환경센터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5대 암 검진에 필요한 예산 14억 원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센터측은 보건복지부에 한 차례 예산 책정을 요구했지만 기획예산처의 반대로 내년도 정부 예산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후 이 같은 소식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원회가 지난 10월 직권상정으로 보건복지부 예산(안)에 포함 시키면서 예산 확보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 8일 여당이 내년도 정부예산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끝내 제외됐다.

 

주동복 이장은 "식구(아내)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귀향을 결심했고, 청정지역에서 생활을 한 덕분인지 식구도 건강을 되찾았다"며 "그러나 기름유출사고 이후 섬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름유출 이후, 태안지역 주민 건강 악화

 

암뿐만 아니다. 대다수 주민들의 건강 상태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기 주민건강영향 조사에 의하면 기름 피해지역 성인 1만 56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원내검진과 출장검진 등을 실시한 결과, 사고 이후 1년 이상이 지난 조사시점까지도 신경계 기능저하, 알레르기 증상, 폐기능 저하 등의 건강상 악화현상이 확인됐다.

 

특히 방제작업기간이 길수록 알레르기 관련 질환 호소율이 1.2~4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다양환 화학물질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다중화학물질과민증도 2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대다수의 주민들은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진 못한 채 장시간 기름에 노출돼 방제작업을 실시했다. 또 하루 종일 추운 날씨 속에 찬바람을 맞아 감기, 구토 어지럼증 등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 의료진의 진찰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고 직후부터 이듬해 8월까지 실시한 진찰 결과에 따르면 총 7만 5841명의 진찰자 가운데 4만 7527명이 두통과 호흡곤란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3793명이 피부질환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의료지원에 참여한 관계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은 만성질환으로 사고 이전부터 병원에 자주 다녔지만 방제작업 참여로 치료를 못 받거나 예전보다 증상이 심각해지는 등 건강상태가 악화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홍동예(85) 할머니는 "기름사고 나고 방제작업에 참여할 때만 해도 걷기가 불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지팡이 없이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며 "2년 전부터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특이하게도 당시 주민들의 영양부족 현상도 발견됐다. 생태지평연구소가 작성한 '기름피해지역 보건분야 백서'에 따르면 방제작업 기간 동안 주민들이 구토와 메스꺼움 증상을 보이는 한편, 기름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의한 식욕상실과 경제력, 의욕상실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 영양상태가 나빠졌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하루 영양소 섭취수준 조사결과 에너지, 칼슘, 비타민 A·C, 티아민 등이 평균 필요량보다 적게 나타났다.

 

황경례(71) 할머니는 "매일 하루 8시간 이상 방제작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도 피곤하고 속도 메스꺼우며 머리도 아팠다"며 "식욕이 돋지 않아 식사를 거를 때가 많아 몸이 쇠약해져 감기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태그:#태안원유유출사고, #기름유출사고, #태안, #암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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