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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단' 주최로 열린 '한평 반의 휴게 권리' 토론회에서 김광모 진보신당 기초의원이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방안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단' 주최로 열린 '한평 반의 휴게 권리' 토론회에서 김광모 진보신당 기초의원이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방안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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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의 초고층 빌딩이 화마에 휩싸이고 한 달이 지난 10월 말, 경찰은 건물의 청소 노동자들 3명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화재 원인이 4층 미화원 휴게실에 있는 문어발 콘센트의 스파크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콘센트는 관리소장이 만들어 줬고 콘센트를 꼽는 일도 관리소장이 했다. 또한 청소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옷 갈아입는 일 외에는 휴게실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청소 노동자들은 사법 처리 대상으로 이름이 올려졌다.

문제의 대형 화재는 각종 배관이 지나가기 때문에 비워둬야 하는 피트(PIT) 층에 휴게실이 들어서서 발생한 일이었다. 스파크가 튀는 등의 생활위험요소가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공간에 노동자들이 숨을 돌릴 자그마한 휴게공간이 마련한 것이 화재의 근본원인이었던 것. 약자이기에 너무나 쉽게 피의자로 몰리는, 쉴 공간조차 여의치 않은 청소 노동자들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이에 김진애 민주당 의원·조승수 진보신당 대표·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과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은 9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해운대 화재사건을 통해 본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청소 노동자의 실질적인 근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정부·국회·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자는 취지다.

"내일 당장 나오지 말라고 해도 아무 말 못하는 처지"

가장 먼저 이야기된 건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어젯밤에도 아수라장이 된 국회를 어느 청소노동자는 밤늦게 청소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며 "이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고 얘기되는 40만 명 넘는 청소 노동자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준) 인천지역추진팀장은 "청소노동자 중 50대 이상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절반 이상의 노동자는 내일 당장 나오지 말라고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무 계약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조 팀장이 전한 청소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열악했다. 부러진 주사 바늘에 찔리거나 제대로 된 마스크·장갑이 제공되지 않아 오염물질에 노출된다. 쉴 공간은 꿈도 꾸지 못하고,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종종거리며 일해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

조 팀장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는 재해예방을 위한 기준을 지키며, 적절한 작업 환경을 조성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예방하는 게 사업주의 의무임이 명시되어 있다"며 "그럼에도 이 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편히 쉴 곳, 생활임금, 진짜 사장인 건물주·대학 총장 등이 직접 고용하는 것이 청소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복기 공공노조 서경지부 이화여대분회장은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은 대부분 계단 밑이다. 지하라는 얘기인데 왜 그래야만 하나"라며 "건물을 지을 때부터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물품보관실 같은 창고 뿐이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물품보관실 같은 창고 뿐이다.
ⓒ 공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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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법 구체성 갖추고 법 강제 위해 감시해야"

청소 노동자들의 절절한 현실 전달에 이어 전문적인 의견도 제시 됐다.

김상길 새건축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산안법에는 휴게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이 이미 있다"며 "그러나 이 법에 대한 인식이 사업주 등에게 너무 없기에 이 법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감시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최경희 이화여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작업환경 개선 문제를 짚었다. 정 교수는 "직업성 질환은 자신이 일하는 환경의 문제인데, 환경을 바꾸는 것은 노동자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산업안전보건의 책임이 사업주에 있다고 산안법에 명시해 용역이 아닌 실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쪽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참석한 김태곤 국토해양부 건축담당 사무관은 "휴게시설과 관련해서 집행력을 높이려면 법안의 구체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법안에 대한 수정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이어 김 사무관은 "청소 또는 경비 등의 업무는 여러 용역을 통해서 참여하는데 용역업체와 노동자의 계약 조건에 근로자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위생, 휴게실 등의 조건을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는 실질적으로 법안을 수정·제안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도 자리했다. 조승수 의원은 "휴게공간의 문제는 청소 노동자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건축법상 문제로 접근이 가능할지, 더 많은 고민을 하겠다"며 "한 평 반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를 위해서 국회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싶은 희망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김진애 의원도 "국회마저도 청소 노동자 여러분들이 쓰시는 공간의 질은 개선할 바가 많다"며 "사회 전체가 꼭 필요한 부분에 공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만드는데 돈을 쓰게끔 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태그:#청소노동자, #해운대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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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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