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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정문.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컨테이너 박스. 일명 '몽구산성'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정문.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컨테이너 박스. 일명 '몽구산성'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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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용안정을 포기한 비정규직에게 그 보상으로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데, 우리나라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있다."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며 17대 국회의원 출신의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사태의 해결방안에 대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시장의 변동성,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 변화에 사용자들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지금 당장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는 것은 한국경제가 감당할 수도 없고, 이뤄진다고 해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 변화를 대비해 대형 생산 공장의 노동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대신 고용 불안정을 감수하는 비정규직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비정규직에 대한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이 장기간 파업 농성 등 사측과 충돌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절충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비정규직 문제가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내놓은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보다 낮아야 한다는 인식을 전환하고, 그것이 안착 되면 법적으로 보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IMF 당시 현대차 구조조정 이끈 인물... "비정규직문제 해결위해 나설 것"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 현 2.1연구소 이사장.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 현 2.1연구소 이사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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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1,2 심에서 기각됐던 현대자동차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면서 촉발됐다.

대법원은 지난 7월,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현대자동차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는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달 15일부터 울산 1공장을 25일 동안 점거했다가 9일 농성을 풀었다.

사측과 교섭을 재개하는 조건으로 농성을 해제한 비정규직 노조지만 아직까지 불씨는 남아 있다. 사측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을 최종심으로 보지 않고 고등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린다는 입장이어서 이후 협상에서도 양측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 이사장은 지난 1998년 사장에 임명돼 현대자동차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비정규직 제도를 도입했고, 기아자동차 인수 합병을 통해 미국진출의 시금석을 닦은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이사장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와 '한미FTA 자동차 분야 재협상'이라는 최근 두 가지 '핫 이슈'와 매우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노사관계,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일자리 정책이 2011년 2.1연구소의 주요 연구과제"라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1월 문을 연 2.1연구소는 '서울시 출산율2.1'을 사회전반의 변화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가 교육분야를 연구하며 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이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IMF 사태를 맞은 1998년 당시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의 시작지점에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덧붙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은 어떻게 탄생했나?
"우선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비정규직 지회의 파업은 현대자동차 경영진이 법의 결정에 따르지 않아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정규직제도가 나쁘게 사용됐고 그에 피해를 받는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단결, 연대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1997년 IMF 도입 당시 노동시장 유연화가 걸려 있었다. 이걸 안 하면 죽는 상황으로 인식했다. '옳다, 그르다', '유리하다, 불리하다' 따지지 못하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 그때까지 회사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정리해고를 했다. 당시 공장별로 해고를 했는데 늦게 들어온 사람을 먼저 자르는 방식으로 했다. 또 공장별로 인원을 '76:24' 편재로 만드는 것을 노조와 협상했다. '76'은 정규직, '24'는 비정규직이다. 생산 물량이 24%가 줄어도 각 공장별로 완충지대가 생긴 것이다. 이때는 정규직도 비정규직이 24%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고 비정규직도 당시 워낙 일자리가 없으니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그 후로 끊임없이 일이 늘어났다. 정리해고됐던 사람들도 다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비정규직도 정규직화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문제의 골이 깊어졌다. IMF를 극복하고 현대자동차가 일이 계속 늘어날 당시, 사용자 측에서는 정규직보다 낮은 급여를 주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비정규직 필요성은 인정, 대신 높은 임금으로 보상해야"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울산 1공장에서 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울산 1공장에서 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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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칼럼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보다는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규직화 요구의 목적이 고용안정보다는 임금 문제라고 보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정규직화 요구의 목적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모두에 대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조건 정규직화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도하게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은 문제지만 경기변동에 따른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일정한 수의 비정규직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보다 높이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을 다 정규직화 하면, 경기변동이 생겼을 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물론 자신이 원해서 비정규직을 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고용 불안정을 감수하고 비정규직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로드맵이 있는가?
"이 지점은 비정규직은 나쁘고 정규직은 좋다는 개념적인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증적이어야 한다.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용안정을 포기한 비정규직에게 그 보상으로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데 우리나라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자를 수 있고 게다가 임금까지 적게 줘도 되니 비정규직 고용을 포기할 수 없고,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는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정 인식전환이 이뤄진다면 제도화해서 비정규직에 대한 높은 급여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 그럼 주장한 대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이 정착되면 그로 인해 발생했던 갈등 요소가 모두 해결된다고 전망하나?
"사람이라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새로운 욕구가 생기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아주 극단적인 파국을 맞을 정도의 위협은 해소될 것을 생각한다. 혁명이 일어나야 할 수 있는 일을 혁신을 통해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의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절충주의에 가까운 주장일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어디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변동성,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 변화에 사용자들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혁명은 아니지만 혁신을 통해 혁명에 다가가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사측은 대법원 판결 뒤집힐 수 있다고 생각할 것"

20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황아무개씨가 분신했다.
 20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황아무개씨가 분신했다.
ⓒ 레프트2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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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근무한 자를 정식고용하게 된 개정된 비정규직 법을 피하기 위해 하청업체들은 불법파견을 시행했고, 대법원은 불법파견이어도 정식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는 정규직화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사측은 대법원의 판결이 너무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파기 환송된 고등법원에서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실제로 기대하고 있다고 본다. 또 이번 판결이 노조 전체에 대한 판결이 아니었고 개인이 낸 소송이었으니까 모든 경우의 수에 적용시키지 않으려는 점도 있다. 모든 경우의 수에 소급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 결국 나중에 모두 정규직화를 해주더라도, 각기 개별적인 소송을 통해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정규직화가 일부 이뤄지더라도 상당히 더디고 약하게 진행될 것이다."

- 현대차 사태에는 비정규직 지회와 사측이라는 관계 이외에 정규직노조와 노노관계도 문제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초기 '76:24'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을 정하는 부분에 있어 정규직 노조도 합의한 책임이 있다.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하면 자신들의 고용안정성에 문제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소극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닥쳤을지 모르는 고용 불안정을 감당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역할이지 않을까?"

- 야4당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당들은 현장에서 사측과 노조가 열린 광장으로 나와 협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위해 노력하고 법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해 입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와 사측 어느 한 쪽 편에 서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태그:#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이계안, #현대자동차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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