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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사무실에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 발로 무차별 폭행한 뒤 '맷값' 2000만원을 던져 준 재벌 2세 최철원(41)씨가 끝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은 8일 오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들어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6일 최씨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법원 구속영장 발부... "맷값 폭행, 국가 법질서 뒤흔든 행위"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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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최씨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썼다.
"재벌 2세로서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지닌 사회지도층 인사인 최씨가 마땅히 요구되는 높은 윤리의식과 준법의식을 망각했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마치 초법적, 특권적 지위로 착각했다", "유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맷값을 지불한 행위는 국가 법질서를 뒤흔들고 국민들에게 큰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줬다"는 게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사유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힘 없는 서민을 천민과 노예처럼 다뤘던 젊은 재벌 2세의 무법질주는 종지부를 찍게 됐다. 남은 것은 '법의 응징'이다. 사법부가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최씨는 자신의 '아랫 것들'을 향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른 것을 차가운 감방 안에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최씨는 평소에도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피해자도, 흉기도 다양하다. 인천의 물류창고 직원들은 눈 오는 날 삽자루로 맞았다고 했다. 서울 사무실의 여직원은 최씨가 끌고 온 사냥개 앞에서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회사의 중견 간부는 골프채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았고, 최씨 아래층의 젊은 부부는 한밤중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온 건장한 남성들 앞에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최씨가 모든 일을 오로지 '폭력'으로 해결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벌 2세의 지위와 돈도 한몫 했을테다. 하지만 그 뿌리는 '해병대 정신'이 아니었던가 싶다.

'반공'과 '정리정돈'은 가훈, '해병대 정신'은 사훈

최씨는 스스로가 밝히듯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 690기. 현역 시절의 별명은 '탱크맨'. 대부분 재벌 2세들이 병역과 거리가 먼 현실에 비춰보면 놀라운 일이다. '자원 입대'가 주를 이루는 해병대의 특성을 보면 더욱 그렇다.

최씨는 자신이 해병대 출신이라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해병대 정신'을 강조했다고 한다. 최씨 집의 가훈은 '반공'과 '정리정돈'이라고 알려져 있다. 해병대 출신과 잘 어울리는 가훈이 아닐 수 없다.

회사에서는 해병대의 '상승(常勝) 정신'을 요구했다. 최씨는 3년 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훈련병까지 일치단결하는 것이 해병대이고, 이는 마이트앤메인(M&M)의 기업 정신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진짜 프로페셔널리즘을 해병 정신에서 구한다", "현역보다 더 강한 해병대 정신으로 뭉친 회사"가 최씨가 추구하는 기업상(像)이었다.

한때 그의 충정로 사무실은 온통 '국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했다. 사무실 책장 곳곳에 탱크·미사일·수중파괴반(UDT) 모형이 얹혀 있고, 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태평양 이오지마 섬에 성조기를 꽂는 '이오지마 상륙작전' 그림도 걸려 있었다고 한다. 달력에는 '조국이 부르면 우리는 간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최씨가 차량으로 이동할 때면, 마치 장갑차의 행렬처럼 5~6대의 차가 일렬로 늘어서서 도로를 압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차선을 바꿀 때도 무전으로 통화하면서 한꺼번에 이동하는 방법을 즐겼다.

최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 M&M이 국내 기업 최초로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와 '1사 1부대' 자매결연을 맺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임직원의 팀워크도 매년 해병대 캠프에서 다졌다. 오죽했으면 회사 이름도 '전력을 다한다'(with might and main)는 말에서 따왔을까.

비극의 시작은 '해병대 정신'이었나

부당해고에 항의하다 재벌 2세 최철원 전 M&M 대표에게 '야구방망이 폭행'을 당한 탱크로리 기사 유홍준씨가 폭행 후유증으로 인해 말을 할 때 입이 불편한 가운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당해고에 항의하다 재벌 2세 최철원 전 M&M 대표에게 '야구방망이 폭행'을 당한 탱크로리 기사 유홍준씨가 폭행 후유증으로 인해 말을 할 때 입이 불편한 가운데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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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최씨가 눈밭 위에서 지각한 직원들을 엎드려 놓고 삽자루로 때린 장면도 대충 이해가 된다. '해병대 정신'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얼차려'였던 셈이다. 생각이 다른 부하직원이나 "젊은 놈이 일하지 않고 돈이나 뜯으려 한다"고 지목한 폭행 피해자 유씨를 야구방망이로 혼내 준 것(?)도 최씨에겐 '해병대 정신'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 해병대원 최씨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다. 군인 정신은 어디까지나 군인에게 필요할 뿐, 민간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시에도 군인은 민간인에게 손 대지 않는 법이다. 휴가 나가는 일반 사병들도 "민간인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거의 매번 듣는다.

현역 군인도 아닌 최씨가 단지 '해병대 정신'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평시에 민간인을 사사로이 폭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씨는 이런 기본을 철저히 잊어버렸거나 외면해 버렸다.

고된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아마 최씨도 선임병들에게 호된 얼차려를 여러 차례 받았을 것이다. 선임병이 된 뒤에는 후임병들에게 얼차려를 주는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얼차려로 정신 차린 후임병들이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병대 정신'은 제대하면서 마음 속에 여몄어야 했다. 머릿속에는 기본이 덜 된 '해병대 정신'을, 손에는 물불 안 가리는 '해병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오면서 최씨의 비극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잘못 사용한 해병대 정신과 야구방망이 덕분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40대의 재벌 2세는 차가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태그:#최철원, #맷값, #야구방망이, #폭행,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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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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