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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물질을 하기 위해 잠수한 김계자(73) 할머니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서너 번 깜빡이고 다시 살펴봤지만 역시나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물 색깔이 온통 하얗게 우윳빛으로 변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마치 물속이 온통 탈색된 것처럼"이라고 표현했다. 꽃다운 나이 16살부터 물질을 시작해 57년 동안 해녀 생활을 해왔지만 이렇게 변한 바다는 처음 경험했다고.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가 지난 7일로 3년을 맞았다. 외관상으로는 사고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듯하다. 하지만 생태계 회복을 놓고는 정부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펀드), 주민들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IOPC 펀드는 기름유출사고 발생 이듬해인 2008년 9월, 태안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는 판단이다. 이 때문에 IOPC 펀드는 주민들이 청구한 피해보상금의 피해사정도 이 시기까지만 인정하고 있다.

 

다소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정부도 IOPC 펀드와 비슷한 입장이다. 지난해 12월말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태안지역의 해양수질과 어종을 조사한 결과, 용존산소와 pH 등 일반항목, 영양염류 등이 사고 이전 5년간 자료와 차이가 없다며 사고 이전 수준 회복을 발표했다.

 

반면 주민들은 '여전히 피해가 진행중'이라며 곳곳에서 기름이 유출되고 증언하고 있다. 김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오후 김계자 할머니를 만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5월부터 12월까지 김 할머니는 물질에 나섰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천직으로 택한 해녀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름유출사고 후 바다는 좀처럼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희를 넘긴 나이 탓에 수중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짧은데 할머니가 물질을 하는 5미터 남짓한 해역은 그야말로 '죽음의 바다'다. 그래도 40~50대 젊은 해녀들은 10미터 이상 깊은 해역에서 몇 분 이상 숨을 참고 물질을 하니 할머니보다 벌이가 썩 괜찮다. 김 할머니는 "기름 없애려고 뿌린 유화제가 바다 속을 망쳐 놓은 게지 뭐. 그렇게 유화제 뿌리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도 듣지 않더니... 바다를 다 망쳐놨다니께"라며 울분을 토했다.

 

해산물 수확 1/3로 줄어... 2년 전 신청한 보상금 소식은 '감감'

 

물질은 종전처럼 평균 4시간 이상을 한다. 그러나 기름유출사고 이전엔 수없이 건져 올리던 앙장구(성게)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할 때가 태반이다. 해산물은 사고 이전에 비해 1/3 수준으로 줄었고 수입도 줄어들었다.

 

간혹 운이 없을 땐 선주에서 절반을 뚝 떼어 주고 나면 겨우 6만 원이 손에 들어왔다. 최근엔 대부분의 해역이 어촌계 등에서 허가를 내 함부로 물질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어촌계와 계약을 해야만 물질이 가능하다.

 

"바위 틈을 아무리 찾아봐도 건져 올릴 것이 없다니까. 기름사고 나기 전에는 그래도 얕은 물에도 전복이며 해삼이며 많았는데... 어촌계에 그날 번 돈 절반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을 때도 더러 있다니까."

 

김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도 당했다. 기존에 주로 활동했던 충남 태안 소원면 모항, 의항, 이원면 만대 일대 해역의 해산물 물량이 바닥을 치면서 비교적 기름 피해가 적은 남면 해역에서 물질을 한 게 화근이었다.

 

할머니는 행정기관의 도움으로 어촌계가 면허신청 한 해역이 아닌 곳에서 물질을 했는데, 물질을 하는 할머니를 보고 이 지역 어촌계에서 찾아와 항의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어촌계 어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찾아와서는 나가라고 막 윽박지르고 해경에 신고까지 하는 거야.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물론 그 사람들 심정도 이해는 가. 기름사고 있고 난 후 해산물이 없어진 탓이겠지."

 

기름사고 이후 각박해진 지역 민심에 할머니는 씁쓸해 했다. 

 

요즘 같이 물질을 못하는 시기가 되자 할머니는 피해 보상금이 더욱 절박해졌다.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할머니가 청구한 피해 보상금은 총 8000만 원. 나름 꾸준히 일일장부를 기록해 왔던 탓에 제대로 된 피해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손해사정업체의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초반에 피해접수를 했는데도 2년이 넘도록 도통 소식이 없단다.

 

"어찌된 영문인지 2년이 넘도록 '준다, 안 준다'는 말이 없어. 피해 접수할 때만 해도 '기록 잘 하셨네요'라고 칭찬하더니... 물론 우리(해녀)가 언제부터 보상 타 먹고 살았다고 보상에 목매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닌데, 다만 적어도 내가 입은 피해만큼은 보상해 줘야 한다는 말이지... 우리 같이 몸으로 먹고 사는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은 알아줘야지..."

 

태안군에 따르면 현재(6일 기준)까지 지급된 피해 배보상금은 1138억7700만 원으로 전체 청구된 피해 배·보상금 가운데 3.2%에 불과하다.

 

김 할머니는 "바다는 갈수록 말라가는데, 말을 해도 믿어주질 않는다. 나라에서도 맨날 괜찮아졌다며, 이제 태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직도 기름사고 때문에 피해를 보는 주민들은 많은데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태그:#태안원유유출사고, #태안군, #태안, #기름유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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