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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로켓 한 발을 이스라엘 남부 도시에 발사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5곳을 공습했다. 무장세력의 로켓 제조책임자도 제거했다. 우리나라 보수언론이 부러워하는 '막대한' 보복의 사례다.

그런데 우리는 불가능하다. 교전규칙 때문이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규칙은 비례의 한도 내에서만 교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국방부는 지난달 30일 교전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보고했다(물론 이 발표는 천안함 사건 때도 똑같았다). 정부는 규칙 개정을 통해 "북한의 불법 공격을 즉각·엄중·정확히 응징"(<조선일보> 11월 23일자 사설제목)하겠다는 것이다. 강력한 보복이다.

이렇게 교전규칙을 개정하면 우리는 북한과의 '국지전'에서 이길 수 있을까. 물론 '전투'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쟁'에서는?

'막대한' 보복 주문... 실행할 수 없는 까닭

애국단체총협의회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김정일 독재정권 타도 국민대회'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즉각 응징과 강력한 보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애국단체총협의회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김정일 독재정권 타도 국민대회'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즉각 응징과 강력한 보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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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이 있다. 전쟁 없이 이기는 길이다. 이스라엘과 같은 현실적 해법도 있다.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유엔사령부가 정해놓고, 실상은 미국이 행사하는', 작전통제권을, 그리고 가장 좁게는 교전규칙을 우리가 직접 만들고 직접 결정하고 직접 행사해 가며 보복하는 방법이 있다. 전투기를 통한 포격도 우리가 결정해서 우리가 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왜? 작전통제권 때문이다. 교전규칙 때문이다. 작전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미국의 것이다. 이른바 '보수파'들은 작전통제권 전환 때문에 한국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천안함 이후 작전권 전환시기를 3년 7개월이나 뒤로 미뤘다.

그런데도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다. 보복을 주문했다. 하지만 보복할 수 있는 결정권은 실상 미군에 있었다. 그런데도 작전권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한계, 국군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근본적 모순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한미동맹은 예외적이다." (다음의 예외론은 서재정,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한국어판 서문을 요약했다.) 군사동맹 중에서 한미동맹만큼 반세기 이상 지속된 장기적 동맹은 매우 예외적이다. 동맹국의 군대가 상시주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예외적이다. 패전국이 아니면서 외국군 수만 명이 50년 넘게 주둔하는 것 자체가 예외적이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가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군사적 점령이거나 식민지 지배의 방식이었다. 한미동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작전지휘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어느 학자는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라 표현했다. 외국군이 점령군으로 주둔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기지를 임대해서 군대를 주둔하면서 그 기지를 빌려준 국가의 군대를 지휘, 통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

더욱 경이로운 예외적 사실은 이상과 같은 예외적 현실들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미군이 주둔하지 않으면서도 동맹관계를 유지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반미'로 낙인찍힌다. 더더욱 경이로운 예외적인 사실은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하려고 해도 한국 정부가 반대한다는 점이다. 국제관계에서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예외상태가 우리에겐 일상이 됐다. 차라리 종교가 됐다.

주한미군 사령관 '사실상' 지휘권 행사하게 된 역사적 현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을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유엔군 사령부 통제 하에 보냈다.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대통령은 "현재의 전쟁상태가 계속되는 기간 동안 한국의 육해공군에 대한 전 지휘권"을 그에게 위임한다고 밝혔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조인한 이후로도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은 계속 유엔군 사령관에게 남겨졌다. 1957년 유엔군 사령부가 도쿄에서 서울로 이전한 이후에도 이 상태는 계속됐다.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됐다.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유엔군 사령관에서 한미연합군 사령관에게로 이전됐다.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는 법적으로는 별도의 본부를 가진 별도의 실체이지만 "휴전협정 업무에 대해서는 한미연합사가 유엔사 통제 아래 있다.(국방부, 국방백서 1995~1996, 114쪽. 서재정 앞의 책에서 재인용)" 그러므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있으면 이는 '휴전협정위반'과 '유엔사령부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휘하에 전투 병력을 두지 않은 유엔군 사령관이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즉각 그 도발을 응징하도록 요구하게 되는 구조다.

현재도 한미연합사 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은 동일인물이고, 한미연합사 일부 참모가 동시에 유엔사 참모로 근무하고 있어 양 사령부의 이러한 법적인 구분은 실질적으로는 큰 의미는 없다. 결국 한미연합사 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사실상'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연합사가 창설된 이후로 주한미군 사령관은 7개의 직을 갖고 있다. ①유엔군 사령관, ②한미연합사 사령관, ③지상구성군사령부 사령관, ④유엔 지상구성군사령부 사령관, ⑤주한미군 사령관, ⑥미8군 사령관, ⑦한국 주재 고위 미군 장교(Senior U. S. Military Officer Assigned in Korea)가 그것이다. 미 8군 사령관은 한미연합야전군(CFA) 사령관과 제2보병사단 사단장을 지휘하는 한국 주둔 미 육군 최고위 장교 역할을 한다." (서재정, 앞의 책 137-138쪽 요약)

다시 70년대로 되돌아가자. 1977년 3월 9일,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통보했다. 당연히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같은 달 15일, 주한미군 철수대책 정부·여당 연석회의가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의 말씀.

"이제 우리도 체통을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60만 대군을 갖고 있는 우리가 4만 명의 미군에게 의존하다면 무엇보다 창피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의 자주국방력도 이만큼 컸고 지금이라도 전쟁을 하면 승산이 있는데 굳이 미군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났다. 박 대통령의 자주국방의식을 전혀 뛰어넘지 못한다.

1978년의 한미연합사 체제가 계속되어오던 1994년 12월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평화시' 한국군 부대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한국 합참의장에게 이양한다. 하지만 이때의 작전권 환수는 제한적이었다. 재위임의 형식을 밟았기 때문이다. "전쟁억제와 방어를 위한 한미연합위기관리" 조항 등 6개의 핵심사항에 대해 한미연합권한 위임사항(CODA)으로 다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로써 평화시의 한미연합사 사령관의 역할은 한국 합참의장에 의해 위임된 연합위임권 행사로 제한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평시' 작전권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해 또는 착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위기 관리와 한미연합훈련 등 전시에 대비한 평시의 여러 훈련들을 위한 작전권은 온전히 미군에게 있다. 평시 작전권을 반환받으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선 다시 미군에게 위임하는 형식을 밟아놓은 것이다. 환수한 일부 권한을 재반환했다라는 것이 정확한 설명.

연평도 사태, 이것은 한국군의 독자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23일 오후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섬 곳곳에서 시커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평도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제공한 화면.
 지난달 23일 오후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섬 곳곳에서 시커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평도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제공한 화면.
ⓒ 시민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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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보자.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다. 휴전협정 위반이다. 지금은 전쟁이 아니니까 우리의 작전권 범주 내로 포섭되어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작전을 펼칠 수 있을까. 연평도에 대한 공격은 휴전협정 위반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유엔사 관할이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일이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과 권한의 범위 내를 이미 벗어났다. 물론 다른 논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엔사와 한미연합사와 미군이 해석하는 기준은 (최근 확인한 결과) 필자의 논리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휴전협정 위반과는 무관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가정하자. 지극히 평화시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라 치자.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미 간의 합의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교전수칙이 있다.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수립한 '정전시 유엔사 교전규칙'은 정전협정체제하에서 유엔군사령관의 의도와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한국군의 대응을 통제하고, 작전이 벌어지는 경우 현장지휘관의 독단권의 범위를 정해줌으로써 작전의 효율을 기하고자 하는 사전지침이라 정의된다.

하지만 이 규칙은 전면전 방지를 위한 위기관리, 현상관리적 성격이 짙은 개념이다. 승리보다는 관리개념이고 확전방지에 주된 목적이 있는 개념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국지도발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적극적 전장장악보다는 소극적 현상유지가 교전규칙의 목표이고 휴전관리의 주된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런 상태에서 교전규칙을 해석하고, 행사하고, 개정하는 일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평도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군의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군 관계자들의 고충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군의 독자적인 문제가 아니다. 국방 분야의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 외교, 안보,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미동맹의 문제고 전략동맹의 문제다. 결코 군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다음 탓해야 한다. 그러기엔 교전규칙의 한계가 있고, 전작권의 문제가 있고, 한미전략동맹이라는 비전과 가치가 있다.

2005년 9월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 개시 의사를 미국에 전달했다. 그해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윤광웅 국방장관과 럼스펠드 장관은 "지휘관계와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협의를 적절히 가속화하자"고 합의했다. 2007년 2월 열린 한미국방장관 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일자를 2012년 4월 17일로 확정지었다. 1978년의 한미연합사 체제를 폐지하고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방식의 한국형 공동방위체제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 6월 26일 한미정상은 전작권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로 3년 7개월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의 요청을 수락해 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작권 반환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사태는 발생했다.

정전협정 당사자들의 논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1953년 7월로 되돌아가자. 당시 체결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제60항은 이렇다.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삼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그 이후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는 시작되었을까. 정전상태를 평화협정으로 진화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전협정 당사자들의 논의는 어떻게 되었을까.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었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제4항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였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 6자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비로소 구체화된 것이다.

하지만 6자회담은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그리던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됐다. '10·4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제4항이 그것이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정권은 바뀌었고 모든 것은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천안함 사건이 있었고,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발표됐던 모든 대책은 연평도 사태 이후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7개월 동안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말'의 위기요, '말'의 안보다. 위기의 일상화다. 위기는 끊임없이 강조되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 증폭된다. 시민은 위기에 짓눌려 '예외상태'를 일상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간다.

'10·4 남북공동선언문'에서는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로 했었다.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가 벌어진 바로 그 지역이다. 그대로만 했었더라면?

연평도 사태 대응 결국 전작권에 달려 있다... 본질은 평화 체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서 23일 저녁 대응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아직 북한이 공격태세를 갖고 있다고 볼 때 추가 도발에 대해 아주 몇 배의 화력으로 나는 도발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 민간에게 무차별 폭격하는 데에는 교전 수칙을 뛰어넘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합참 방문한 MB "추가도발시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서 23일 저녁 대응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아직 북한이 공격태세를 갖고 있다고 볼 때 추가 도발에 대해 아주 몇 배의 화력으로 나는 도발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 민간에게 무차별 폭격하는 데에는 교전 수칙을 뛰어넘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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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을 내리자.

첫째, 교전규칙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교전규칙에 대한 해석권과 결정권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유엔사가 가지고 있다고 정리하는 게 옳다. 유엔사가 곧 한미연합사다. 한미연합사가 곧 주한미군 사령관이다. 한미동맹이 갖는 전략동맹의 성격에 따라 서로가 합의하고 현재도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여전히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현재의 교전규칙 하에서는 일부 보수세력이 상상하는 수준의 응징이나 보복이나 확전이나 선제적 공격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둘째, 교전규칙의 문제는 결국 한미연합사의 문제고, 작전통제권의 문제다. 전시작전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평시작전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평시작전권의 대부분이 전시작전권에 연계되어 있고, 따라서 그 권한은 대부분은 한미연합사에 귀속되어 있다. 전시작전권의 전환이 결국 평시작전권의 전환이다. 전환이 곧 반환이요, 환수다. 한국군에 의한 독자적 결정과 작전과 책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와 연평도 사태에 대한 대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이다. 전작권을 미국에 둔 상태에서 한국군의 독자적 영역 확보를 통해 대응의 수준과 권한을 결정하려는 방식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파편적이다. 비본질적이다. 물론 확전을 결코 바라진 않는다. 북한의 도발은 강력하게 비난받아야 한다. 지극히 위험한 공산주의 왕조다운 태도다. 모험주의요, 군사적 극단주의다. 하지만 대응의 수준과 범위에 대한 근본문제는 결국 전작권에 달려 있다. 전작권 환수가 왜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셋째, 본질은 평화 체제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도 꿈꾸던 '통일지향적인 평화프로세스'의  지난한 과정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 체제에는 많은 논의와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남북한의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분단 상태를 고착화하거나 현상을 유지하는 평화체제는 갈등과 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언제 다시 깨질지 모르는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김대중 대통령) 현재도 전시상태는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평화는 '분단고착적' 평화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지난 반세기동안 지속돼온 냉전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며 그 구체적 방안으로 ▲ 통일지향 평화 체제 구축 ▲ 북핵문제 해결 ▲ 북미관계 정상화 ▲ 남북한 경제협력 활성화 ▲ 군사적 대치·군비경쟁 종식 ▲ 동북아 안보협력기구 발전 등을 차례로 제시한다. 이 길만이 외길이다. 이 과정을 통해 통일의 모습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태그:#전작권, #연평도 포격, #전투기로, 폭격, 결정권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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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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