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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구닥다리? 아직 스마트폰 없어? 조만간 '디지털 문맹'이라며 손가락질 받게 될 걸?"

구입한 지 채 3년도 되지 않은 내 휴대전화를 무슨 골동품 보듯 하며 지인이 건넨 말이다. 외관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멀쩡하고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도 없는데, 내 소중한 '비서'를 조롱하면서 웬만하면 스마트폰 한 대 장만하라고 충고했다.

거부할 수 없는 대세를 따르라는 거다. '얼리어답터'는 아니어도 급변하는 현실을 도외시해서야 되겠느냐며 타박을 늘어놓았다. 멈칫거리다가는 나중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뒤처질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냐고도 했다.

갤럭시S(왼쪽)와 아이폰 3GS 비교 모습(오른쪽은 옆 모습)
 갤럭시S(왼쪽)와 아이폰 3GS 비교 모습(오른쪽은 옆 모습)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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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주변을 돌아보면 스마트폰이 많이 눈에 띈다. 1~2년 내로 기존의 휴대전화 대수를 거뜬히 넘어설 기세다. 최근 들어 '얼리어답터' 그룹인 이삼십대 청년층은 물론 웬만한 사오십대 중년층도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고 있는 분위기다.

기능이 복잡하고 여전히 가격이 만만치 않아 장년층과 청소년들에게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종류조차 다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장착되면서 스마트폰은 만능의 '도깨비방망이'라는 점을 알게 됐고, 마치 지금의 컴퓨터처럼 앞으로 없이는 생활 자체가 어렵다는 걸 남녀노소 누구나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흔들고 그어가며 스마트폰을 놀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그 위력을 실감한다.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심심풀이 땅콩 역할에서부터 사진과 동영상을 남겨 추억을 쌓아놓는 앨범, 그리고 수시로 필요한 정보를 꺼내 쓸 수 있는 학습도구로, 숫제 악기 연주까지 가능한, 가히 디지털 기술의 총화다. 외로울 때 곁에서 위로해주는 진정한 친구라며 치켜세우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과연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은 끝없는 진화를 통해 인류에게 편리와 행복을 넘어 무한한 자유를 선사할 듯 보인다. 액정 화면 위 손끝 하나로 모든 것이 작동하는 세상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등장했을 법한 신비로운 일들이 현실이 됐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육체적 편리함과 부유함으로 인해 게으름과 비만이라는 부작용이 생겨났듯이, 디지털이 대세가 될 미래가 마냥 장밋빛일 것 같지는 않다. 거칠게 말해서 중독이라고 불러도 될, 이른바 '디지털 의존' 증세가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이는 휴대전화나 MP3, PMP 등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십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 등장으로 변화된 삶의 방식

스마트폰까지 갈 것도 없이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깨알 같이 담아두었던 수첩이 사라졌고, 수첩만 사라진 게 아니라 이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깨끗하게 지워졌다. 아내의 전화번호는 1번이고, 부모님은 2번, 친구는 3번으로 짤막하게 기억할 뿐이다.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지인들의 전화번호, 주소가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속도만큼, 우리의 기억력도 덩달아 퇴화되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건네받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는 물론, 이메일 주소까지도 곧잘 떠올렸는데, 요즘엔 그 사람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할 때가 많다. 건망증도 심해져 심지어 휴대전화에 알람을 설정해놓지 않으면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조차 깜빡할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점에서 적어도 1~2년에 한 권은 새 지도책을 구입했다. 직업처럼 전국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새로 난 도로가 그려진 지도책은 길잡이로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 책장에 꽂힌 지도책은 먼지만 수북이 내려앉았다. 겉표지 발행일을 보니 구입한 지 4년이나 지난 것이다. 떠올려보니, 내비게이션을 구입한 후 단 한 권의 지도책도 사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한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무선랜이 잡히지 않아 3G로 접속했다.
 지하철에서 한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무선랜이 잡히지 않아 3G로 접속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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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늘 꽂혀있던 지도책도 내비게이션이 장착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도책이 사라지면서 그 밝던 '길눈'도 시나브로 어두워졌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은커녕 동서남북 방향도 못 잡고 헤맬 지경이 되었다. 이젠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어딜 찾아가기 쉽지 않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것처럼 익숙한 길이 아니라면, 시동 걸기와 함께 목적지 검색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도를 읽는 법조차 잊혀졌다. 예전 같으면 등고선을 보면서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 축척을 보며 실제 거리와 소요 시간을 예측하곤 했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화면을 통해 오차 없이 그 모든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니 번거롭게 계산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길을 헤맬라치면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그런 정겨운 만남 또한 사라져 버렸다.

또, 디지털 기술은 공부하는 방법도 변화시켰다. 두꺼운 국어, 영어사전도 다기능 전자사전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십대에게 '사전'이라면 전자사전을 가리키는 말로, 종이사전을 떠올리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손가락으로 책장 넘기며 단어 찾던 일은 이미 오래 전 얘기가 돼가고 있다.

더불어 얼마 전까지 화면을 콕콕 찔러 단어를 검색하는 '포인터'가 필기구를 대체하더니, 자유자재로 화면의 크기가 조절되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그것마저 필요 없게 됐다. 이제 손가락은 필기구를 '쥐는' 게 아니라 화면을 '찍거나 긁는' 도구로 더 잘 활용된다.

학교에서 노트 정리도 내장된 카메라를 이용해 찍고 숙제도 키보드나 마우스로 하다 보니, 필기구로 무언가를 쓸 일은 많지 않다. 칠판도 스크린으로 바뀌어 가고 교사의 강의 내용을 통째로 녹음하는 세상에, 교과서나 노트에 일일이 받아 적는다는 게 얼핏 '원시적'인 방식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악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40대에 접어든 나조차 키보드가 필기구보다 익숙하고, 단어를 찾는데 종이사전보다 전자사전을 더 자주 이용한다. 약속이 있으면 탁상 달력이나 다이어리가 아닌 휴대전화에 입력해 저장하고, 수십 년째 정기구독하고 있는 종이신문보다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더 자주 접한다. 그러고 보니 연말이면 관행처럼 다이어리를 구입하곤 했는데, 지금은 언제 적 일인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디지털 문맹' 타박보다 솔직히 두려운 건 따로 있다

스마트폰 없다고, '디지털 문맹'이라고 타박을 당했지만, 솔직히 두려운 건 따로 있다. 첨단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별로 없다. 되레 이미 차고도 남을 만큼 디지털 세례를 받아 지금도 기억력이 감퇴하고, 지도 읽는 법을 잊은 채 '길눈'이 시나브로 어두워졌으며, 연필을 손에 쥐는 것조차 어색해, 이러다간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말하자면 '디지털 문맹'보다도 '디지털 치매'가 더 겁난다고나 할까.

배터리 기능이 다 닳을 때까지, 적어도 1~2년 동안 휴대전화를 바꾸진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지인에게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마련해야 한다면, 맨 나중에 구입할 생각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대세에 몽니부리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머리가 아둔해지고 있다는 걸 요즘 들어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보건대, 나이 탓이라기보다는 온갖 디지털 기기에 포위되어 살면서 찾아온 달갑지 않은 변화라고 여겨진다. 그럴듯한 변명이거나 억측만은 아닌 듯하다. 주변에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아예 대세를 거슬러 작정하고 '퇴행'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MP3가 음반시장에서 테이프와 CD를 밀어낸 요즘, 굳이 LP를 구하러 다니는 경우도 있고, 지금껏 별 탈 없이 사용한 디지털 카메라가 갑자기 싫어졌다며 다시 필름 카메라로 복귀한 친구도 더러 있다. 이들이야 빠르고 정확한 디지털보다 늦더라도 인간적인 정감이 느껴지는 아날로그가 좋다는 중년의 한가한(?) 감성 타령이긴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 대한 부작용엔 공감하는 셈이다.

지금 기억하고 있는 가까운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고작 열 개 남짓뿐이고, 내비게이션 없으면 방향 가늠조차 못하는 '길치'가 돼 버린 나. 방금 공부해놓고도 단어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뭘 외웠는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스마트폰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보다 차라리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메모하는 오래된 습관을 되찾는 것, 그리고 누구의 조언대로, 어린 애들 마냥 레고 블록을 사서 조립하는 취미를 가져보는 것이 외려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조금 유치하다면 대학 시절 과제물로 했던 대학, 논어 같은 동양고전을 필사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어느 시인은 기억력이 감퇴되는 걸 막기 위해 세계 모든 나라의 이름과 수도, 그리고 산 이름과 해발고도를 일일이 손으로 써가며 외웠다는데, 그 정도 못할까 싶다.


태그:#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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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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