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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흙길이 이어져 있다. 길은 숲으로 길게 굽이쳐 흐른다.
 걷기 좋은 흙길이 이어져 있다. 길은 숲으로 길게 굽이쳐 흐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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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성당 가는 길이었다. 자동차 한 대가 길옆에 멈춰 서더니 중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 남자,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처음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되물었더니, 남자가 다시 말했다.

"7코스 걸으세요?"
"아, 네."

강화나들길 7코스를 걷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맞다. 나는 강화나들길 7코스를 걷는 중이었다. 남자가 강화나들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강화도에서 나들길을 걸으면서 간혹 길을 잃을 때마다 지나가거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강화나들길을 물으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남자를 지나쳐 내처 걸었는데 조금 뒤에 다시 그와 마주쳤다. 그 역시 동행 한 사람과 함께 강화나들길 7코스를 걸기 시작한 참이었던 것이다.

강화나들길 표지판.
 강화나들길 표지판.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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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강화나들길 7코스 '갯벌 보러 가는 길'을 걸었다. 전날인 25일, 6코스를 걷고 서울로 돌아갔고 다음 날 다시 강화도를 찾았던 것이다. 굳이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강화도에 남아 하룻밤을 머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6코스는 출발지가 강화읍이지만 7코스 출발지는 화도면의 화도공영주차장이다. 송정역에서 3100번 버스를 타면 된다. 3100번 버스의 출발지는 신촌역이다. 강화버스터미널로 가는 3000번 버스는 수시로 있지만 화도공영주차장으로 가는 버스는 1시간에 한 대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으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강화나들길 7코스 '갯벌 보러 가는 길'은 화도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북일곶돈대와 갯벌센터를 거쳐 다시 화도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온다. 거리는 20.8km. 이 길에 갯벌센터가 있고, 철새 조망지가 자리 잡고 있다. 길은 화도초등학교 앞에서 시작된다.

어제(11월 25일)는 날씨가 맑더니 오늘은 흐리고 약간 어두운 느낌마저 든다. 어제까지는 손가락 끝이 드러나는 장갑을 꼈지만 오늘은 손 전체를 감싸는 장갑으로 바꿨다. 손가락 끝이 시렸기 때문이다. 시린 손끝에서 진짜 겨울이 왔다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강화 내리성당 종탑
 강화 내리성당 종탑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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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공영주차장에서 내리성당까지는 1.3km 남짓. 내리성당 역시 성공회 성당이다. 그래서 강화성당(나들길 1코스)이나 온수성당(나들길 3코스)처럼 고풍스러운 한옥 건물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아니다. 1982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그렇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다. 이 성당 역시 특색이 있었다. 온수성당의 종루와 달리 이곳의 종탑은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십자가 예수상이 종탑 옆에 세워져 있다.

내리성당을 지나 걷는데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말을 거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아까 내게 말을 걸던 남자가 동행인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제야 내게 말을 걸었던 남자 역시 강화나들길을 걸으러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과 같은 코스를 걸었지만 같이 걷지는 않았다. 내가 앞서 걷다가 가끔은 그들이 앞서기를 두어 번 반복하다가 나중에 그들이 나를 앞질러 갔고, 그 뒤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강화나들길을 걷는 두 남자. 나들길은 혼자 걸어도 좋고, 이렇게 동행과 함께 걸어도 좋다.
 강화나들길을 걷는 두 남자. 나들길은 혼자 걸어도 좋고, 이렇게 동행과 함께 걸어도 좋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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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나 빈 채 누렇게 변한 들판 길을 가로 지르고, 주황색 양철 지붕을 이고 있는 집 앞을 지났다. 어제 20km가 넘는 길을 걸었지만 오늘도 내딛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강화나들길 3코스를 걷다가 돌 위로 넘어져 무릎을 다친 뒤에 오래 걸으면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게 아닌지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다.

만보길 입구를 지나니 낙엽이 듬성듬성 깔린 걷기 좋은 널찍한 흙길이 펼쳐진다. 아마도 임도인가 보다. 길은 좁아지다가 넓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숲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걷다보니 저절로 좋다, 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어떤 구간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기도 했지만 경사가 완만해서 편하게 걷기 좋은 길이었던 것이다. 이런 길만 계속 이어진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다. 세상의 길이 걷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화남 고재형 선생은 시는 강화나들길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화남 고재형 선생은 시는 강화나들길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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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앞서가던 남자들이 사라져서 멀찌감치 가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불쑥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나처럼 길 표시를 따라 걸은 게 아니라 중간에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참이었다. 그들보다 내 걸음이 조금 빨랐는지 어느 정도 걷다보니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돌아보니 모습도 사라졌다.

길은 바다를 안고, 갯벌을 옆구리에 끼면서 이어졌다. 숲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쓸쓸했다. 이따금 바닷새 두어 마리가 먼 하늘을 날아오르는 게 보일 뿐이었다. 갯벌은 막막하면서 길고도 넓게 바다를 향해 펼쳐져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매웠다. 경치를 구경하느라 멈춰 서 있으면 찬바람이 옷자락 사이를 비집으면서 스며든다. 그 바람은 걷느라 흘린 땀을 금세 식혀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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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공영주차장을 출발한 건 오전 11시를 5분쯤 남겨놓았을 때였다. 장화리 갯벌 쉼터 앞에 도착한 건 낮 12시 반쯤. 시장기가 느껴진다. 오늘도 김밥을 준비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선뜩하다. 방풍 점퍼를 벗고 오리털 점퍼를 입은 뒤 그 위에 다시 방풍 점퍼를 걸쳤다. 점퍼의 지퍼를 단단히 여미니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이라도 걸을 때는 가볍게 입는 것이 좋다. 걷다보면 아무래도 열이 올라 땀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쉴 때도 그렇게 입고 있으면 걷느라 흘린 땀이 식어 자칫하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쉴 때는 벗어두었던 옷을 껴입어야 한다.

보온병에서 뜨거운 커피를 따라 마시고 있는데 내 뒤로 처졌던 남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내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그들과 마주치지 못했다.

쉼터 의자에 앉아 김밥을 따끈한 커피와 함께 먹으니 속이 든든해진다. 어둠과 비슷한 색채의 갯벌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겨울 갯벌은 겨울 숲처럼 황량한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다. 갯벌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마음에도 스산한 겨울이 깃드는 것 같다. 그만 출발하자, 혼자 중얼거리면서 배낭을 챙겼다.

멀리 나무 사이로 낮은 돌담이 보인다. 북일곶돈대다.

북일곶돈대
 북일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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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墩臺)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영토의 접경지대나 해안지역 등 감시하기 좋은 곳에 만든 초소다. 강화도에는 53개의 돈대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하자 조정에서 해안의 경비를 튼튼히 하려고 쌓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때 쌓은 돈대가 전부 남아 있지는 않으나, 강화나들길 곳곳에서 돈대를 만날 수 있는 것을 그 때문이다.

아래서 올려다본 북일곶돈대는 허름하고 특징 없는 돌담 같다. 안으로 들어가니 새로 돌을 쌓아 복원한 흔적이 역력했다. 돈대 위에 올라서니 끝없이 막막하게 펼쳐진 갯벌이 내려다보인다. 돈대 안에는 누렇게 마른 풀들이 가득해 버려진 느낌이 물씬 난다. 하긴 역사적인 가치 외에 무엇이 남아 있겠나. 지금 새삼스럽게 초소로 활용할 것도 아니고.

돈대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내 앞을 지나쳐 간 그들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더니 철모를 쓴 군인 둘이 지나가는 게 보인다. 돈대에 오기 전에 해안초소 하나가 있더니 그곳으로 가는 군인들인가 보다. 문득 내가 보면서 지나온 해안초소가 예전으로 말하자면 돈대인 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돈대도 세월을 따라 형태가 진화하는구나, 싶었다.

탐조대와 갈대밭.
 탐조대와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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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추수가 끝난 겨울 들판이, 다른 한쪽은 갯벌이 펼쳐진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제방 길이다. 그 길에 바닷새를 관찰할 수 있는 탐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주변은 갈대밭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들이 한쪽 방향으로 슬며시 누웠다가 일어선다.

잠시 탐조대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통나무집처럼 생긴 탐조대는 잠시 쉬어가는 쉼터 구실을 톡톡히 한다. 비가 오면 잠시 비를 그었다 갈 수도 있으리라. 바닷새를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고, 유리가 없이 툭 트인 창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바다를 내다보았는데, 새는 보이지 않고, 갯벌만 보인다.

탐조대를 지나 제방 길을 따라 걷는데 갑자기 푸드득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 한 무리가 물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십여 마리가 넘는 청둥오리 무리였다. 물 위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내가 걷는 기척에 놀란 모양이었다.

제방길에서 강화나들길 7코스와 7-1코스가 나뉜다. 동막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 7-1코스, 마니산 청소년수련원으로 가는 길이 7코스다. 7코스를 걷는 중이니 마니산 청소년수련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에서 잠시 길 표시를 놓쳐 헤매기도 했으나, 그래도 길을 아예 잃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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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들이 잔뜩 들어선 마을 위쪽으로 길은 이어졌다. 강화 나들길을 걷다보면 여기저기에 어찌나 펜션들이 많은지, 이리 보아도 펜션, 저리 보아도 펜션이다.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지어진 펜션들이 유지비나 건지는 건지 괜한 걱정도 되고.

흙길은 사라지고 포장된 길만이 이어지고 있다. 김천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길은 굽이굽이 고갯길이었다.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내리막길 역시 경사가 심하다. 길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노라니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내리성당이 보인다. 출발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멀리 화도면이 보인다. 이리저리 길을 잃고 헤맨 것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22km 정도는 걷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화도공영주차장에는 3100번 버스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4시 5분경. 다섯 시간을 걸었다. 버스 출발시간은 오후 4시 30분.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온 역시 뚝뚝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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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보여행, #강화나들길, #화도공영주차장, #갯벌센터, #내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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