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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대한 현안보고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후속조치로 유엔군사령부의 정전교전규칙(AROE : Armistice Rules of Engagement)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개정·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교전규칙 개정은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 당시 북한의 해안포·방사포 150여 발 사격에 우리 군이 K-9 자주포로 80발만 대응사격한 것에 대해 '미흡한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교전규칙 개정 문제는 지난달 2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 긴급 안보경제점검회의에서도 거론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군이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내가 말려야 정상 아니냐"며 "어떻게 군이 교전규칙만 들먹이냐"고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규정해 놓은 군 내부 명령인 교전규칙은 정전교전규칙(AROE)과 전시교전규칙(WROE : Wartime Rules of Engagement)으로 나뉜다.

 

개정논의가 되고 있는 정전교전 규칙은 지난 1953년 휴전협정 조인 당시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제정한 것으로 비무장지대, 해상, 공중 등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이 북한군과 충돌했을 때 자위를 위한 무력대응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지휘관이 자위권 행사를 할 때도 '필요성'(필요한 만큼의 무력 사용)과 '비례성'(적대행위의 정도에 비례한 무력 사용)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즉 정전협정에 따라 총격전 등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상황에 대처하는 단계별 규칙을 정해둔 것으로 한미 양국군 공통 소관사항이다.

 

북한 군사도발 때마다 도마에 오른 교전규칙 수정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업무보고에서 "기존 비례성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적을 응징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교전규칙을 개정·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도발해온 북한군의 무기와 같은 종류와 수량(동종·동량)의 무기로 대응한다'는 비례성의 원칙에서 벗어나 '같은 무기에 집착하지 않고, (적이) 쏜 만큼이 아니라 우리가 당한만큼 응징하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북한군이 연평도 포격 때처럼 다시 해안포와 122㎜ 방사포를 동원해 공격한다면 우리 군이 그에 상응하는 무기체계인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포와 같은 무기로 대응한다는 그동안의 개념이 수정되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대응무기와 응사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교전규칙 수정 문제는 그동안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MDL) 등에서 북한군의 군사도발이 있을 때마다 이미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2월 16일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군은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상정해서 현장 지휘관이 현장의 합동 전투력으로 현장에서 최단기간 내에 승리해 작전을 종결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천안함 사건 이후인 지난 5월 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적극적 억제'와 '자위권' 발동을 강조하고, 김태영 국방장관도 "북한과의 교전규칙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힘에 따라 교전규칙이 큰 폭으로 수정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1953년 이후 정전 교전규칙은 한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그동안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교전규칙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교전규칙의 하위 개념인 작전지침만을 수정해 왔다.

 

교전규칙 개정 권한, 한미연합사령부에 있다

 

 

일각에선 국방부의 교전규칙 수정 방침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북 응징을 중요시한 나머지 우발적 교전이 전면전이나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게 한다는 정전교전수칙의 당초 취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위 민주당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30일 김 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전투기로 그냥 그 자리(연평도에 포격을 가해온 북한 해안포대)를 폭격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굉장히 위험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급박한 공격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이 어떻게 신속하게 피해 규모를 산출해 그에 대한 대응 수위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투기를 출동시켜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엔 합참의장과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협의해야 할 문제지 교전규칙에 일일이 규정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 지휘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데는 어차피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방위 소속 한기호 한나라당 의원은 "(도발에 대해) 최초 대응을 할 때는 현지 지휘관이 대응하는 것이 맞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급 지휘관이 해야 할 몫이 (교전규칙에) 빠져 있다"며 "현지 지휘관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결국 국가운명을 대령에게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또 교전규칙의 개정 권한이 한국군에 있는 게 아니라 한·미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합의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유엔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개정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즉 두 사령부의 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확전이나 사태 악화를 우려해 교전규칙 강화 요구를 거부하면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전교전규칙은 그대로 두고 민간인 피해 등이 발생했을 경우에 우리 군이 추가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정전교전규칙상 추가조치'를 통해 군사적 대응의 유연성을 부여해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정전교전수칙은 북한군의 이번 연평도 도발 이후 속 시원한 응징을 원하는 국민 정서와, 무력도발에 상응하는 보복은 하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는 제정 취지 사이의 본질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연평도 포격, #교전규칙, #A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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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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