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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남편과 정말 다른 점이다. 남편은 책 이름이나 저자, 용어 같은 것은 못 외워도 책은 많이 읽는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을 읽지 않고 짤막한 기사나 누군가의 서평이나 검색에서 알게 된 것들을 잘도 기억한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엔 내가 더 많이 아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수박 겉핥기 식이다.

중국의 역사는 고우영의 <십팔사략>을 통해 알고 있고, <삼국지>는 일본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60권짜리 만화책으로 읽었으며, 일제 시대의 잔혹상은 조영래 선생님의 소설 <아리랑>을 통해 더 사실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책에는 죽은 조선인의 수가 나오겠지만 소설을 통해서는 일본군이 독립군을 색출하는 과정, 독립군을 죽이는 장면이 소름 끼치게 사실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책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특히 자녀들 중에 나처럼 무겁고 딱딱한 책은 읽기 싫고, 역사 공부는 해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더욱 더 추천한다.

오늘 말씀드릴 책은 <자유의 길>이다. 이 책은 노예와 관련 있는 역사 사실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많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물론 내용은 부담스럽게 무거운 내용이지만.

줄리어스 레스터 글 /로드 브라운 그림/김중철 옮김/낮은산 출판
▲ 자유의 길 표지 줄리어스 레스터 글 /로드 브라운 그림/김중철 옮김/낮은산 출판
ⓒ 낮은산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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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잡힌 사람들은 영국과 네덜란드, 포르투칼, 프랑스, 미국의 노예선에 실려 북아메리카로 끌려 오게 되는데 어떻게 실었다고 생각을 하는가? 좁은 공간에 그냥 꽉꽉 채워 실었을 것이라고? 사실 사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타던 그 만원, 초만원 버스를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더 참혹했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

산 채로 차곡차곡
▲ 노예 운반선 안의 노예들 산 채로 차곡차곡
ⓒ 낮은산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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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여 있네.
관처럼 좁고, 관처럼 캄캄한, 그런 판자 위에 똑바로.
차곡차곡 쌓여 있네.
산 채로, 산 채로, 그렇게 산 채로.  
                                                                               <본문 8쪽>

그림에서 하얀 것은 발바닥이고 까만 것은 머리이다. 이런 상태로 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까지 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가족에게 이별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어두운 배 안에서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나마 나으련만 아마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이거나 눈동자이거나 발가락 정도가 될 것이다. 머리와 다리가 지그재그로 놓여 있어 윗사람의 똥과 오줌은 아랫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떨어진다. 존재 자체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없는 이는 여름보다 겨울이 낫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성격이든 중요하지 않고 단지 존재 자체가 중요하거나 존재 자체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 겨울은 존재 자체가 중요하지만 여름은 그냥 뜨거운 살 덩어리가 될 뿐인 것이다.

냄새 나고 고통스럽고 불안한 그런 상태로 다행히 살아 있으면 육지에 발을 딛게 되지만 병이라도 나면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다. 그래서 물고기떼가 노예 운반선을 따라 다녔다고 한다. 노예가 버려지길 기다리면서.

북아메리카에 도착하게 되면 인간 시장에서 상품이 된다. 아버지 보는 앞에서 딸의 젖가슴을 보이며 백인의 아이에게 젖을 잘 먹일 수 있을 것이라 평가하고, 아들 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발가 벗겨 값을 매긴다. 어쩌면 사고 파는 이들에겐 이들이 서로 가족이라는 사실조차 인식이 안 되나 보다. 얼굴 구별 안 되는 상품이지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 것이다.

내 이름은 팀미란다. 내 아들 이름도 팀미였고.
마을 사람들이 내 아들을 꼬마 팀미라고 불렀는데 어린 아들은 그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
그 말을 한다고 한 게 티미란 말이었어.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나를 티미라고 불렀단다.
어느 날 주인이 내 아들을 데려가더니 팔아 버렸단다.
그때 내 아들은 다섯 살이었고, 벌써 오십 년 전 일이야.
                                                                                    <본문 28쪽>

존재 자체가 인정 받지 못하는 것. 시골의 잡종 견은 다 해피나 메리인 것처럼 그들은 이름도 없이 톰이나 맘미다. 그들은 그래서 도망치고, 잡혀 죽으면 다른 이가 도망치고. 나무에 매달아도, 채찍으로 때려도 그들의 도망은 끊이지 않는다. 나무 그림자를 보며, 이끼를 보며, 북극성을 보며 북으로 가는 길을 잡아 또 다른 이가 도망친다. 바로 자유의 길을 찾아서.

자유, 자신과 자신이 살아 온 시간에 책임을 지는 일.
자유, 자신을 인정하는 일.
자유,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일.
자유, 어떻게 지켜 가야 할 지 지금도 배워야 하는 일.
                                                                                    <본문 58쪽>

덧붙이는 글 |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그림책이니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영아나 유아를 위한 그림책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인간에 대한 사랑, 노예 제도에 대한 기본적 이해 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공감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의 길

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 김중철 옮김, 낮은산(2005)


태그:#자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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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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