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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젠 회장도 못하겠어, 다음 학기부터는 절대 반장이나 회장 안 할래!"
"어? 무슨 말이야?"
"선생님이 떠든 사람 이름 적으라기에, 칠판에 이름을 적었다가 (친구들 혼날까봐) 선생님 오시기 전에 지우곤 했는데, 앞으론 선생님이 몰래 적으래…."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하소연이다. 떠든 사람의 이름을 적으라는 선생님의 명령에, 아들은 "얘들아! 떠들면 이름 적어야 돼, 선생님이 혼내는 거 알지? 우리 좀 조용하자!"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친구들의 이름을 칠판 귀퉁이에 적었다가도, 혼날 것이 걱정되고 또 남자로서 비겁한 것 같아서 결국 지우고 말았다고 한다.

떠든 사람 명단이 없어 응징(?)할 명분이 없어진 담임 교사의 최종 주문은 "떠든 사람이 없을 리가 있어? 앞으론 칠판에 적지 말고 몰래 적어놔!"였던 것이다. 아들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오는 듯 했다.

30여 년 전, 백묵들고 으쓱대던 우리반 반장

슬며시 30여 년 전 학창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반장은 너무 빨리 권력의 맛을 알아 버린 것일까?

"조용히 해! 이 XX들, 떠든 사람 이름 적는다!"

반장의 목소리가 온 교실을 울린다.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서는 '제왕'의 자리인 반장은 하얀색 백묵을 들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칠판 귀퉁이에 떠든 사람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반장은 친구들에겐 원흉이었지만 선생님에게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백묵을 들고 떠든 사람 이름을 적기 위해 친구들을 두리번 거리는 반장의 우월감이란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리라. 혹시라도 어떤 이유로든 반장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면, 그야말로 첫 번째 표적이었다. 반장에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거나 도시락 반찬 나눠먹기를 거부했던 친구들은 그날 오후 어김없이 칠판 구석에 이름이 올라야 했던 것이다.

그날 따라 명단을 내려다 보고 있는 태극기와 급훈은 또 왜 그리 저주스러웠는지…. 세상에서 가장 원망스러운 이름은 칠판 귀퉁이에 적혔던 내 이름이었다. '떠든 사람' 아래에 이름이 오르면 왠지 위축되고 선생님 오기 전에 얼른 지워 주기만을 바라던 그 조마조마했던 기억들…. 일단 한 번 이름이 오르면 "저 안 떠들었어요!"는 이미 통하지 않는다.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친구들에게는 반드시 처절한 응징이 따랐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름이 올랐는지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혹시 반성문이나 화장실 청소 벌이 내려진 경우는 천지신명의 도움을 받은 경우다. 어김없이 볼기짝이나 종아리에서 불이 나야만 했다. 당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들이 완장을 차면 '반 어른'이 되어 친구들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했으니…. 그게 인간의 본성인지, 참으로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슬픈 기억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들의 입을 통해 듣고 있자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아니다. 몰래 적을 아이의 염려와 마음고생을 헤아려 보라. 또 몰래 적혀 혼날 아이의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시려온다.

아이들 간에 불신 조장하는 '이름 적기' 안 했으면

"담임이 보고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충분히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급훈 아래의 칠판에는 살짝 '지각생' '떠든사람'이 보인다)
 "담임이 보고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충분히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급훈 아래의 칠판에는 살짝 '지각생' '떠든사람'이 보인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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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좀 떠들면 어떤가? 과하게 수업을 방해하고 아이들을 괴롭힌다면 또 모를 일이다. 수업시간도 아니고 교사가 없거나 쉬는 시간에 재잘대는 아이가 정상이지, 얌전히 앉아만 있는 아이라면 그게 어디 초등학생이란 말인가?

아직도 교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나, 자습시간에 학생들을 통제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떠든 사람 이름 적기'라니…. "의리 없게 친구들의 이름을 적느냐"는 항변에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아이의 입장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교사들은 이유가 있어서 '이름 적기'를 계속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역기능이 더 많아 보인다. 아이들 서로에게 불신감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이 일로 인해 주먹다짐이 오고 가는 일까지 생긴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떠든 사람 이름적기.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들의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떠든 학생 이름 적어내는 것,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학교체벌 못지 않게 반드시 금지해야 할 것 중의 하나다. 교사들이여! 아이들에게 불신을 조장하는 떠든사람 이름적기를 제발 주문하지 말라. 


태그:#떠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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