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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한 주민이 26일 오전 간단한 짐만 챙겨 불타버린 상가 골목을 나서고 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한 주민이 26일 오전 간단한 짐만 챙겨 불타버린 상가 골목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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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인들은 다 나가고 뭍에서 온 손님들만 남았다. 북한의 포격이 있은 지 나흘째인 26일 오전, 거리에서 2시간 가까이 헤맸지만 40여 명 남아 있다는 연평도 주민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전날까지 포근했던 날씨는 갑자기 추워져 영하로 떨어졌고 창문이 깨진 집들이 늘어선 골목은 훨씬 을씨년스러웠다.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인천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오전 10시 30분경 연평도에 도착했을 때다. 이 배에는 생필품을 챙기기 위해 돌아온 30여 명의 주민이 타고 있었고, 약 한 시간 뒤 다시 섬을 떠날 때는 60여 명의 주민이 배를 탔다.

주민들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몸싸움까지 벌였다. 대부분 주민들이 피곤해하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지만, 채아무개(80) 할아버지는 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기자들 질문에 답을 했다. 그는 "난 이명박정부가 잘한다고 본다"라고 말해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지난 25일 부인과 함께 생필품을 챙기러 섬에 돌아왔다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나가는 길이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 당시 충격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가 뒤집혀 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 당시 충격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가 뒤집혀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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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서 26일 오전 전기통신업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서 26일 오전 전기통신업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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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25일 주민들이 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짐을 급히 챙겨 차에 오르고 있다.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25일 주민들이 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짐을 급히 챙겨 차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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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북에 이것저것 퍼주다가, 이제 안 퍼주니까 이러는 것 아니냐. 솔직히 우리 사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때가 좋았지만 그래도 난 이명박 정부가 잘한다고 본다. 북에 퍼줘서 남은 게 뭐냐. (북한이) 뭘 주니 안 주니 하면서 싸움을 거는 것은 잘못된 거다. 그럴 때는 단호할 필요도 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햇볕정책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것. 그러면서도 채씨는 "보복, 응징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건 정부 정책이니까 내가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라며 대답을 꺼렸다. 채씨는 "나이 먹고 다른 곳에 나가 일할 수도 없고 그냥 다시 돌아 올 것"이라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배에 올랐다.

연평도는 기자들의 전쟁터

지난 23일 오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마을 곳곳이 시커멓게 파괴되어 있다. 24일 육군헬기에서 촬영.
 지난 23일 오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마을 곳곳이 시커멓게 파괴되어 있다. 24일 육군헬기에서 촬영.
ⓒ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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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연평도 현장에서 생중계 준비중인 일본 TBS 방송.
 26일 연평도 현장에서 생중계 준비중인 일본 TBS 방송.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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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모두 떠났지만 연평도의 골목골목은 매우 분주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기자들이었다. 몇 명 남지 않은 주민들을 찾아 헤매던 기자들은 눈이 서로 마주칠 때마다 '나도 허탕이다'라는 표정을 하며 지나쳤다. 한 일간지 기자는 "집이 무너지고 불에 탄 모습은 그림이 되지만 주민들이 없으니 그 그림 안에 이야기가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파란 눈의 외신 리포터와 통역을 대동한 일본 기자들도 자주 마주쳤다. 민간인이 사망한 공사현장 위치를 물어보는 교토통신 취재팀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물었다. 기자는 통역을 통해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것은 일본에도 위협"이라며 "일본사람들도 연평도 상황을 매우 궁금해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NHK, TBS 등 일본방송사들도 연평도 현지에서 자국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이렇게 몰려든 내외신 기자들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곳은 연평면사무소 공무원들이다. 전체 직원 19명 가운데 한 명도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매일 밤 당직근무까지 교대로 서가며 피해현황을 파악하고 복구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연평도 정보가 부족한 기자들은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대답을 수십 번씩 반복하게 된 직원들은 기자들만 봐도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면사무소 안에는 기자들이 마음대로 직원들에게 접근할 수 없게 소파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런 직원들에게 북한의 포격에 대한 생각을 듣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직원들의 대답은 "이런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주민들의 안전과 피해복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것으로 통일됐다. 한마디만 해달라는 기자의 조름에 한 직원은 "우리도 사람인데 그 상황을 똑같이 겪고 왜 무섭지 않겠느냐"라며 "뭐가 어찌됐건 대포를 쏜 북한의 잘못은 명확한 게 아니냐?"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활발한 복구작업... 무너진 주택복구는 시간 걸릴 듯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25일 한전 직원들이 전기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25일 한전 직원들이 전기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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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이 있은 지 사흘째인 지난 25일 밤, 연평도 대부분에 가로등이 켜졌다. 불 꺼진 집들이 많아 골목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30~40미터 간격으로 가로등이 켜지자 돌아다니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기자들이 숙소로 잡은 민박집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불빛이 흘러나왔다. 연평도의 전기공급시설은 거의 다 복구된 것으로 보였다.

다른 시설도 빠르게 복구됐다. 휴대전화 통신 기지국도 정상화 돼 섬 어느 지역에서도 통화가 원활했다. 인천항과 연평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파고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24일부터 제시간에 맞춰 운행되고 있다.

문제는 무너진 주택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연평면사무소는 12가구가 이번 포격으로 직접피해를 입었고 19가구가 포격으로 화재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했다. 연평도의 총 가구 수인 932가구의 3.3%가 피해를 입은 셈인데 이를 복구하기 위한 장비가 아직 확보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집이 복구될 때까지 주택 피해 주민들이 지낼 임시 컨테이너를 공급하고 있다.

김삼렬 재난구호협회 구호팀장은 26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전파된 집이 많기 때문에 주민들이 지금 떠났지만 다시 들어왔을 때 잠을 자거나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며 "어제까지 집 뼈대를 만드는 작업을 했고, 오늘은 외벽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주민들이 정착하고 다시 일어서는 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임시주거시설이 도움 되길 바란다"라며 "주민들이 돌아왔을 때 따뜻한 아랫목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지원의 손길이 더해지며 연평도는 빠르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포탄을 맞은 곳이 아니라면 늦가을 국화꽃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언제 다시 평화롭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태그:#연평도 포격, #연평도, #북한, #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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