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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만에 다시 찾아간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가 새롭게 바뀌었어요. 마을 들머리에 남다른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 현재 마을 건강관리센터로 쓰고 있는 건물과 그 곁에 모례쉼터
▲ 모례쉼터 몇 해 만에 다시 찾아간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가 새롭게 바뀌었어요. 마을 들머리에 남다른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 현재 마을 건강관리센터로 쓰고 있는 건물과 그 곁에 모례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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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게 뭐지? 뭐가 달라졌다."
"어, 진짜 저기 뭐가 새로 들어섰는데? 옛날에 저 자리엔 학교가 있었는데."

얼마 앞서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볼 곳을 찾다가 도개면 도개리 '모례정'이란 우물이 있던 마을에 다시 가게 되었답니다. 지난 2007년 8월에 다녀와서 <천오백년 지난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이란 기사도 썼던 곳이랍니다. 이날따라 왜 새삼 이곳에 다시 가보고 싶었을까? 뭔지 모를 이끌림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렇게 길을 나섰는데, 도개리 들머리인 '모례교'에 들어서니, 지난날 문 닫은 송곡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기와지붕을 얹고 매우 남다른 모습을 한 건물이 우뚝 솟아있었어요.

"가만, 그러고 보니, 여기 뭔가 많이 달라졌다."
"전에 왔을 땐 날이 하도 더워서 학교 긴 의자에 앉아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했는데, 학교는 온데 간 데 없네?"

"여기 있다! 학교를 허물고 대신에 교적비만 남았네. 그리고 이 건물은 '마을건강관리센터'라네."
"아니, 그동안 이 둘레를 몇 번이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바뀐 걸 몰랐네. 지나가면서 고개만 살짝 돌려봤어도 알았을 텐데, 하하하"


말끔하게 새 단장한 천오백 년 넘은 우물 '모례정'


도개리 마을에 들어서서 모례교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이런 빗돌이 하나 서있습니다. 그 옛날 모례가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마을 들머리 도개리 마을에 들어서서 모례교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이런 빗돌이 하나 서있습니다. 그 옛날 모례가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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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들머리부터 많이 달라진 모습을 하고 다시 찾은 나그네를 반기는 마을, 무척이나 반갑네요. 마을회관이나 지난날 이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저씨가 꾸리시던 작은 구멍가게도 그대로인데, 학교가 있던 자리에 이 마을을 잘 나타내주는 건물을 새롭게 세운 것이 퍽이나 남다릅니다.

이곳은 바로 다름 아닌, 신라시대 때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와서 자리 잡았던 곳이랍니다.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신라불교 초전법륜지' 지난날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도 도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아직도 이름은 그대로이네요. 학교가 있던 자리를 지나 골목을 돌아서니, 예나 지금이나 바뀜이 없는 낯익은 풍경이 무척이나 살갑습니다.

흙으로 쌓은 흙돌담길을 따라 모퉁이를 도니,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담장마다 가득 그려진 '탱화'가 먼저 반겨줍니다. 마당 안에는 그때와 달리 철이 철이니 만큼 시래기를 널어놓고 속살을 드러낸 곶감 말리는 풍경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 안은 그때와 같이 조용했어요. 더러 마을 사람 한둘이 골목을 지나쳐갈 뿐입니다.

불심도문 스님(임도문)이 지난 1978년에 이 마을에 들어와 이곳에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담장 안에 탱화를 그려넣어 이 마을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지요. 지금도 때때로 오셔서 법회를 여신다고 하네요.
▲ 아도모례원 요사채 불심도문 스님(임도문)이 지난 1978년에 이 마을에 들어와 이곳에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담장 안에 탱화를 그려넣어 이 마을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지요. 지금도 때때로 오셔서 법회를 여신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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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96호
▲ 말끔하게 새 단장한 '모례정'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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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과 모례정, 그리고 도리사
고려시대의 승려로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들여온 분이다.
신라에서 포교활동을 할 때, 불교를 배척하는 환경에서 드러내놓고 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현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 모례(신라의 첫 불교신자)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숨어 지내면서 활동을 하다가 둘레에 있는 송곡리 냉산 자락에 신라의 첫 가람인 '도리사'를 지었습니다. 모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6호)은 바로 모례네 집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우물입니다.
아도화상과 모례정에 얽힌 이야기는 몇 해 앞서 제가 쓴 기사에 잘 나와 있습니다.

기사보기☞천오백년 지난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
기사보기☞복숭아꽃과 배꽃이 흐드러져 '도리사(桃李寺)'!

오랜만에 본 풍경에 또 다시 사진기를 들이대고 찍고는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어머나! 우물 앞에도 뭔가 다릅니다. 그렇군요. 새 단장을 했네요. 우물은 그대로인데, 그 둘레를 말끔하게 해놓았어요. 게다가 돌에다가 새긴 '毛禮井(모례정)'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또 그 곁에다가는 찾아온 나그네가 우물물은 아니지만 물을 맛보고 가도록 수도를 놓고 바가지까지 매달아놨어요. 우물곁에 있던 오래된 향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온 가지를 비틀어 휜 채로 서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 볕을 쬐며 앉아계십니다.

일 년에 두 번은 꼭 새암을 쳤지!

"할머니, 여기 새로 단장을 했나 보네요. 언제 이렇게 바뀌었대요?"
"작년 이맘때쯤 됐을 걸? 전에 여기 와봤나부지?"

"네. 전에 왔을 때는 저기 우물만 있었거든요."
"작년에 저 앞에 학교 자리에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싹 바뀌었지. 참 잘해놨지?"

"그러게요. 참 보기 좋네요. 전에는 여기 우물만 달랑 있었고 저 옆에 '불교초전기념관'만 있었거든요. 그땐 문도 잠겨 있었어요."
"그랬구먼, 지금은 저기도 문이 열려있어."

"할머니, 이 마을에서 오래 사셨어요?"
"그럼 우리 종말이(아마도 막내를 일컫는 말인 가 봐요.)가 올 해 마흔이 넘었으니까 가 낳고 들어왔으이 근 40년 됐겠네."

"그땐 저 우물물을 먹었겠네요?"
"그럼, 그땐 여 사람들 마캉 여 새암물 길어다가 먹었는데? 그때만 해도 일 년에 두 번씩은 꼭 새암을 치곤했어. 새암 칠 때마다 장정 하나가 들어가서 바닥까지 긁어서 청소를 했는데, 어느 구멍에서 나는지는 몰라도 싹 치워놓고 나면 금세 물이 가득 차곤 하더라고. 물맛도 참 좋았지."

"저기 있네. 저 양반한테 가서 얘기 들어봐. 저기 오토바이 탄 사람 말이야. 여기 관리하는 인데, 전에는 저기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갔다며?"

찰랑찰랑, 지난날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 이야기도 참 구수했지요.
▲ 우물 안 물은 아직도 찰랑찰랑, 지난날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 이야기도 참 구수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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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들어오신 지 마흔 해쯤 되었다는 할머니, 지난날 우물물을 길어 먹던 시절 이야기가 퍽이나 살가웠답니다.
▲ 마을 어르신 이곳에 들어오신 지 마흔 해쯤 되었다는 할머니, 지난날 우물물을 길어 먹던 시절 이야기가 퍽이나 살가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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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모자를 쓴 아저씨 한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십니다. 마침 우리를 보고는 곁에 와서 서시네요. 바로 이곳 청지기 아저씨인 김시용씨였어요. 나이를 여쭈니 올해 72세라고 하는데 무척 젊게 뵈더군요. 우리가 이 마을을 궁금하게 여기는 것 같았는지 먼저 여쭙지도 않았는데, 이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모례정에 얽힌 이야기, 또 옆 건물인 '불교초전기념관'에 따른 이야기들을 쏟아내십니다.

신라불교가 처음 들어온 곳, 이곳이 성지가 되어도...

청지기 아저씨를 따라 기념관에 가니, 신라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자료가 많이 있었답니다.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아도화상'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하나하나 담아놨어요. 그것들을 따라가며 찬찬히 설명을 해주시는데, 아저씨 이야기가 얼마나 구수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곳을 지키며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걸 퍽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어요. 구수한 말투 속에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가 마치 그 옛날 아도화상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건너와 불교를 전파할 때, 겪었던 어려움(당시에는 신라에 불교가 배척 받으며 시련을 겪었을 때였음)을 곁에서 듣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담긴 이곳을 '성지'로 삼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아직은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아서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바로도 이곳이 신라불교 성지로 자리 잡아도 너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지금은 오로지 아도화상이 이 마을 모례(신라불교 첫 신도)네 집에서 숨어서 머슴살이를 하며 살다가 신라의 첫 가람인 '도리사'를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비롯되어 그 옛날 모례네 집에 있던 우물만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만, 그것과 함께 이곳을 '성지'로 삼아 널리 알리는 일도 매우 값어치 있는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와 자리 잡게 된 마을, 그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기념관입니다. 우리가 다시 찾아왔을 땐, 문을 활짝 열고 청지기 아저씨까지 함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신라불교초전기념관 신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와 자리 잡게 된 마을, 그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기념관입니다. 우리가 다시 찾아왔을 땐, 문을 활짝 열고 청지기 아저씨까지 함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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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알게 된 역사, 독립운동가 33인 가운데 백용성 스님의 오도(悟道)성지

올해 72세인 김시용씨랍니다. 우리 부부한테 이것저것 이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셨지요.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곳이 '신라불교초전지'로 '성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거기엔 뜻 깊은 역사와 문화가 따로 있었더군요. 새롭게 알게된 이야기가 매우 뜻 깊었답니다.
▲ 초전기념관 청지기 아저씨 올해 72세인 김시용씨랍니다. 우리 부부한테 이것저것 이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셨지요.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곳이 '신라불교초전지'로 '성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거기엔 뜻 깊은 역사와 문화가 따로 있었더군요. 새롭게 알게된 이야기가 매우 뜻 깊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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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곳에 얽힌 새로운 역사를 듣습니다. 지난날 왔을 때, 우리 또한 오로지 모례네 집에 있던 우물만이 이곳 역사를 대신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또 있더군요. 바로 이곳을 '성지'로 정하여 널리 알리는 사업을 펼친 분의 이야기랍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백용성 스님(1864~1940년)의 뜻이 바로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들여와 자리 잡게 만든 이곳을 '성역화'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1년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스님의 '유훈'이었다는 것이 퍽이나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우물곁에 있던 오래된 향나무(130년 남짓 됨)가 바로 이분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기념하여 심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백용성 스님(본명은 백상규, 법명이 용성)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에 불교계 대표로 함께 했던 분이고, 또 한글로 된 금강경과 화엄경을 처음으로 펴낸 분이기도 합니다. 불상이나 불교에 관련된 유물로 가장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꾸준히 보내기도 했지요. 그런데 바로 이런 분의 뜻이 바로 이곳 모례정이 있는 이 마을을 '신라불교초전지 성역화'를 하라는 것이었다니 무척 뜻 깊은 이야기더군요.

초전기념관 곁에는 따로 건물이 하나 더 있는데, 2층은 지금 법당으로 쓰이고, 아래층은 바로 백용성 스님과 그 분의 제자 동헌당 스님의 영정을 모셔놓았답니다. 지금 현재 '아도모례원 요사채'에는 지난 1978년에 이곳에 오셔서 여러 해 앞서 동국대 학생들과 함께 담장 벽마다 탱화를 손수 그렸던 임두문 스님(불심도문 스님)이 여러 차례 이곳에 오셔서 법회를 열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백용성 스님(오른쪽)과 그 분의 제자 동헌당 스님(왼쪽)의 영정
▲ 독립운동가 33인 가운데 한 분 백용성 스님(오른쪽)과 그 분의 제자 동헌당 스님(왼쪽)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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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기념하여 심었다는 향나무, 그런 깊은 뜻이 있는 나무라는 걸 지난날 찾아왔을 땐 전혀 몰랐답니다. 벌써 130년 남짓 되었다고 하네요. 모양이 아주 남다릅니다. 지금 이 마을은 백용성 스님의 뜻을 받들어 '신라불교 초전지 성역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 백용성 스님의 오도(悟道)성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기념하여 심었다는 향나무, 그런 깊은 뜻이 있는 나무라는 걸 지난날 찾아왔을 땐 전혀 몰랐답니다. 벌써 130년 남짓 되었다고 하네요. 모양이 아주 남다릅니다. 지금 이 마을은 백용성 스님의 뜻을 받들어 '신라불교 초전지 성역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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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참맛은 갔던 곳을 한 번 더 찾아가보는 것'이란 생각을 해봤어요.

이번에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를 다시 찾아 갔을 때, 참 많은 걸 느꼈답니다. 처음 갔을 때와는 달리, 이것저것 많이 바뀐 모습을 보는 것도 퍽이나 남달랐는데, 그땐 나름대로 제대로 알아봤고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도 꽤나 꼼꼼하게 듣고 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가보니, 또 다른 역사와 새롭게 알게 된 숨은 얘기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요. 이런 '참맛'을 찾아 앞으로도 그동안 우리가 다녀왔던 여러 마을 곳곳에 한 번씩 더 돌아볼 듯하네요.


태그:#모례정, #신라불교초전기념관, #아도화상, #백용성대사, #불심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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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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