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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복직할 겁니다. 안 그럼 집에서 쫓겨나요."

그가 웃었다. 일제고사 관련해 가장 늦은 파면 통보를 받았을 때도, 자신과 같은 이유로 해직된 사립교사의 감경과 복직 소식을 기뻐하면서도, 한발 먼저 일제고사 관련 '해임 무효' 판결을 받은 공립교사들의 재판정에서도 그는 늘 뒷자리에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4월에야 자신의 '해임 무효' 판결을 들으며 한껏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화여중(학교법인 일주학원)은 이에 불복해 항소를 결정했고, 파면상태인 그에게 '2008 교육감 선거 관련 벌금형 선고'를 빌미로 재파면을 통보했다. 김영승 교사는 이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지난 달 21일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김영승 교사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중 생각에 잠긴 김영승 교사
 인터뷰 중 생각에 잠긴 김영승 교사
ⓒ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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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파면 통보를 받았다. 이유가 뭔가?
"징계의결요구서 상에는 일제고사와 2008 교육감 선거 관련 비위행위라고 적혀있다. 일제고사는 이번에도 또 들어가 있더라. 징계위 출석요구서만 몇 통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3차 요구서는 같은 내용으로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과 집에 각각 세 통씩 보냈더라. 내가 학교로 돌아가는 게 참 싫었나 보다."

- 재파면의 근거는 무엇인가?

"1차 해고가 무효로 판정날 것을 대비해 예비적 조치로 한 2차 해고의 효력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학교 측은 내게 이 사례를 적용했다. 재단은 내가 일제고사 관련 민사재판 1심에서 이겼으니 근로관계가 0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파면을 통보했고,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학교 측의 손을 들어주며 소청을 기각했다."

- 1차 파면의 이유는 일제고사, 2차 파면의 이유는 2008 교육감 선거 관련 불법 선거 혐의다. 사학 문제로 보기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사립에는 음주운전으로 잘려도 뒤를 캐보면 사학 민주화라는 우스개가 있다. 물론 교과부와 교육청 방침에 따라 징계를 했겠지만 재단에서 보면 반가운(?) 계기가 됐을 것이다. 외부의 징계 요청에도 징계를 하지 않거나 재단에서 알아서 감경하는 사례는 수차례 보아왔다. 일례로 2000년대 초 강남학원의 교사접대 및 교사들의 과외 알선 관련 조사 결과 교육당국이 교사 다수에 대한 중징계의결을 요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감경처리 돼 학교에 남아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혹시 감경이 돼도 해임이 되도록 '파면' 조치를 내렸다. 징계 사유로 명시되진 않았지만 양형 결정 사유가 된 참고 자료를 살펴보면 민주적 인사위 운영 요구, 학교 급식 재계약 과정의 유착 의혹 제기 등 다양한 전교조 활동 내역이 적혀있다. 심지어 이번 징계 과정에서 '교사근무 성적표'라는 것이 제출됐는데 2000년 내 성적은 45명 중 45등이라고 했다. 몇 년 치가 더 나와 있었는데 모두 하위권이다. 그 즈음 교과주임, 학급담임, 학운위 교원위원 등 역할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허무하더라."

- 파면, 소청심사 등을 겪으며 제도 관련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90년대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서 사학재단에서 하던 징계재심 역할이 소청심사위원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전의 사학 재심과 다를 것이 없다. 일제고사도 서울교육감 선거 관련 징계도 교육당국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었고, 정치 징계에서 소청심사위원회가 갖는 의미는 거의 없다고 본다. 소청심사위원회가 내건 교원의 지위 향상은 말뿐, 이들 역시 비리 교원에게만 관대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김영승 교사
 김영승 교사
ⓒ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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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은 개방형 이사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한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사학정책자문위원회를 꾸리고 사학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두 기관의 서로 다른 움직임을 어떻게 보나?

"얼마 전 물의를 빚은 교장의 교사 체벌 사건에서 교사들은 왜 교장에게 맞았을까? 맞고는 아무 말도 못했을까? 사립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돈 내고 들어갔거나 친인척이니까'라고 답할 거다.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한, 그게 사립학교의 현실이다. 사학의 정서나 법인 관계자들의 의식이 '법도 우습게 아는' 상황에서 사학법 마저 개악한다니 얼마나 더 큰 문제가 터져야 정부가 정신을 차리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서울시교육청의 사학정책자문위원회 구성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명한 방향을 제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교육청의 조치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뛰어야 변화의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법인이 건전 사학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교감 투표제, 교장 보직제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공립학교 이상의 학교 민주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 제자들과는 연락을 하고 있나?
"메신저를 켜놓으면 아이들이 말을 걸기도 하고, 유학 간 아이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안부를 묻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면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고. 요즘엔 이 답답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난감해 피하게 되지만 해직교사들이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읽으며 씨익 웃을 때는 대부분 제자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다."

- 두 번째 파면 통보를 받았고, 복직 투쟁 기간도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경을 말해달라. 
"재판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어 학교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다고 여겼다. 금방 돌아갈 거라고 수령을 거부한 내 짐 다섯 박스가 여전히 학교에 남아있다. 복직 첫날 교무회의에서 어떤 인사를 할까 고민하고, 글을 다듬는 일도 수십 번이었다. 헌데 다시 시작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에 알리지 못했고, 아내도 소청심사위 출석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초등 6학년 딸아이가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돌아갈 수 있는 거냐'고 묻는데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처음 이 싸움을 시작했을 때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법원까지 간 뒤 복직했는데 2차 파면돼 다시 똑같은 절차를 밟는 것이었다. 재단의 재 파면으로 해임 무효 관련 1차, 2차 재판이 함께 가니까 길게 보면 복직기간이 단축된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만 많이 지친 것 같다. 2년 전에는 이 정권의 불합리한 행태를 알리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복직할 것을 믿는다. 내가 복직을 포기하는 순간 재단이 이기는 것이고, 우리 분회에는 나쁜 선례가 남게 된다. 싸움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원상복귀하려면 꼭 원직복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안 되면 집에서 쫓겨난다(웃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영승, #일제고사, #재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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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교육희망>의 강성란 기자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 소식을 기사화 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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