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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1998년-2003년)는 IMF 구제금융 상태에서도 고용불안과 가정해체 등으로 피폐해진 서민들의 최소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2000년 10월 1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고, 불우한 가정과 장애인들에게 해마다 최저생계비를 확대 지급해왔다. 

그러나 2008년 2월 25일 고소영·강부자 내각으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에게는 감세혜택을을 주고, 정부예산은 4대강 공사에 퍼부으면서 10년 동안 힘겹게 쌓아온 복지의 탑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친서민 운운하며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외양간의 소가 웃을 일이다. 

김대중 정부는 좌파식 정책이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복지의 날'을 제정하고, 빈곤층의 생활 안정과 삶의 질을 높이려고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현실을 외면한 생계비를 책정해놓고는 친서민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쥐구멍의 쥐들도 웃을 일이다.

발길을 멈추게 했던 노숙자(?)와 비둘기 

지난 11월2일에는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마음먹고 서울역에 들렀다. 단골로 다니던 서울역 구내식당에서 오랜만에 비빔밥도 한 그릇 사 먹고, 노숙자들을 만나 그들이 겨울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오니까 G20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둘씩 짝지어 오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양쪽 무릎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노숙자(?)와 비둘기 두 마리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차림새가 20대 안팎 여성 같았는데, 노숙자인지 가출 여성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앉아 있는지 걱정되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부애가 좋기로 소문난 비둘기 부부도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지방과 달리 서울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데 그때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어떠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경찰은 불심검문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여성 한 사람이라도 불행의 늪으로 빠지기 전에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렵게 이루어진 노숙자들과의 대화

서울역 광장 노숙자들. 그동안은 무섭고 두렵기만 했었는데요. 이들도 눈물과 웃음, 지성과 사고능력을 갖춘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을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서울역 광장 노숙자들. 그동안은 무섭고 두렵기만 했었는데요. 이들도 눈물과 웃음, 지성과 사고능력을 갖춘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을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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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아래 광장에서는 노숙자 7~8명이 둘러앉아 종이컵에 막걸리와 소주를 따라 마시며 권커니잣거니하고 있었다. 점심 대신 마시는 것 같았는데 낮술에 거해지니까 주제도 없는 난상토론이 시작되었고, 행인들은 거리의 뱀장수 바라보듯 힐긋힐긋 흘겨보며 비켜갔다.

술병이 비면 가장 젊은 노숙자가 일어나 행인에게 구걸을 다녔다. 주로 여성에게 다가가 찰거머리 달라붙듯 붙어 다니며 돈을 요구했는데, 1천 원짜리 한두 장 얻으면 금메달을 획득한 올림픽출전 선수처럼 기뻐하며 가게로 달려가곤 했다.

노숙자들이 거처하는 서울역 육교 아래 움막집. 50년대 피난민 촌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노숙자들이 거처하는 서울역 육교 아래 움막집. 50년대 피난민 촌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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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가는 육교에서 골판지를 깔고 덮고 잠자는 노숙자. 이들에게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프더군요.
 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가는 육교에서 골판지를 깔고 덮고 잠자는 노숙자. 이들에게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프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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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도 서울역에 들렀다. 그러나 그때는 노숙자들이 거주하는 움막과 골판지를 담요와 이불처럼 덮고, 깔고 지내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기만 했지 대화는 못했다. 말을 잘못 걸었다가 생각지 않은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귀뺨을 한 대 맞더라도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우선 마음의 벽부터 허물어야 했다. 해서 몇 계단 아래로 내려가 눈과 목에 들어 있는 힘을 모두 빼고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눈빛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조금 있으니까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저씨가 30대로 보이는 노숙자에게 "너는 젊은 놈이 술도 사오지 않음서 얻어먹기만 허냐!"며 퉁을 놓았다. 이때다 싶었다. 용기를 내어 "막걸리하고 소주는 내가 사겠소!"라며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때부터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선생님, 막걸리 한 잔 허시게 이리 바짝 와서 앉으쇼. 야 인마 너는 얼릉 가서 소주 한 병에 막걸리 한 병 사오고···. 지금 오냐?"
"아이고 행님은 성질도, 지금 가고 있잖아요. 흐흐"

노숙자가 따라주는 막걸리. 노숙자들과 ‘거리의 친구’가 되어 함께 웃고 가슴 아파하며 막걸리를 두 잔이나 마셨습니다.
 노숙자가 따라주는 막걸리. 노숙자들과 ‘거리의 친구’가 되어 함께 웃고 가슴 아파하며 막걸리를 두 잔이나 마셨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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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저씨는 머리에 빵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전라도 사투리와 서울말을 섞어 사용했다. 노숙자이면서 농도 잘하고 표정도 밝은 그는 심부름을 시켜놓고 출발하기 무섭게 '지금 오냐?'라며 다그쳤는데,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즐겨하던 농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노숙자 곁에 앉으니까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긴, 서울역 광장이 안방인 노숙자와 시골에서 올라온 촌부 사이에 무슨 공통의 주제가 있어서 대화를 나누겠는가. 그러나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노숙자일망정 그들의 생활이 있을 것이니 살아가는 얘기를 듣다 보면 가까워질 것 같았다.

"아저씨는 고향이 어디세요? 집에는 사모님도 계시고 자식도 여럿 두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 나이도 저하고 비슷한 것 같고."
"아, 내 고향요? 저기 아랫녘 벌교요. 아내와는 펄써 이혼해부럿고, 애들은 아들이 둘이고 딸이 하나요. 나이는 예순 둘인디, 왜 그런 걸 자꾸 물어봐 싸쏘!"

"아저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런데 언제부터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까?"
"가만있자, 사업허든 거 몽땅 날려먹은 해가 97년잉게 10년이 훨썩 넘었소. 근디 나가 누군지나 아쇼? 그 이름도 찬란한 '노숙자'요, 노숙자. 길에서 잠자면서 아침이슬을 맞고 자랑께 이슬 '노'(露)자를 쓰는 노숙자란 말이요."

아저씨가 얘기를 본격적으로 풀어가려고 하는데 술 심부를 갔던 젊은 노숙자가 파란 페트병에 든 막걸리와 소주 한 병을 계단에 내려놓으면서 "행님 여기 술 대령이요!"라며 고개를 넙죽 숙였다. 아저씨는 약간 쉰 목소리로 "응, 엄청 수고혔다. 거그다 놓고 너는 저쪽으로 가서 얌전히 찌그러져 있거라!"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래도 젊은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예이~"라는 대답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종일 술만 마시면 속을 버릴 텐데, 아프면 병원비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니까 아저씨는 자기 몸보다 사회 구성원이 더 문제라며 일부 비리 권력자들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야 죽으믄 병원 실험용으로 들어갈 것이고,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이 더 문젭니다. 국회의원들 면책특권 있는 거 알죠? 그넘들은 그 특권으로 수백 수천만 원씩 받아먹음서 지들 자유대로 산다 이겁니다. 빽 있는 장관 놈들도 다를 게 없고요. 근디 우리 서민들은 뭡니까. 길에다 침만 뱉어도 경범죄로 걸리죠, 그러믄 몇만 원 벌금 내야 됩니다. 그려서 무엇이고 서로 똑같이 철저허게 따져야 허고, 면책특권도 없어져야 돼요. 호로ㅇㅇ들···."

"그러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노숙자들이 없어질 거로 생각하십니까?"

"지금 모두가 어려운디 무슨 놈의 4대강 공사는 헌다고···. 강바닥 파내믄 거그서 금송아지 나옵니까?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아시죠? 버락 그 사람 대통령 당선되고 노숙자 단체장을 젤 먼저 찾어갔다고 헙디다. 그 정도는 돼야 사회의 공동체가 이루어져요. 그럼 강바닥만 파대는 이명박은 어디로 갔냐? 도둑놈들이 버글버글허는 국회로 먼저 갔다 그 말요. 거기 가서 뭣을 혔겠소. 뻔 허지. 그나저나 목말라 죽겠네, 미안허지만 막걸리 한 병만 더 사 주쇼!"

'오바마' 앞에 꼬박꼬박 '버락'을 붙이면서 열변을 토하다가 목마르다며 막걸리 한 병 더 사달라는 노숙자 아저씨. 그의 손톱에는 때가 얼마나 새카맣게 끼었는지 까마귀가 사촌을 맺자고 하게 생겼고, 소나무그루터기처럼 거칠고 굽은 손마디는 62년 인생살이가 그만큼 험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노숙자와의 대화는 40분 가까이 이어졌는데, 그의 말에서는 해학이 넘쳐났다. 그래서인지 정감이 갔다. 처음엔 옷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에 푹 썩은 막걸리와 니코틴 냄새까지 풍기면서 코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그의 얘기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다 보니까 고약한 악취가 거름으로 사용하는 뒷간의 구수한 잿더미 냄새로 변하면서 향수까지 불러일으켰다.

'귀머거리도 자기에게 하는 욕은 알아듣고, 봉사도 죽은 자기 아내 제사는 꼬박꼬박 챙긴다'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노숙자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신문과 TV 뉴스를 꼬박꼬박 시청한다고 했다.

'4대강 예산', '복지예산'으로 돌려야

서울역 육교위의 노숙자들. 노숙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신경 쓰는 걸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인생 낙오자라는 패배감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역 육교위의 노숙자들. 노숙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신경 쓰는 걸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인생 낙오자라는 패배감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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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와 함께 실업자가 급증하던 1988년 노숙자들이 사회문제화가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노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수였고 분산 격리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했었다.  

노숙자 문제는 한때 외환위기와 함께 몰려온 대기업들의 부도가 대량실업사태로 이어지면서 발생했으므로 그들의 생활 터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몇몇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만 오갈 뿐,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음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노숙자들에게는 끼니를 제공하고 돌아서서 외면하기보다는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방안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장소와 기회, 즉 직업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숙자도 약간의 물질적 지원과 구직활동 지원만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자활형'과, 일자리 제공과 함께 상당기간 정서적 지원과 재교육이 필요한 '재활형'이 있는데, 서울역 주변 노숙자들은 대부분 재활형으로 보였다.  

경제를 살리고 직장을 늘린다는 핑계로 아름다운 강산을 죽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노숙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실질적인 복지정책 프로그램을 하루빨리 개발해서 방황하는 노숙자들도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서기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 상인에게 머플러 하나 선물하고서 서민 곁으로 다가갔다고 착각하지 마시고, 2011년 '4대강 예산'을 '복지예산'으로 돌리기 바란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자는 물론 서민과 친해지고 서민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넉넉한 '복지예산' 확보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작압니다.



태그:#노숙자, #복지예산, #김대중정부, #이명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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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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