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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남편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을 걸 먹었다고 합니다.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에서 병원에 있는 것은 남은 가족에게 병원비만 물리는 일이기에, 오히려 더 오래 끌지 않고 숨을 거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길 만큼 죽은 이의 죽음도 안타깝고, 남은 가족들의 눈물도 안타깝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야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기의 선택이니 누구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농부의 자살이 안타까운 이유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치여 선택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양파 농사를 짓습니다. 무안에 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산이 없이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계속 밭이 이어집니다. 땅이 아주 넓습니다. 곡식을 잘 지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노동력이 부족합니다. 농삿일은 그 일이 겹치기 마련이므로 일손을 구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니 노동력을 사 와야 하는데 이런 농번기에는 노동력의 값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일이 없을 때는 하루 4만 원이던 품삯이 농번기에는 10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트랙터로 밭을 가는 데도 평당 몇 만 원씩 돈이 나가는데 무안 지역의 경우 보통 몇 백 평씩, 몇 천 평씩 농사를 짓습니다.

밭에 거름을 주는 데도 돈이 듭니다. 거름값과 함께 그 거름을 뿌리는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수시로 풀을 뽑는 것은 온전히 여자들 몫입니다.

수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를 이용해서 수확을 하지 않으면 수확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듭니다. 기계를 이용하면 평 당 돈이 나갑니다. 그러니 사실 농사는 돈이 없으면 온전히 노동력으로만 해야 하는 일인데 땅이 넓으니 그것이 힘듭니다.

이렇게 기계로 하니 편하겠다고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기계가 하는 일은 구분이 되어 있는 편입니다. 기계로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가 될까요?

그래서 많은 농촌의 부모님은 자기 자식만은 농사를 짓지 않길 바라십니다. 저희가 귀향을 한다고 할 때도 퉁명스런 목소리로 "알아서 해라 머" 하시기만 하셨지 강한 반대도 강한 찬성도 없으셨습니다.

순수 농업인의 꿈과 희망 좌절 시키지 않기를 바라며.
▲ 휴식 순수 농업인의 꿈과 희망 좌절 시키지 않기를 바라며.
ⓒ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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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런 힘든 일은 우리나 해야 되는데 누가 농사 지으라고 했나?" 하십니다. 밤늦게까지 밭에 밀을 뿌리고 오고, 또 친구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 남편을 보며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농사 짓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농번기와 농한기가 구분되는 지역이라면 더욱 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벌어도 돈을 벌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농사는 자긍심을 갖기도 어렵고, 누구에게 권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 얼마 전 프랑스의 한 농부가 이런 말을 했대요.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지만 그 살 물건이 없으면 돈이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요."

이 말에 어머님도 "그건 그렇지" 하시지만 여전히 힘 없는 목소리입니다.

얼마 전 들은 강의에서 그 교수는 농업 중심의 산업을 지식산업 중심으로 바꿔야 돈을 번다고 하지만 저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다 핸드폰 만들어서 돈 벌면 뭐 먹고 살지?'

남편은 "농업은 미래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곡물 파동과 배춧값 난리를 보면서 그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유통망 개선과 제도 정비, 다양한 품종 개발,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의식 개선 등 제가 알지 못하는 이 분야의 많은 것들이 개선된다면 농촌도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혼하는 부부도, 자살하는 농부도 없을 것입니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왜 이 날이 농업인의 날인지, 이런 날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가 우연히 달력을 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농업인의 날에도 우리 가족은 밭에서 먼지를 쓰고 일을 했고, 남편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생명을 만들고, 환경을 지키고,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일을 하는 거랍니다.


태그:#농촌 현실, #생명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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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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