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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웃블로그의 글을 통해 창덕궁 후원이 특별 개방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2010년 10월 26일부터 11월 7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이라는 주제가 붙었다.

 

이 행사는 후원 4곳의 정자(영화당, 펌우사, 취규정, 농산정)을 개방하여 도서를 제공함으로써 후원의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행사기간 동안은 기존 1회당 100명이었던 입장 인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인터넷 예약이 없이도 현장 발권을 통해서도 입장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제한된 시간이 없어 자유관람이 가능하다.

 

쉽게 만나기 힘든 '비밀의 화원'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고 하니,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함께 여행작가학교 수업을 듣고 있는 동생 둘과 흔쾌히 동행을 자처하신 작가님 한분과 약속을 정했다. 지난 주말 안동하회마을과 경주양동마을을 차례로 방문하고 온 터라 창덕궁 또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안국역 3번 출구, 오늘 일행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대로변에 늘어선 샛노란 은행나무들이 가을을 말해준다. 날짜는 2010년 11월 4일, 가을이 정점에 달한 시기라 창덕궁 후원의 모습이 더욱 기대가 된다.

 

먼저 도착한 동생들이 건네는 커피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조금 늦을 거라는 작가님의 문자를 확인한 후 창덕궁으로 향한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한 100m 정도만 직진하면 바로 목적지다. 자유관람이긴 하지만 후원 입장시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입장시간은 오전 11시. 아직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창덕궁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또 걸어들어가 후원 매표소에서 다시 한번 매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덕궁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3000원, 후원의 입장료는 5000원이다. 또한 서울의 5개 고궁을 한 장의 티켓으로 관람할 수 있는 통합관람권도 판매되고 있다. 2010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5대궁 통합관람제도는 1만 원만 지불하면 서울의 5개궁을 모두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표를 모두 끊은 후 후원 앞 벤치에 앉아 입장을 기다리는 사이 관리를 맡고 있는 젊은 직원이 주전부리를 하는 어르신들을 단속한다. 후원뿐 아니라 창덕궁 내에서는 모든 음식물의 반입이 금지되고 있다. 산이든 공원이든 간에 음식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깨끗하지 못한 뒤처리가 항상 말썽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성숙한 국민의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전 11시가 되어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드디어 베일에 쌓인 후원이 공개된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부용지다. 창덕궁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섬이 만들어졌고, 연못 주변에는 부용정이 있다. 부용정은 十 자형을 기본으로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그 옛날 부용지에서 정조가 낚시를 즐겼다고 하니 그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경당으로 가는 길에서 궁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건물을 만난다. 효명세자가 주합루 뒤쪽에 지은 집으로 이곳에서 나라 일을 생각했다는 의두합이라고 불리운다. 단청조차 칠해지지 않은 가난한 선비의 집과도 같은 모양새가 너무나도 빨리 저버린 그의 일생과도 닮은 듯하여 마음이 숙연해진다.

 

작은 정원을 수놓은 색색의 단풍잎들에 취해 걸음을 흐트려놓으니 어느새 깊숙한 연경당까지 와있다. <궁궐지>에 의하면 연경당은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 칸 민가 형식의 집이다. 대문인 장락문은 달에 있는 신선의 궁궐인 장락궁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사랑채와 안채로 나뉘어져 있으며 선향재라는 서재가 있다.

조금 전 보았던 의두합의 소박함과 연경당의 단정함이 다른 듯 어우러진다.

 

그곳을 이어주는 길에는 화려하게 물든 노거수 이파리들이 화려하게 번진다.

 

하나의 돌을 깍아 세워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불로문을 나오며 총명하고 현명했던 효명세자의 짧은 생이 안타까워진다. 그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면 지금 이 나라는 또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

 

길가로 바로 이어진 곳은 숙종18년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가 있는 애련지다.

 

숙종은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고 지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인 마음과도 일맥상통했을리라고 생각한다. 연꽃처럼 갖가지 음모와 싸움이 존재하는 정계에서 그만의 꿋꿋함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던 마음과 말이다.

 

애련지를 지나 길을 따라 생동하는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창덕궁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관람지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반도 모양을 닮은 연못, 관람지 주변으로 삼면에 각기 다른 모양의 정자가 운집해 있다. 못가에 선 많은 사진가들이 그곳의 모습을 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삼각대를 펼친다.

 

관람지에는 부채꼴 모양의 독특한 정자 관람정이 있다. 배를 띄워놓은 모양의 관람정이 관람지의 정자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방문객들의 관심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 모양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관람정의 맞은 편에는 효명세자가 독서를 하던 폄우사가 있고, 오른쪽으로 겹지붕이 독특한 존덕정에서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도 볼 수 있다.

 

존덕정에 앉아 책 한 권 펼쳐놓고 여유를 즐겨보자. 눈 앞에 펼쳐진 수채화 같은 풍경 또한 눈을 의심하게 한다.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는 옥류천이 흐른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옥류천이라는 글씨 위에 당시 옥류천의 모습을 노래한 숙종의 시가 새겨 있다.

 

"폭포는 삼백척인데/멀리 구천에서 내리네/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지금은 그 물줄기가 빈약하지만 시구를 통해 그 옛날의 풍경이 그려진다. 그 옛날엔 임금과 신하들이 이곳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하니 지금은 너무도 빈약한 물줄기가 생경스럽다.

 

근처에는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등의 정자가 있는데 특히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청의정이 특이하다.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청의정 앞쪽에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집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 하였다.

 

옥류천을 돌아 다시 오던길을 되돌아 나온다.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개방된 공간은 창덕궁의 5분의1도 안된다고 하니 그 크기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나의 방랑벽은 항상 타지에서만 겉돌았을 뿐 서울에 대해서는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방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말이다. 서울의 5개의 궁이 있다는 것도, 그 중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됐다는 것도 안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콘크리트에 둘러쌓인 삭막한 도시 안에 역사가 고이 간직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인만큼 앞으로 어떻게  이곳을 사랑으로 지켜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는 우리 모두의 몫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창덕궁, #후원,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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