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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개념미술가 김소라(1965~)전이 에르메스재단이 후원을 받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12월 5일까지 열린다. 그는 2002년 스페인 카스테용현대미술관, 2003년과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5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07년 영국 발틱미술관 등에 잇따라 초대를 받아 국제무대에 크게 활동하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덜 알려진 편이다.

 

김소라는 낯익은 일상으로 낯선 작품을 만들어 문명비평적으로 재해석해온 작가다. 2007년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후 3년 만이다. 이번을 계기로 작가도 변신을 꾀한다. 전시기획자의 면모도 내려놓았다. 기존의 통념을 깨고 전시 제목도 없다. 이처럼 전시에 대한 방향성이나 경향이 없으니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숫자조각이 전시장에서 연주하는 분위기

 

이번 전시에도 사람 키보다 큰 숫자조각 11개를 선보인다. 숫자조각이란 개념이 새롭고 숫자조형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아틀라스'가 64개 스피커가 연결되어 소리를 조절한다. 여기 16가지 소리는 2010년 여름에 서울과 근교에 새벽시장, 거리, 식당, 학교,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녹취한 것이다. 결국 흩어진 작품을 이어주는 건 전선이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체 이게 뭔가 해서 당황스럽고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작가의 의도는 뭘까 궁금해진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보면 갑자기 숫자조각들이 뮤지션이 되어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 산만하기는 하나 그래도 뭔가 축제 분위가 나 즐겁다.

 

"관객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봐주길"

 

이번 전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관객이 그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는지를 주시한다. 작품의 주요 제목도 '왜냐고 나에게 묻지 마세요(Don't ask me why)'다. 모 일간지에서 작가는 "치밀한 계획에 따른 작업보다 오브제 자체가 만들어내는 상황에 더 관심이 있다"면서 "관객의 관점으로 각각 자유롭게 봐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지만 어떻게 보면 쿨(?)하다. 어쨌든 관객이 참여할 여지가 많아지고 생각할 여백도 생긴 셈이다. 요즘은 재판에도 국민참여제가 실시되는데 작품 감상에도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것도 시대정신에 맞아 좋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전시 특징 중 하나는 전시장 벽 중간 중간에 영상작품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내용이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분주하다는 핑계로 사유의 시간을 놓친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작가가 준 원고를 배우가 읽는 '추상적 읽기'도 그런 풍인데 역시 불통시대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혼돈의 미학' 낯설지만 재미있다

 

위 광경을 보니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한 "혼돈을 조직화하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작가라면 누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염두에 두겠지만 여기서 작가는 적극적으로 혼돈을 재료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낯선 풍경을 뜻밖의 전율로 바꾸려는 의도인가. 작가의 원래 의도는 이보다 더 무질서한 상황을 연출하려 했다는데 그래도 절제한 것이란다.


아래 영상의 제목은 '무제'로 자동차가 완전히 전소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1시간 30분이나 보여준다. 이 괴이한 작품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지만 기계문명이 주는 편리함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지 등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문명의 위기를 우회적으로 풍자

 

여긴 벽이 파괴되어 휑하니 뚫렸고 오른쪽엔 거친 파도 속에도 가라않지 않은 부표가 보이나 바닥에 폭풍우에 쓰려진 것 같은 통나무도 놓여 있고. 이런 장면은 망망대해에서 난파된 배위에 떠있는 것 같아 우회적으로 위기에 놓은 현대문명을 풍자한 것 같다.

 

'외로운 조지'는 전시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조지'는 사람이 아니라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거북이를 말한다. 이 시멘트작품은 성게나 시한폭탄처럼 생겨 생뚱맞다. 이 역시 우리 시대의 우화로 무한경쟁과 물신숭배에 치여 고립되고 소외되는 현대인을 뜻하리라.

 

파편화된 기호체계를 숫자로 재통합

 

이 작가는 왜 숫자를 작업에 즐겨 쓰는지 궁금하다. 가만히 보면 숫자가 전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생명체처럼 보인다. 파편화된 기호체계를 숫자로 재통합하고 현대문명의 본질을 최대로 농축하여 단순화한 조형물이 아닌가 싶다.

 

그도 숫자에 대해 "물질을 형성하는 최소한의 단위이자 본질이며, 기존의 체제나 방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종교, 예술, 철학, 문화, 과학이 합쳐진 국가생산력의 결정체를 뜻하듯 그에게 숫자는 모든 정보와 데이터를 총체적으로 환원한 오브제가 되리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비기념비적 조각 

 

김소라 작품은 비기념비적이다. 비기념비적(?) 이건 세종로에 세워진 세종대왕동상이 기념비적인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다시 말해 위대함이나 거창함을 추구하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입장이다. 여기처럼 잘 팔릴 것 같지 않고 전시 후에 어떻게 처리될지 걱정되는 것이 바로 비기념비적인 것이다.

 

'괜찮아'라는 제목처럼 그의 작품이 비기념비적으로 보이든 무용하게 느껴지든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칸트가 말하는 '무목적성의 합목적성'이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무용함으로서 기능하는 예술'과 통한다고 할까. 하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에펠탑이 지금은 프랑스의 상징이자 파리의 얼굴이 되어 어마어마한 관광수입을 내는 걸 보면 좀 이해가 된다.

 

다가 올 세상을 예고하는 무질서한 풍경들

 

하여간 그는 이렇게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원시적 생명력으로 넘치는 선사시대의 주술 같은 위력을 사람들의 일상에 조용히 침투시켜 예술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되려는가 보다.

 

프랑스의 문필가 조르주 바타이유(G. Bataille, 1897~1962)는 "본질적 작품은 성스러움을 유발시키는 것과 비슷한 매혹과 혐오의 이중정서를 고취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김소라의 세계도 그렇게 '우호와 적대', '마력과 반감', '구축과 와해'가 혼재되어 있다.

 

소설이 거짓(fiction)을 통해서 진실을 말하듯, 미술이 눈속임(trompe l'oeil)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듯, 김소라 작가는 일상을 뛰어넘는 예기치 못한 방식과 엉뚱하고 낯선 우회 전략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네며 기존의 가치와 체계를 흔드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소라작가는 누구인가?

김소라(Sora KIM 1965~) 서울출생

 

[학력] 1991년 파리국립미술대학(ENSBA) 졸업 1986년 서울대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레지던시] 2007년 발틱(Baltic) 현대미술관 영국 2000년 아카데미 슐로스 솔리튜드(Akademie Schloss Solitude) 슈투트가르트 독일 2000년 뮤지엄 프로젝트 (Museum City Project) 후쿠오카 일본 1999년 매트리스(Mattress) 팩토리 피치버그 미국

 

[개인전] 2010년 '김소라전'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07년 '헨젤과 그레텔' 국제갤러리 서울 2007년 'Melting Alaska' 발틱(Baltic) 현대미술관 영국

 

[단체전 및 비엔날레] 2010년 '우회전략(Oblique Strategies)' 국제갤러리 2008년 플랫폼 서울역 2007년 이스탄불비엔날레 2007년 월드 팩터리 2007년 선재아트센터 2006년 부산비엔날레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2005년 에르메스한국미술상전 2005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02년 스페인 카스테용현대미술관 2002년 광주 비엔날레

덧붙이는 글 |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30-26 도산공원 3층 02)544-7722 전시무료 
교통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2번-3번출구에서 나와 도산공원 옆 수요일 휴무


태그:#김소라, #숫자조각, #아뜰리에 에르메스, #베니스 비엔날레, #조르주 바타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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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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